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정부당국이 압력을 넣어서가 아니라 내부 분란과 경영자의 리더십 부재로 지난해 어렵게 ‘쟁취한’ 자행출신 행장 자리를 1년만에 외부인사에게 넘겨주는 상황을 맞게됐다.
이갑현행장의 사퇴 선언을 놓고 금융계와 일부 언론에서는 정부당국의 외압설 내지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지만 사실과 전혀 다르다.
물론 대주주인 정부가 추천해 취임한 박영철 이사회의장이 이갑현 행장과 끊임없이 갈등을 빚고 이것이 이번 사태의 遠因이 됐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주총을 이틀 앞둔 23일 하오 6시경부터 다음날 오후 사태가 일단락되기까지의 상황을 추적해 보면 한마디로 자중지란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금융계 관계자들은 “그동안 금융권의 인재풀로 인정받아 온 외환은행 경영진과 간부들이 이번 사태를 푸는 과정을 보면 과거 한통사건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외환은행이라는 조직과 KEB맨들을 재평가하게 만든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외환은행의 내부 갈등이 본격화된 것은 이갑현행장이 동경에서 열린 APBC회의에 참석하고 귀국한 지난주초부터였다. 김경민 前환은스미스바니증권사장을 수석부행장으로 영입하는 문제가 분란의 소지를 제공했다.
이갑현행장은 김경민씨의 부행장 영입에 긍정적이었던 반면 노조와 기존 임원들은 반대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김경민씨의 수석 부행장 영입은 지난 22일부터는 유야무야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세싸움에서 이행장이 밀렸다는 해석도 나왔다.
수석부행장 영입 문제가 마무리되면서 조용히 넘어갈 것으로 보였던 외환은행 주총은 노조가 23일 은행장 이사회의장등 기존 경영진의 전원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이번 주총에서 퇴임시킬 임원을 놓고 이행장, 노조, 임원들간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이행장은 박의장에게 우의제상무 장병구상무 권우진이사를 퇴임시키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이에 대해 박의장은 비상임이사들도 그대로 가는 상황 등을 들어 상임이사들도 유임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편 외환은행 노조는 이행장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조병훈이사 주원닫기

이같은 은행 내부의 갈등은 23일 꼬박 밤을 세운 끝에 24일 상오에는 우의제 장병구상무가 이번 주총에서 물러나고 은행장도 동반 사퇴하는 것으로 합의됐으나 대주주인 정부와 코메르츠은행, 금융당국이 개입하면서 이행장 단독 사퇴로 다시 바뀌었다.
그러다가 24일 오후 늦게 금융당국은 이행장 퇴진시 예상되는 관치인사 시비를 우려, 새 행장 선임때까지 은행장을 포함한 전 임원이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입장을 바꿈으로써 25일 주총은 임원인사 없이 그냥 넘어갔다.
결과적으로는 4.13 총선이 외환은행 경영진의 자리를 지켜준 꼴이 됐지만 외환은행이 앞으로 ‘삼류은행’의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높기만 하다.
무엇보다 하루빨리 조직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일이 시급한데, 새 은행장이 선임돼 경영진 개편이 단행되기까지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금융계는 물론 행내 여론도 물러날 사람은 하루빨리 조직을 떠나야한다는 쪽이고, 사실상의 경영공백 상태에서 벌어질 갖가지 모럴 해저드를 감안하면 걱정이 앞선다는 지적이지만 이것마저 여의치 않은 상황이고 보면 KEB맨들로서는 답답할 수 밖에 없다.
자행출신 행장을 통한 경영개혁이 좌절됨에 따라 신임 외환은행장은 외부 인사가 확실시되고 있다. 노조까지도 젊고 유능한 전문 경영인 영입을 주장하고 있다. 외환은행 중간 간부들도 확실하게 개혁을 할 수 있고 2차 은행권 구조조정 과정에서 주도적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파워있는 외부인사 영입을 바라는 분위기다.
외환은행 내부에서는 이와 관련 오호근 양만기 정건용씨등의 이름이 자주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한은 출신 인사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이다.
드로스트 부행장은 25일 주총에서 우리정부의 일방적 합병 강요는 수용할 수 없고 기존 외환은행 지분을 빼 나갈 생각도 없다고 밝혔지만 코메르츠은행 역시 대주주로서 주가를 올리는 합병이라면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외환은행 입장에서는 코메르츠가 추가로 출자를 한다면 더 없이 좋을텐데 코메르츠 역시 ABN암로나 HSBC와의 합병을 고민해야 할 만큼 여유가 없다는 점이 부담이 되고있다.
어쨌던 앞으로 몇 달간은 외환은행이 다시 불명예를 벗고 재기하느냐 아니면 삼류은행으로 전락하느냐는 중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종면 기자 myun@kf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