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만명이라면 15세 이상 경제활동인구의 12%를 넘는 숫자로, 경제활동인구 8명중 1명이 신용불량자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다. 이쯤되면 개인 신용불량 문제는 정치인들끼리 서로 주고받는 전화대화를 누군가가 같이 들었다는 문제보다 훨씬 심각한 사회 경제적 이슈이다. 무언가 파국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다.
최소 유권자 12명중 한사람은 신용 불량
연일 서민생활을 윤택하게 해주겠다고 외치는 대선 주자들이 실감나게 느낄 수 있도록 표로 계산해보자. 이번 선거에 전체 유권자가 3천만명 정도라고 한다. 이중에 1천5백만표의 지지를 받으면 대통령에 당선된다는 것이 정치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들 중 현재 250만표가 신용불량자이고 한계선상에서 불안한 돌려막기를 하고 있는 숫자까지 합하면 5백만표 가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신성한 한표를 가진 유권자 12명중 한사람, 많게는 6명중 한사람은 신용불량자라는 단순계산이 나온다.
대선주자들이나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전화대화를 누가 같이 들었다고 핏대를 올리기에 앞서 이 같은 현상에 대해 무언가 한마디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누가 대권을 잡더라도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할 ‘제2의 금융위기’이자 사회문제가 될 것이 분명한데. 더 나아가 이런 문제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접근하는 것이 유권자들의 더 큰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첩경이 아닐까. 진정한 정책의 제시라는 것이 바로 이런 문제의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경제 정책이란 네거리의 교통신호나 교통표지판과 같은 것이다.
모든 차가 파란 신호등이 켜진 대로를 향해 달리며 교통경찰도 빨리 가라고 호르라기를 불어 댈 때 당신은 혼자서 잘 보이지도 않는 오솔길로 자신 있게 우회전 할 수 있겠는가.
아직 일년도 채 안된 이야기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의 선창으로 모든 경제 관료들과 나중에는 한국은행까지 나서서 아직 개인대출이나 소비가 위험 수준이 아니며 일정한 내수가 있어야 경제가 살아난다며 대출 규제와 한도를 마구 풀어주던 사실을 기억하는가. 이에 덩달아 최근에 아직은 신용이 멀쩡한 회원들도 잠재적 신용불량자로 몰아 카드 사용을 금지시킨 은행은 하루아침에 개인 신용을 10배로 뻥튀기를 해주며 마구 카드를 긁으라고 소비를 조장했고 그 결과 엄청난 이익을 챙긴 것이 엄연한 사실 아닌가.
‘내수진작을 통한 국내 경기 살리기’라는 고속도로에 국민들의 차량을 마구 밀어 넣어 속도 제한은 풀어놓고 구간구간 마다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통행료를 받게 하는 상황에서 국민들의 선택은 하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에서 조장 해 놓고 이를 충실히 따라간 국민들에게 이제 와서 당신들 개인 일이니 정부에서는 모르겠다고 하는 것은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무원의 직무유기이다.
말의 참된 의미에서 진정한 도덕적 해이라는 것은 밀린 카드대금을 못 갚겠다고 자빠지는 서민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공무원들에 대해 사용하는 것이다.
부도덕한 기업주들이 운영하던 회사들은 국민들의 미래 수익에서 나오는 세금을 미리 거두어 만든 공적 자금을 마구 퍼부어 살려주었으면서도 재벌들도 나서지 않을 때 정부시책에 적극 호응하여 빚내서 부동산 경기 살리고 기업들의 공장을 돌리게끔 한 국민들을 위해서는 공적자금을 활용 못하겠다면 그것은 관료들이 좋아하는 형평의 원칙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국가 경제를 결단 낼 수 없다며 부도덕한 기업주들이 경영하던 부실기업의 부채는 탕감해주고 ‘농자는 천하지 대본’이라 농어가 부채도 탕감해 주었으면 이제 사회의 기층민인 도시빈민의 부채도 탕감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부채를 탕감해 주어야 한다는 논리를 강변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태를 이렇게 몰고 온 단초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분명하게 한번 짚고 넘어가자는 것이다.
지금 신용위기에 몰린 사람들 치고 외국에 골프여행을 갔다오거나 강남에 부동산 투기를 한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외국 카지노 가서 도박 한 사람 있겠나 은행서 분식회계 서류로 몇천억 대출해 말아먹은 사람 있겠나. 결국은 서민들만 제일 먼저 피해를 보게되는 것이다.
가계 살리기 위한 공적기금 만들어야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제2의 금융위기를 빨리 해결하기 위해서는 금융회사와 정부가 공동 출연하여 개인들의 신용회복을 위한 공적기금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이 기관으로 하여금 현재 금융회사가 가지고 있는 신용불량자의 채권과 잠재적인 신용불량 채권, 고리채들을 일정 기준에 맞추어 인수하도록 하여 일차적으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덜어주어 IMF 당시처럼 연쇄적으로 공멸하는 부실의 고리를 끊고 기존의 신용불량자들은 경제 생활의 족쇄를 풀어주고 한계에 놓인 사람들의 경제 생활을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게끔 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과 금융기관, 사채업자들이 직접 채권회수 문제로 충돌하는 일은 최대한 막아야 할 것이다. 완충지대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후에 기준을 정해 인플레율을 넘지 않는 최저의 이율과 장기의 거치 기간을 두어 이들 신용불량자들이 평상시대로 안심하고 경제 생활에 종사하면서 분할 상환을 통해 채무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기업들에게 공적 자금 퍼부어 줬듯이 채무원금을 탕감해주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단지 제도적으로 이들이 금융기관과 사채 업자들의 채무독촉에 시달리지 않고 경제 생활에 종사하면서 다시 재기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보장해 주자는 것이다. 유권자들의 표를 얻을 수 있는 대선 공약이라는 것이 별게 아니라 바로 이렇게 곤경에 처한 일반 서민들이 안심하고 살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과 같이 국민의 도덕적 수준을 시험하는 제도인 개인워크아웃제만 가지고는 이 고비를 넘길 수 없다.
정치인은 국민 개개인들이 별로 관심도 없는 정치인 전화 도청 같은 사안을 억지로 이슈로 만들려고 소모전을 벌이거나 경제관료들은 권력의 향배에 따라 줄서기에 힘쓰지 말고 이런 실제적인 논의를 통해 서민들을 고리채로부터 해방시켜주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대권을 잡는 지름길이요 오래도록 자리보전을 하는 비결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대안을 제시 해줘도 채택을 못하면 정말 곤란한 일이 아닌가.
전국의 신용불량자들과 예비 신용불량자들은 이번에 가계 신용위기라는 뜨거운 감자를 피하기보다는 먼저 사고 방식을 바꾸어 남보다 앞서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에게 신용있는 한표를 던지자.
강종철 논설위원
강종철 기자 kjc01@epayge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