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조흥은행 입장에서 이제와서 공개적으로 본점 이전을 못하겠다고 나서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미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된 사안인데다 본점 이전을 거부할 경우 개혁의지의 퇴색으로 비쳐지고 4월14일로 예정된 은행장 인사에 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부 일각에서는 본점 대전 이전과 충청출신 인사의 은행장 선임을 동일 티켓으로 밀고 나가려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조흥은행 사람들이 말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없지않다.
<경제논리로는 납득되지 않는 본점이전> 조흥은행 본점이전은 공동정권의 양대 지역기반중 하나인 충청지역 은행들의 잇단 폐쇄에 따른 지역 민심달래기 차원에서 추진돼 결과적으로 합병파트너를 잡지 못해 코너에 몰려있던 조흥은행이 십자가를 지고 말았다. 금융계에서는 조흥은행 본점이전을 과거 정치논리에 따른 동남 대동 동화은행등의 신설과 다를 게 없으며 그 귀결점이 무엇인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는 중론이다.
금융당국이나 정치권은 조흥은행의 본점 이전을 국토의 균형적 발전, 지역금융 활성화 등을 내세워 합리화하고 있지만 수도에 있던 본점을 지방으로 옮긴 예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같은 주장의 허구성이 입증되고도 남는다.
조흥은행 고객기반은 서울 및 수도권이 80% 이상이며 충청권은 3% 내외에 불과하다. 조달 및 손익기반도 서울과 수도권이 80%를 넘는다. 점포도 총 4백4개중 2백66개가 서울 경인지역에 분포돼 있다. 고객과 수익기반이 몰려있는 수도권을 버리고 대전으로 본점을 옮긴다는 것은 한국적 상황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같다.
조흥은행이 내부적으로 한국갤럽에 의뢰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본점을 대전으로 옮길 경우 12.2%의 고객이 이탈할 것으로 드러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이전에 따른 비용이 1천억원을 상회하고 대형 시중은행이 지방은행화된 것으로 오인돼 국제적인 신용도 하락까지 우려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매이저 뱅크의 지방이전에 대해 해외투자가들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치권이나 금융당국 일각에서는 일본의 스미토모은행이나 산와뱅크등이 지방에 본점을 두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있지만 이들 은행은 당초 영업발상지가 지방이었고 영업망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과정에서 지방과 동경에 2본점 체제를 유지하고 동경본점을 점차 강화해 본점 업무의 70%이상이 동경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감안하면 궤변에 불과하다.
<은행장인사와도 맞물려있는 본점 지방이전> 조흥은행 노조는 정치논리에 근거한 본점 지방이전 추진에 맞서 단계적 투쟁계획을 세워 실천에 옮기는 등 강력 반발하고 있지만 은행 경영진들은 혹시라도 노조의 반발 움직임이 밖으로 널리 알려질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본점 지방이전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조흥은행 내부의 반발기류가 공론화될 경우 예상되는 파장을 경계해서이다.
조흥은행 경영진들은 사석에서는 본점 이전의 부당성을 주장하면서도 공식적으로는 말을 아끼고 있다. 대신 본점을 이전하더라도 영업관련 부서가 아닌 종합기획, 인사, 검사, 서무, 기업분석등 후선관련 부서만 대전으로 가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흥은행 경영진들은 본점 이전문제는 충북은행에 대한 공적 자금 투입이 완료되고 은행장 인사가 끝난 후에나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조흥은행 경영진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본점 이전 문제는 현 경영진의 거취, 나아가 조흥은행 직원들의 꿈인 자행출신 행장 배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치 논리대로 하자면 내년 총선전까지 조흥은행 본점을 대전으로 옮기고 충청출신 인사를 은행장으로 선임하는 수순을 밟게된다. 한빛은행장 인사직후 대전출신의 배찬병씨가 합병 조흥은행장에 내정됐다는 일부 보도가 나온 것은 이같은 기류와 무관치 않다. 지금도 조흥은행 본점의 대전 이전, 배찬병씨 행장 내정說이 일각에서 강력 유포되고 있다. 물론 감독당국의 고위관계자들은 이에대해 적극 부인하고 있다.
합병 조흥은행장에 관심을 두고 있는 일부 인사들중에는 조흥은행 본점이전을 금융개혁과 관련지어 `공약`으로 내걸기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치논리에 따라 조흥은행 본점이 대전으로 옮겨가고 은행장 인사가 연고지 출신으로 이루어지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부실 기업에 청탁대출이나 한다면 조흥은행의 앞날은 불을 보듯 뻔하다. 조흥은행 임직원들이 이 난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종면 기자 myun@kf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