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모건체이스와 뱅크원 합병, 시티그룹의 도이체방크 인수 논의 등으로 세계 은행업계가 초대형 M&A(인수합병) 열풍에 다시 휩싸였다. 2002년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플릿보스턴 인수로 촉발된 은행들의 `메가머저(초대형 합병)` 바람은 합병 효과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가 없다.
한동안 잠잠하던 미국 은행들의 M&A가 금융시장의 또다른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금융업계의 알짜 수익원인 소매금융 시장의 지배력 확대가 주 목적이다. 보통 M&A는 규모의 경제를 위한 대형화, 겸업화를 목적으로 이뤄지지만 최근의 M&A는 전통적 목적이 아닌 "소매금융의 강화"란 지향점을 지니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합병 후 수익성 창출에 대한 의문, 인수대상 은행의 감소 등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M&A는 당분간 미국을 포함한 세계 은행업계의 대세로 자리잡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다음 M&A 타자로 거론되고 있는 은행들의 규모가 이전보다 작아 금융시장에 미칠 파급효과는 크지 않을 수 있으나 합병 추세 자체는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왜 지금 M&A인가..살 길은 소매금융뿐
대형은행들의 인수합병 붐은 지난 1990년대 초 이후 10년만에 재연된 것이지만 성격은 많이 다르다. 은행-보험, 은행-증권사, 보험-증권사 등 다른 업종의 금융기관이 결합하던 종래의 방식과 달리 IT버블 붕괴와 경기침체로 "믿을 건 소매금융 뿐"이란 교훈을 얻은 미국 은행들이 이 원칙에 충실하기 위해 인수합병을 단행한 것이다.
M&A 붐을 주도하고 있는 은행들의 면면에서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미국 1~3위 은행인 시티그룹, JP모건체이스, BOA의 자산은 각각 1조2089억달러, 1조827억달러(뱅크원 포함), 9330억달러다. JP모건과 BOA는 합병 전에도 자산 순위가 2, 3위였던 데다 미국 은행의 경우 1~3위와 그 이하 은행간의 자산 규모 차이가 워낙 커 대형화가 합병 이유라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지나친 `덩치`에 비해 수익원과 영업 거점이 상대적으로 편중돼 있다는 위기감으로 뱅크원과 플릿보스턴을 골랐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자산기준 미국 2위라지만 소매금융이 취약하고 영업지역도 미국 동북부에 한정된 JP모건은 미국내 3위 카드발급자이자 남서부에 탄탄한 영업기반을 확보한 뱅크원을 통해 취약점을 보완한 수 있었다. 서부에 근거지를 둔 BOA역시 북동부가 주무대인 플릿보스턴을 통해 미국 전역을 커버하게 됐다.
그렇다면 미국 대형은행들이 소매금융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채권인수, M&A중개 등 기업금융은 위험성은 날로 커졌으며 경쟁 가열로 수익성도 많이 떨어진 상태다. 반면 소매금융은 항상 안정적인 규모의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지난해 미국 상위 10대 은행들의 소매영업 비중은 전체 자산에서 49%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 소매금융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이 20%를 넘지만 기업금융은 10% 미만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있다.
특히 미국 경제가 회복기조에 접어들어 향후 소비심리가 더욱 살아날 것이란 점을 고려하면 지금이 소매금융 시장을 적극 공략해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대형화의 기본적인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규모의 확대로 얻게 되는 비용절감, 소비자 신뢰도 상승 효과는 기본이다. 금융시장의 환경변화에 따라 신용카드, 뮤추얼펀드, 기업공개 등 세분화된 상품에 두루두루 손을 뻗칠 수 있다. 기업들은 물론 큰 손 개인 고객들도 여러 사업을 한 곳에서 처리할 수 있는 대형은행들을 선호한다.
◇다음 타자는?..커머스, 사우스웨스트, 와코비아 등 거론
그렇다면 인수합병 시대를 이끌 다음 주인공은 누구일까. 전문가들은 `빅3`와 자산규모 차이가 너무 벌어져버린 중위은행 와코비아, 웰스파고 등과 수익성이 우수한 군소 지역은행인 커머스은행, 사우스웨스트은행 등을 지목하고 있다.
이와 관련 조사기관 세컨커브캐피탈의 회장 토마스 브라운은 알짜 지역은행이 유망하다며 커머스와 사우스웨스트를 유망 은행으로 꼽았다. 브라운은 커머스은행의 경우 핵심 예치자산이 매년 30%씩 증가할 정도로 수익력이 우수하고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평가도 좋다고 설명했다.
사우스웨스트의 경우 14년의 짧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일반 상업은행들이 꺼리는 기업금융 부문에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강점이라고 평가했다. 기업금융 분야에서는 JP모건과 같은 대형 강자를 능가할 정도로 남서부 지방에서 상당한 입지를 구축했다고 강조했다.
미국 4대 은행인 와코비아도 빼놓을 수 없다. 남부 지방을 주름잡는 강자인 와코비아는 지난 2001년 지역내 라이벌인 퍼스트유니온은행을 인수하며 4위 자리에 등극했고 이후 안정적인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다. 1800년대 미국 서부의 골드러시가 한창일 때 설립된 웰스파고역시 98년 노웨스트은행, 2000년 퍼스트시큐리티은행과 잇따라 합병하며 서부 지역을 관장하고 있다.
그 외 최근 가장 각광받는 금융사업으로 부상한 신용카드 전문 은행들도 대형은행의 추파를 받고 있다. 여기에는 캐피탈원파이낸셜, 프로비디안파이낸셜 등이 포함된다.
세계적 거물 투자자인 워렌 버핏이 2대 주주인 버팔로의 M&T은행도 피인수 대상의 단골 후보다.
한편 토마스 브라운은 1위 은행인 시티그룹 역시 조만간 또다른 은행의 인수를 추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티야말로 지난 1998년 트래블러스를 인수하며 미국 1위 은행으로 올라선 M&A 신화의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런 시티가 JP모건이나 BOA의 거듭되는 맹추격을 수수방관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브라운은 "처음 시티가 도이체 인수를 추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현 상황에서 시티역시 많은 부담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그들이 진정으로 원해서 합병의 주도자가 되진 않았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어쨌든 시티는 미국내 자산비중을 더욱 키워갈 것"이라며 "도이체보다는 미국 내 은행과 합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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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