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가 창간 7주년을 맞아 지난해 2월 금융권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조흥은행은 평화은행 다음으로 미래가 어두운 은행으로 평가받았다.
금융당국자들 역시 비슷한 평가를 내렸다. 한빛은행은 상업 한일은행의 합병을 계기로 5조원 이상의 공적 자금이 투입되고 정부가 국책 프로젝트로 추진할 만큼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만큼 걱정할 게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외환은행은 코메르츠가 대주주로 들어와 대내외 신인도가 크게 높아졌고 우수한 맨파워를 자랑하고 있어 경영이 빠른 시일안에 정상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렸다.
이에 비해 조흥은행은 외자유치도 못했고 부실 투성이인 지방은행을 2개나 인수해 앞으로 가장 골치거리가 될 것이라는 게 당국자들의 공통된 평가였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3개 은행에 대한 시장과 금융당국의 평가는 조금 달라졌다. 장래가 가장 어두웠던 조흥은행이 오히려 한빛 외환은행과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일각에서는 최근 들어 은행권 2차 구조조정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데는 한빛 외환은행에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빛 외환은행이 기대에 부응했다면 정부나 금융당국의 고민은 훨씬 적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아직은 충분하다고 볼 수 없고 ‘오십보 백보’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지만 조흥은행의 한빛 외환은행과의 차별화 시도는 몇몇 곳에서 조금씩 가시화되고 있다.
1/4분기 결산 결과 조흥은행은 1200억~1400억원의 당기순익이 예상돼 한빛은행의 1000억원, 외환은행의 200억~300억원에 비해 앞서고 있다. 한빛은행의 1천억원 순익에는 한통프리텔 주식 70만주 매각에 따른 특별이익 500억원이 포함돼 있음을 감안하면 조흥은행의 순익은 특히 의미가 있다.
지난달 미국의 세계적 신용평가 기관인 S&P로부터 BB의 신용등급을 받은 것도 눈여겨 봐야할 대목이다. BB등급은 국내에서는 우량은행으로 평가받는 국민 신한은행과 같은 등급이다. S&P가 이같은 등급을 부여한 것은 조흥은행이 그동안 추진해 왔던 구조조정 노력과 날로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는 리테일 부문에서의 강점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가변성이 크긴 하지만 조흥은행의 차별화 시도는 주가에서도 반영되고 있다. 한빛은행과 외환은행 주가는 지난주 1000원대로 떨어졌지만 조흥은행은 그래도 2000원대에서 턱걸이를 하고 있다. 주가 측면에서는 조흥은행도 할 말이 없지만 외환은행을 앞지른 것에 대해서는 평가할 만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밖에도 조흥은행의 장래를 밝게 하는 요인은 몇 가지 더 있다. 리테일 금융의 핵인 신용카드 부문에서 조흥은행이 최근 보이고 있는 행보는 놀랍다. 2월말 현재 우리나라 전체 신용카드 이용액 가운데 조흥은행이 차지하는 비율은 9.1%로 외환카드의 7.3%를 앞지르고 있다.
한편 조흥은행은 워크아웃 기업인 아남반도체 주식을 840만주(주당 취득가 5000원)나 갖고 있고 추가로 560억원을 출자, 700만주(주당 8000원)를 확보하게 되는데 올들어 반도체 경기 활황에 힙입어 주가가 계속 오르고 있어 조흥은행은 올해 여기에서만 최소 4000억원 정도의 평가익 내지 특별이익 시현을 예상하고 있다.
96년 러시아 국공채 투자와 관련 현대투신과 벌인 법정 공방에서 조흥은행이 법원으로부터 지난달 30일 1차 승소판결을 받음으로써 앞으로 1000억원 이상의 손실배상을 받게된 점도 호재가 되고 있다.
조흥은행이 대형 부실은행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차별화를 시도할 수 있게 된 데는 이처럼 우발적 성격의 호재 요인도 없지 않지만 기본적으로는 리테일 부문에서의 탄탄한 영업기반과 CEO를 비롯한 경영진의 리더십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외환은행이 유리한 경영여건을 갖고서도 리더십 부재로 흔들리고 있고, 한빛은행은 김진만행장 이수길 부행장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리더십에도 불구 대등합병이라는 조직 구조상의 취약점 때문에 머뭇거리는 사이에 조흥은행이 치고 나가고 있다는 것이 금융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박종면 기자 myun@kf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