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4년 사우디아라비아 왕국 보건성과 옛 유원건설간의 공사계약에 대해 외환은행이 ‘계약이행 및 선수금지급에 대한 보증서’를 발급했었다. 그리고 유원건설이 공사채무를 불이행해 외환은행이 이를 대신 이행하게 되면 발생하는 외환은행의 유원건설에 대한 구상채권에 대해 제일은행이 보증채무를 지고 있었다.
1991년 11월, 유원건설이 채무이행을 다하지 못하자 사우디 보건성은 외환은행에 대해 보증서의 이행을 청구했다. 하지만 유원건설은 사우디 보건성의 청구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며 외환은행이 이를 이행하지 못하도록 가처분신청을 냈고 1994년 12월 대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이에 따라 외환은행은 이행을 하지 않은 상태이고 따라서 옛 유원건설에 대한 구상권도 아직 발생하지 않은 상태다. 사실 구상권도 발생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그 구상권에 부종(附從)하는 제일은행의 보증채무는 아직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문제는 원인채권관계인 사우디 보건성-외환은행의 보증계약이 사우디법의 적용을 받는 데 있었다. 사우디법에는 일정기간동안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그 권리가 소멸하는 ‘소멸시효제도’가 없었던 것. 외환은행의 보증 이행채무도 당연히 소멸될 리가 없다. 그러나 외환은행이 이를 이행하게 되면 발생하는 구상권에 기한 제일은행의 보증채무는 우리 민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상사소멸시효 5년에 걸리게 된다. 외환은행으로서는 사우디로부터 언제 이행을 강요당할 지 모르는 상황이고, 제일은행의 보증채무는 언제 소멸될 지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외환은행은 사우디 보건성의 갑작스런 이행청구에 대비해 제일은행을 상대로 보증채무의 존재를 확인하는 소송을 시효중단을 위해 5년마다 한번씩 제기해야 할 판이다. 사우디 보건성이 외환은행에 대한 채권을 만약 망각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아마 제일은행에 대한 채무존재확인소송이 언제 끝나게 될 지 아무도 모를 판이다.
배장호 기자 codablue@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