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2일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도산 사건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종합 에너지 기업인 엔론(Enron)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텍사스 휴스턴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집권 공화당의 중요한 재정적 후원자였다는 점 때문에 그 동안 여러 각도에서 언론의 관심을 받아 왔다.
그런데 최근 미국 법무부가 수사에 착수하고,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하원의 각종 소위원회들이 공식, 비공식 조사를 시작하면서 사건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특히 회사의 주요 회계자료중 일부가 파기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그동안 엔론사와 관계를 맺어 온 전현직 고위 관료와 정치인의 이름이 속속 드러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언론과 호사가들은 일차적으로 이들 사건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폭발성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들 사건의 본질을 ‘금융시장에서의 외부투자자 보호’차원에서 파악하고 싶다.
우리 나라의 경우 각종 게이트에 연루된 기업에 투자한 사람들은 대박을 꿈꾸다 쪽박을 차고 말았다. 그중에는 물론 보물선의 꿈을 그리던 현대판 몽상가도 있었지만 정상적인 투자마인드를 가졌던 투자자라 해도 어찌해 볼 도리없이 그대로 당하고 만 경우도 많았다.
투자자 보호제도가 잘 발달해 있다는 미국에서도 이번 엔론사의 투자자들은 허무하게 주저앉고 말았다. 외부 파트너쉽이라는 첨단(?) 부외거래 기법을 통한 위험감추기, 회계자료 파기하기, 자사주 취득을 통해 특정인을 봐 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주가 떠받치기, 회사상황에 대해 불성실하게 공시하기, 퇴직금계정에 주식을 편입한 근로자에게는 주식매각을 금지하면서 자신들은 시간 맞춰 주식 내다 팔기 등 명시적으로 불법이거나, 적어도 매우 석연치 않은 행동들이 잇달아 발생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 났는가. 그리고 이런 일들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이번 사태를 보면서 이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차분하게 생각해 보면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이 하나 둘씩 나타나게 된다.
우선 이번 사태의 개연성은 오래 전부터 예견되었던 것들이다. 틈만 있으면 기업가들이 외부 투자자의 돈을 빼돌리려고 하고, 따라서 각종 견제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은 현대 기업재무 이론의 기본 전제이다. 이번 사건이 잘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열 사람이 도둑 하나 못 막는다’는 속담에서 보듯이 견제장치가 여간 견고하지 않고서는 이런 행동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견제장치 자체가 제대로 된 것이 없기 때문에 매우 원시적(?)인 기법을 통해서도 투자자의 등을 칠 수가 있었다. 따라서 기업지배구조를 선진화하고 회계제도와 공시제도를 정비하는 등 기초적인 견제장치를 강화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미국에서 벌어진 엔론사의 경험은 이런 제도를 도입만 한다고 해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것이 아님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엔론에는 이사회도 있었고, 외부 회계법인에 의한 감사도 있었고, 또 주요 사실에 대한 회사의 공시의무도 있었다. 이들 장치중 몇 개 만이라도 제대로 작동했다면 이런 대형사고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장치를 구동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감독기관이고 궁극적으로는 소송이다. 특히 최후의 보루인 소송이 중요하다. 그 곳에서 적절한 문제제기와 합리적인 판결이 있게 되면, 역순으로 먼저 감독기관이 정신을 차리고 다음에 각종 견제장치들이 비로소 어느 정도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되고, 그에 따라 경제원리에 부합하는 투자활동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목하 각종 게이트와 관련한 수사와 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 철저한 수사와 합리적인 판결은 비단 정의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경제적 효율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과정이다.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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