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부제 도입등 내부 혁식작업을 벌이고 있는 금융기관들의 ERP수요는 향후 2~3년간 수천억원대로 평가되고 있다. 이미 제조업등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들은 사업자 선정이 끝난상황이라면 금융권은 이제 태동기. 그만큼 현재의 금융권은 절대 놓칠 수 없는 ‘황금알’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다.
자연히 초기 시장의 주도권을 쥐려하는 업체간의 과당경쟁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 물론 이러한 과당경쟁으로 인해 ERP도입을 먼저 서둘렀던 금융기관들은 역으로 적지않은 ‘수혜’를 입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미 은행권에서는 국민, 조흥과 외환은행이 각각 종합수익관리시스템 구축과 예산관리업무에서 부분적으로 ERP의 개념을 채용했다. 현재 부산은행이 업체선정에 들어갔고 일부 시중은행들도 올 연말까지 업체선정을 마무리지을 계획. 최근에는 증권업계로 번져 굿모닝증권에 이어 대우증권과 LG증권, 대한투신이 적극적인 도입을 검토중이다. 지금까지는 SAP와 오라클이 팽팽한 견제를 하면서 어느 한쪽의 독주도 허용치 않고 있다.
그러나 최근 벌어진 굿모닝증권의 ERP프로젝트 수주전을 놓고 벌인 SAP와 오라클 두 업체의 ‘泥田鬪狗’는 도를 지나쳤다는 비난과 함께 굿모닝증권 자체가 애꿎은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굿모닝증권측은 당초 예상가격의 20%에 패키지를 구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21일 굿모닝증권이 오라클로 잠정결정했다는 소문이 나돌자 SAP측이 가격을 낮춰 막판 역전을 노렸고 이에 자극받은 오라클이 다시 가격이 낮추는 상황이 순식간에 연출된 것.
이는 불과 하룻밤사이에 일어난 일. 이 두 업체 모두 증권업계 ‘최초’의 ERP시장 진출이라는 상징성을 확보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시장의 난전에서나 볼 수 있는 이러한 저급한 경쟁의식이 ERP를 큰 맘먹고 도입하려는 고객에게 고스란히 피해가 전가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부실공사의 가능성. 제값받지 않고 떠넘긴 상품에 정성이 깃들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 몇개월씩 지속될 프로젝트에 역마진을 감수하면서 계속 충실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지적이다. ERP구축은 주로 컨설팅업체가 구현작업을 맡고 패키지공급 업체는 필요할 경우 자사 패키지에 정통한 컨설턴트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해당 금융기관의 전후사정을 꽤뚫고 있는 유능한 컨설턴트의 확보여부가 ERP구축 성공의 관건인 셈.
그러나 이러한 ‘네거티브 게임’에서는 유능한 컨설턴트를 제대로 공급해 줄 가능성은 희박해 진다. 결국 명분에 매달렸던 프로젝트 수주전때와는 달리 실제 구축에 들어가면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연스런 ‘시장의 논리’가 지배하기 시작한다. 비싼 돈을 들인 고급 컨설턴트가 참여할 가능성이 없어진다는 얘기. 결국 해당 금융기관은 초기구축 비용은 싸게 먹혔지만 자칫 잘못하면 수개월동안 ‘시간에 대한 기회비용 상실’이라는 엄청안 무형의 손해를 입게될 우려가 있다.
또한 이는 SAP와 오라클로 양분돼 있는 금융권 ERP공급업체들의 독점 내지는 과점 상황에서 촉발된 것일 수도 있다. 독점과 과점의 폐해는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경제원론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경쟁력을 갖춘 제3의 업체들의 등장이 절대 필요한 시점이라는 금융권의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않다.
박기록 기자 rock@kf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