선험적 시각·참신한 아이디어 절실
증권산업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실현하기가 힘들겠지만 대형화 및 전문화가 필요하다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러나 외형적인 대형화를 이루더라도 선진 증권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막강한 경쟁력을 갖기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한 분야로 전문화를 집중시킨다고 해도 그 영역에서 경쟁을 뚫고 탄탄한 점유율을 차지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 때문에 대형화 및 전문화는 아직까지는 ‘그림의 떡’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하지만 전문화를 사업 성공모델로 정착시킨 산업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 대표적인 주인공이 바로 인터넷쇼핑몰.
상품의 다양성 및 규모가 큰 종합쇼핑몰과 한두 가지 상품만 취급하는 소규모 전문쇼핑몰이 외형상으로는 경쟁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과는 달리 전문몰의 거래액이 전체의 30%를 육박할 만큼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인터넷쇼핑몰에서 전문화가 힘을 받는 이유는 각종 규제로 인해 수익모델에 제한을 받는 증권업과는 달리 생활용품 등 실물을 취급할 수 있어 수익모델이 다양하기 때문.
이와 함께 증권업의 경우 시장이 극히 제한돼 있지만 인터넷쇼핑몰은 다양한 상품군을 소화해낼 수 있는 시장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 큰 차이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물리적인 대형화·전문화를 강행하기보다는 시장이 형성할 수 있는 여건을 먼저 조성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 대형화·전문화의 딜레마 = 업계 한 임원은 “최근 떠오르고 있는 적립식 펀드의 경우 10여년 전에도 존재했는데 한 때 반짝하고 사라졌지만 최근 1조원을 넘어서며 활기를 띄고 있는 이유는 바로 국민들의 정서가 바뀌면서 이를 소화해주는 시장이 형성됐기 때문”이라며 “이에 따라 시장만 존재한다면 대형화도 전문화도 쉽게 이룰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한다.
지금과 같은 영업환경에서는 대형화나 전문화가 쉽게 이뤄지지 않는 구조라는 것. 즉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대형화나 전문화는 큰 효력을 발휘하기가 힘들다는 시각이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되도록 유도하는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다섯 개의 대형 증권사를 합쳐 5∼6조원의 자본을 가진 초대형 증권사를 만들더라도 수익구조는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이는 결국 제한적인 시장규모 안에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브로커리지 및 IB 등 어느 한 분야를 포기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관계자는 “황당한 얘기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금융상품 판매 전문 증권사, 브로커리지 전문 증권사, 데이트레이딩 전문 증권사 등 전문화가 이뤄진다 해도 신뢰성이 높은 네임밸류와 막강한 규모로 승부하는 대형증권사를 뛰어넘어 시장 점유율을 얼마나 차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고 강조한다.
◆ 인터넷쇼핑몰엔 ‘시장이 있다’ = 인터넷쇼핑몰이 태동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과연 인터넷에서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는 영업형태가 성공할 수 있을지 누구나 한번 쯤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우려와는 달리 인터넷 보급이 보편화되면서 인터넷쇼핑몰의 거래액은 2001년 3조3471억원에서 2002년 6조299억원 2003년 7조548억원으로 지속 증가세를 보였고 올 상반기만 해도 3조7372억원을 기록, 지난해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이와 함께 전문몰의 경우에도 지난 2001년 1조874억원에서 2002년 1조6408억원 2003년 1조9467억원 올 상반기 1조496억원 등 끊임없는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다.
어찌 보면 전문몰의 경우에는 종합쇼핑몰에 있는 한두 가지 상품만 취급할 뿐만 아니라 규모가 큰 종합쇼핑몰보다 신용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성패에 큰 걸림돌이 되기 십상이라는 게 일반적인 논리다.
하지만 이 논리는 무너졌다.
지난 2000년 소리소문 없이 인터넷에 등장한 ‘디씨인사이드’란 디지털카메라 전문 쇼핑몰은 설립한지 2년 만에 한 해 매출로 50억원 이상을 올릴 만큼 확고한 입지를 굳혔다.
무엇보다도 쇼핑몰이란 냄새를 풍기기보다는 네티즌들이 디지털카메라에 대한 정보 및 사진동호회 등 각종 컨텐츠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한 몫을 했기 때문. 하지만 이 ‘디씨인사이드’란 전문몰이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디지털카메라 시장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진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즉 ‘디씨인사이드’란 사이트가 등장했던 지난 2000년만 해도 디지털카메라는 일부 소수 계층만 소유하는 전유물에 불과했지만 향후 디지털카메라 시장이 급성장할 것이라는 ‘디씨인사이드’ 설립자의 선험적인 시각이 주효했던 것이다.
◆ 시장을 만들자 = 업계 한 관계자는 “시장만 존재한다면 어떤 형태든지 전문 증권사가 생겨날 수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런 시장은 혁명처럼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회 전반적인 변화에 따라 형성된다는 단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즉 금융당국이나 증권업계가 아무리 발버둥친다 해도 시장은 쉽게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
이 관계자는 또 “하지만 금융당국이나 증권업계가 끊임없는 노력을 쏟아붓는다면 시장이 형성될 수 있는 기폭제는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정부가 기업 M&A에 세제혜택 등 다양한 특혜를 제공한다면 아직까지 국내 증권업계에 큰 수익이 되지 못하는 IB 시장이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이에 따라 증권업계에서는 정형화된 상품만으로 타겟 투자대상을 선정, 억지로 유인하는 기존의 관행을 버리고 전직원의 연수·교육 등을 한층 강화해 고객의 다양한 니즈를 파악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증권업계가 ‘제살 깎아먹기식’의 싸움에서 벗어나 전금융권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직원 모두가 연구 노력하는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며 “이를 통해 각 증권사들은 각계각층 및 다양한 세대들이 소화해낼 수 있는 상품영역을 한층 넓혀 자연스럽게 시장을 형성하며 전문화할 수 있는 색깔을 찾는 노력을 경주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김재호 기자 kjh@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