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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과 소비, 그리고 미덕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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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1-10-28 22:26

[苧洞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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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부터 남대문 모퉁이 한국은행 앞을 지나다 보면 ‘건전한 소비는 국가경제 발전에 보탬이 된다’는 내용의 제법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저축은 언제나 미덕이고 그래서 돈이 없어 저축을 못하는 내 신세가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걸림돌이라도 되는 것 같아 괜히 죄인처럼 주눅이 들면서 한국은행하면 언제나 ‘저축을 강조하는 곳’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던 나에게는 ‘ 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이 변했구나’하는 각성을 하면서도 언제부터인가 ‘미덕’이 ‘저축’과 헤어지고 대신 ‘소비’라는 새 애인하고만 노는 것을 조장하는 것 같아 다소 생뚱맞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한국은행의 설명인즉 경제가 워낙 침체되고 수출도 부진하고 해서 내수를 진작시켜 경기를 회복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 같아 정부시책에 적극 호응하는 차원에서 이런 현수막을 걸었다는 설명이다.

한국은행에서 돈은 많이 푸는데 사람들이 돈을 쓰지 않아 소비가 위축되고 소비가 위축되니 생산이 부진하고 이런 악순환이 거듭되어 경제가 침체된다는 전문가의 말씀이다. 전문가의 말씀이니 지당하시겠지 하면서도 ‘동전 반, 먼지 반’ 뒹굴고 있는 내 주머니나 주위 사람들 지갑 사정을 보아 어쩐지 수긍이 잘 안되는 것 같아 더듬거리는데 마침 지하도 입구에서 한아주머니가 명함을 쑥 내민다. 고리사채를 싼이자(?)로 쓰라는 안내장이다. ‘아, 이제는 사채를 내서라도 소비를 좀 해야 나도 살고 나라경제도 살겠구나’ 하는 기특한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진짜로 우리 일반 국민들이 너남없이 소비대열에 나서면 풀이 죽은 우리 경제가 비아그라 먹은 듯이 살아날까. 또 과연 ‘건전한’ 소비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소비, 과소비, 절약 이런 것은 있을 수 있어도 아무래도 ‘건전한 소비’라는 문제의 본질을 피해가는 것 같은 ‘정책적’인 표현에는 마냥 수긍하기 힘들다. 우리 국민들이 그동안은 ‘불건전한 소비’를 일삼아 경제가 이렇다는 말인지. 물론 이제는 기댈데가 없어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내수라도 살려 보려는 당국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나 경제의 내수 의존도와 수출 기여도 등 기본적인 지식만 있어도 이런 말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경제발전을 위한 내수경기의 진작이란 문제의 본질은 대다수 국민들이 ‘건전한’ 소비를 하지 않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경제의 본질적인 문제는 ‘너무나도 적은 사람이 너무나도 많은 돈을 굴리고 있고,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너무 적은 돈을 만지고 있다’는데 있다. 경기의 전망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할 때는 뭉칫돈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면서 증식을 하고 그 부스러기라도 떨어지면서 돈의 흐름이 보였는데 미래가 불확실하고 세계 경제가 동반 추락을 하고 있는 지금은 이런 소수의 뭉칫돈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그동안 뭉칫돈이 가는 곳마다 언제나 관련 산업이 호황을 보이며 경기 회복의 유인이 되지 않았던가. 한때 아파트, 건설 경기가 그랬고 얼마 전에는 IT, 벤처산업이 그랬듯이. 이런 거대한 투기성 대기 자금이 산업 생산 자금으로 갈수 있도록 유도하고 기업가들로 하여금 적극 투자에 나서게 멍석을 까는 것이 경제 정책이고 이를 잘 실천해야 하는 사람이 경제부처 공무원이다. 이것까지는 국민의 몫은 아닌 것이다.

국민들의 건전한 소비가 부족해 경제가 이 모양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정책의 선후가 한참 뒤바뀌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금은 서민들이 앞으로의 장기 경기 침체에 대비해 소비를 줄이고 차라리 저축을 늘려야 할 시점이다. 부자들은 이미 정부에서 소비를 조장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넘치도록 매일 매일 과소비를 하고 있다.

당신들이 지금 경기 회복에 도움을 주겠다는 생각에 없는 돈을 만들고, 쌈짓돈을 털어 소비에 나서면 나중에 진짜 불경기가 닥쳤을 때는 어디가서 하소연 할 곳도 없다는 사실을 일러주고 싶다.

아직까지는 간통죄는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도 있는 만큼 당국은 더 이상 ‘소비’와 ‘미덕’의 불륜을 부추기지 말고 ‘미덕’을 ‘저축’이란 조강지처에게 돌려보내야 할 것이다.

제38회 저축의 날에


<강종철 편집위원>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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