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연금접목 등 서비스 개발만이 살길
최근 들어 증권사들이 기존 주식위탁영업 중심에서 자산관리영업 중심으로 탈바꿈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증권사들이 주식영업 등 고유업무만으로는 더 이상 생존해 나갈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주식위탁영업의 경우 5∼6년 전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사이버트레이딩 시스템이 보편화되면서 수수료가 급격히 낮아진 데다 주식시장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며 국내 주식시장의 30%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개인투자자들이 대거 이탈, 수익성이 크게 떨어진 게 사실이다.
즉 기존 위탁영업은 개인투자자들의 자산이 많든 적든 매매를 유발하기만 하면 수수료를 수익으로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 대다수의 투자자들이 손실을 보게 되면서 증권사 불신으로 이어지고 이에 따라 사이버트레이딩 시스템을 이용한 직접투자로 선회하면서 증권사들의 수수료 수익은 큰 폭으로 줄었다.
또 국내 증시를 떠받치고 있는 우량기업이 적어 증시기반이 취약한 데다 직접투자에 나선 투자자들이 각종 루머 등으로 인해 손실이 이어지면서 결국 증시를 이탈하는 현상까지 빚게 된 것.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단순한 주식매매보다는 고객 자산을 위탁받아 주식을 비롯, 펀드, 채권, 실물 등에 투자하며 고객 자산을 관리해주는 종합자산관리형 영업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 자산관리형 영업이란 = 자산관리형 영업이란 말 그대로 고객들의 자산을 위탁받아 증권사 또는 직원이 직접 관리를 해 주는 것을 말한다.
즉 주식이나 채권, 수익증권, ELS, 실물 등 투자대상에 관계없이 고객들의 투자성향 및 라이프사이클에 맞춰 최적의 포트폴리오를 짜고 안정적인 운용을 통해 고객들이 장래에 지불해야 할 비용에 대한 미래가치를 창출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을 포함하는 것이 지난해부터 국내 증권업에 도입된 일임형 랩 어카운트다. 이는 고객들이 자산을 증권사 또는 직원에게 일임해 위탁한 계좌로 일임을 받은 증권사 또는 직원들이 주식 등에 투자해 운용수익을 창출하는 상품이란 개념이라기보다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국내에 도입된 일임형랩은 자산관리 시스템이라기보다는 상품 측면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두드러진 게 사실이다.
도입 초기 보수형 안정형 공격형 등 투자자들의 성향을 크게 분류하고 이에 따른 기성복 같은 상품을 설계해 고객 자산을 유사한 유형에 편입하는 수준이었다.
이런 결과 주가지수가 하락세에 접어들면서 수익률이 큰 폭으로 떨어졌고 이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증권사들은 또 맞춤형, 적립형 등의 상품을 내놓으며 상품 개념으로 접근하는 데 그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임형랩이 자산관리형 영업의 대표격을 띄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상품 개념이 아니다”며 “고객 자산의 성격 및 투자성향, 라이프사이클 등을 구체적인 상담을 통해 정립하고 적절한 포트폴리오를 구성, 운용하는 시스템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하지만 이처럼 복잡한 고객들의 성향을 분석하기에는 아직까지 어느 증권사도 인력풀 및 전산시스템 등을 갖추지 못한 게 사실”이라며 “은행 보험 등 다른 금융권과 자산관리시장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은행 등의 수준에 맞게 전산 및 인력 인프라를 갖추는 게 급선무”라고 덧붙였다.
◆ 아직도 ‘걸음마’ 수준 = 자산관리영업의 대표격인 일임형랩의 시장규모는 9월 현재 3조5000억원 수준.
업계 수수료 평균이 1.5%인 점을 감안하면 수수료 수익은 525억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증권사의 총 수수료 수익이 평균 4조5000억원이라고 가정할 때 매우 미미한 수치다.
또 금융시장 규모가 크게 다르지만 미국의 경우 지난 2000년 랩어카운트 규모가 750조에 이르는 데다 수수료율도 국내 수준보다 높다는 점을 고려할 경우 국내 시장은 소위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특히 미국의 경우 일반투자자들이 리서치 자료 등 정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랩어카운트를 가입하게 되면 이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어 시장규모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또 증권사 또는 직원들이 자산을 관리해주는 합리적인 수수료(Fee)를 지불해야 한다는 데에도 저항력이 없다는 점도 큰 차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투자자들의 성향이 대부분 보수적이다 보니 자신의 자산관리에 대해 일정한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데 익숙치 않은 데다 은행권 금리보다 수익률이 절대적으로 높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다.
때문에 일임형랩 수수료율도 주식위탁 수수료 인하경쟁 못지않은 신경전이 잇따르면서 업계 전체 평균 수수료율이 1.5%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
또 수익률 경쟁도 만만치 않아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상품설계에만 주력하면서 일임형랩이 증권사의 새로운 대안인 자산관리 시스템으로 발전하기는커녕 단순한 금융상품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취급업무 넓어져야 = 이와 함께 금융권간 불균형이 증권업계 자산관리시장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은행권에 앞으로 도입될 ‘종합재산신탁’의 경우 투자대상이 부동산 등 실물 뿐만 아니라 지적재산권 등 광범위하게 열려 있다.
하지만 증권사 일임형랩의 경우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포괄주문이 허용되지 않고 계좌별로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부동산 등 실물에 투자하기에는 아직까지 한계가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또 지분 분할(Sharing)도 허용되지 않아 계좌별로 관리해야 하는 일임형랩의 경우 우량주 투자에도 제한적이라는 것.
즉 미국에서는 1 이하의 소수점 단위로 주식을 분할해 매입할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10주 단위로 사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간운법에 따라 사실상 증권사의 일임형랩의 경우에도 투자대상이 넓어진 건 사실이지만 포괄주문 및 지분분할 등이 허용되지 않아 투자하는 데 있어 제한적인 게 많다”며 “이에 따라 은행 보험 증권 등 고유업무 영역에 대해서는 침범할 수 없도록 규제하더라도 유사한 상품 및 업무에 대해서는 공정한 규정을 적용해야 해야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 패러다임 변화 이끌어야 = 하지만 무엇보다도 증권사 직원과 고객들의 마인드 변화가 가장 큰 관건이라고 업계는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기존 주식위탁이 대개 여유자금을 넣어 소위 ‘대박’을 노리는 툴(Tool)이었다면 종합자산관리란 안정적인 자산관리로 투자자들의 라이프사이클에 맞게 자금을 이용하는 툴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
또 증권사 및 직원들이 자산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 제공하는 다양한 부가서비스에 대해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데 마음을 열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투자자교육을 활성화해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함께 증권사도 다양한 부가서비스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은행 및 보험 등 다른 금융권에서는 연금과 관련된 상품 또는 서비스가 잘 갖춰져 있는 반면 증권업계에서는 아직까지 연금 같은 안정적인 자산관리 서비스가 전무했다는 얘기다.
때문에 고객들이 노후에 안정적인 생활자금으로 활용하기 위해 일정 규모의 자금을 가져와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
이에 따라 연금 프로그램 등 다양한 부가서비스 개발이 시급하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증권사들은 일임형랩을 은행 상품과 차별화하기 위해 결국 수익률에만 급급했던 게 사실”이라며 “이에 따라 다양한 부가서비스 개발보다는 수익을 많이 낼 수 있는 상품구성에만 집착하면서 자산관리의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증권사의 경우 다른 금융권과는 달리 유가증권을 취급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다양한 서비스를 설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이에 따라 연금 절세효과 등을 통해 안정적인 자산관리를 통해 다른 금융권과 차별화할 수 있는 서비스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자산관리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재호 기자 kjh@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