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진이 SR 상임감사
좁은 바닷길이 흔든 세계 경제
2026년 봄,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촉발된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세계 경 제에 예고 없는 충격파를 던졌다. 국내 유가가 급등하고 석유화학 공장은 원료 부족 으로 가동을 줄였다.영국의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두고 "세계 무역의 유일한 취약점은 호르 무즈가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말라카 해협, 지브롤터, 대만 해협, 파나마 운하에 이 르기까지 세계 곳곳의 해상 병목지점(chokepoint)이 언제든 유사한 위기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 수출 물동량의 약 85%가 바닷길을 통과한다. 선박, 철도, 항공기의 운송 비용 비율이 1:5:50으로 추산될 만큼 해운의 원가 경쟁력은 압도적이다. 그러나 그 효율성의 이면에는, 특정 해협 하나가 막히는 순간 세계 공급망 전체가 마비될 수 있다는 치명적 취약성이 내재되어 있다. 지경학(地經學)의 시대라 불리는 오늘날, 물 류의 길목을 장악하는 자가 국부(國富)를 좌우하게 되었다.
단 하나의 해협이 세계를 멈춘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사태가 보여준 본질은 글로벌 물류의 과집중 문제다. 세계 원유 및 LNG 공급 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자 걸프 해역에서만 800척이 넘는 선 박이 발이 묶이거나 항로를 바꿔야 했다. 대형 유조선의 용선료는 전쟁 전 하루 약 9만 달러에서 23만 달러로 폭등했고, 세계 선단은 연료를 아끼기 위해 평균 항속을 2% 낮춰 운항했다. 인근 해역에서는 유조선 수십 척이 꼬리를 문 채 30km 넘게 줄 지어 대기하는 이례적인 광경이 펼쳐졌다.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리스크가 호르무즈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통행량과 전략적 영향력 양쪽에서 호르무즈를 능가하는 말라카 해협은 중국 석유 수입의 80% 가 통과하는 말라카 딜레마의 현장이다. 2003년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언급할 만큼 중국이 오랫동안 전략적 취약점으로 인식해온 이 해협이 분쟁으로 막힌다면 그 충격은 호르무즈 사태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클 것이다.
해협 봉쇄 뇌관 위에 선 한국 경제
그 뇌관 위에 가장 위태롭게 서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블룸버그는 2026년 2 월, 미중 충돌로 대만 해협이 봉쇄될 경우 한국 GDP가 최대 23%까지 감소할 수 있 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수출입이 GDP의 약 80%를 차지하는 무역 의존 경제 구조 에서, 원유 수입의 약 70%가 중동에서 오고 그 대부분이 호르무즈를 통과한다. 해협 하나가 막히는 순간 에너지와 물류가 동시에 멈추는 구조다.해운에만 집중된 물류 체계는 위험 분산의 측면에서 근본적 한계를 노출한다. 대안 항로로의 우회는 수천 마일, 수 주의 시간을 추가하며 비용을 수배로 키운다. 해운의 효율성은 평시의 미덕이지만, 위기의 시대에는 치명적 단일 의존성으로 돌변한다.
봉쇄가 끝나도 끝나지 않는 ‘통행료 리스크’
더욱 심각한 것은 봉쇄가 풀려도 안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란은 2026년 3월 30일 의회에서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에 통행료를 부과하는 법안을 승인했다. 대형 유 조선 1척당 최대 200만 달러, 우리 돈 약 30억 원 수준이다. 이란이 하루 평균 통과 선박 120척 전체에 이를 적용할 경우 연간 1000억 달러 이상의 수입을 거둘 수 있다는 추산도 나온다.더욱이 이란은 통행료를 달러가 아닌 비트코인이나 위안화로 요구하고 있어 국제 제재 우회 수단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수에즈․파나마 운하와 달리 호르무즈는 자연 해협이어서 통행료 징수는 국제법상 근거가 취약하다. 그러나 이란은 이미 잃을 것이 없는 제재 국가로서 실력 행사로 밀어붙이고 있다. 이란은 봉쇄가 아닌 통행료만으로도 세계 에너지 공급망을 쥐고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증명해 보였다.
철도의 구조적 강점 ‘실크로드의 귀환’
유라시아 횡단철도는 해상 병목 리스크를 근본적으로 우회하는 대안 물류망이다. 해운이 규모의 효율을 극대화한 시스템이라면, 철도는 안정성과 속도의 균형을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컨테이너 기준으로 운송 시간은 유럽~아시아 구간에서 해운(25~35 일)의 절반 이하인 12~18일 수준으로 단축된다. 무엇보다 특정 해협의 통제 여부 와 무관하게 운행이 가능하며, 통행료도 없다.탄소 배출 측면에서도 철도는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단위 화물(톤킬로미터)당 CO2 배출량이 해운의 약 3분의 1, 트럭의 7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국제해사기구(IMO) 는 2023년 선박 온실가스 배출을 2050년까지 넷제로(net-zero)로 줄이겠다는 전략을 채택했고, 유럽연합(EU)은 해운사를 탄소배출권 거래제(ETS)에 편입시켰다. 탄소 비 용이 가격에 반영될수록 해운의 저비용 우위는 점차 약해질 것이며, 철도의 친환경 성은 미래 물류 경쟁력의 핵심으로 부상한다.
활용도 높은 유라시아 철도 네트워크
현재 유라시아를 관통하는 주요 철도 노선은 크게 세 가지 경로로 집약된다. 러시아 를 횡단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중국을 관통하는 중국횡단철도(TCR), 그리고 중앙아시아를 경유하는 중앙아시아횡단철도(TCIR)다. 2013년 중국이 제창한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 이후 이 노선들을 중심으로 유라시아 철도 연결망이 빠르게 확충되어 왔다. 그러나 이 네트워크의 동쪽 끝은 아직 미완성이다. 한반도 종단철도(TKR, Trans-Korea Railway)가 러시아 및 중국 노선과 연결되지 못한 채 분단의 장벽 앞에 멈춰 서 있기 때문이다.부산에서 출발한 화물이 육로로 유럽까지 직행하려면 반드시 북한을 통과해야 한다. 이 마지막 단절 구간이 연결되는 순간, 한국은 대륙 철도망의 시발점이자 태평양과 유라시아를 잇는 물류의 허브로 도약할 수 있다.
이중 병목의 덫 피할 육상 대체 루트
현재 중동 원유는 호르무즈를 빠져나온 뒤 말라카 해협을 거쳐 한국에 들어온다. 세 계에서 가장 위험한 두 개의 병목을 연속으로 통과하는 구조다. 봉쇄 위협에 더해 이제는 통행료 리스크까지 추가되었다. 공급 다변화는 더 이상 에너지 정책의 과제 가 아니라 국가 안보의 문제다.현실적인 대안은 세 가지 경로로 집약된다. 첫째, 러시아 시베리아 송유관 연장 루 트다. 중국은 이미 러시아 스코보로디노에서 다칭까지 이어지는 ESPO 지선 송유관 을 2011년부터 가동 중이다. 이 노선을 한반도까지 연장하는 방안은 TKR 연결과 한러 관계 정상화를 전제로 한 중장기 구상으로,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적극 검토해 나갈 필요가 있다.
둘째, 중앙아시아산 원유의 철도 수송 루트다.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산유국의 원유를 TCR(중국횡단철도) 유조 화차에 실어 수송하는 방식이다. 카자흐스탄은 이 미 중국과 아타수~알라샨쿠 송유관(2009년 개통)으로 연결되어 있어 철도와 파이프 라인의 복합 루트 구성이 가능하다. 해상 루트에 비해 지정학적 위험이 낮고 거리도 짧다.
셋째, TKR 연결이 완성될 경우 열리는 완전 육상 에너지 루트다. 중앙아시아산 원 유와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육상 철도와 파이프라인으로 직접 수송하는 이 경로는 호르무즈를 거치지 않고, 말라카 해협도 통과하지 않는다. 통행료도 없다.
에너지만이 아니다. 반도체, 자동차 부품, 의약품 등 고부가 화물 역시 이 루트를 통해 18일 내외면 유럽까지 닿는다. 에너지 안보와 물류 경쟁력이 하나의 철도 연결 로 동시에 해결되는 것이다.
TKR 연결로 대륙의 시작점 될 한반도
한반도 종단철도 연결은 한국 물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전략적 사건이 다. 경의선(서울~신의주~중국 단둥)과 경원선(서울~원산~러시아 하산) 두 축이 연결 되면 부산에서 출발한 화물이 육로로 유럽까지 직행하는 루트가 열린다.연구기관들의 추정에 따르면 TKR과 TSR(시베리아 횡단철도)이 연결될 경우 한국의 대유럽 물류비용은 현재 대비 약 20~30% 절감될 것으로 기대된다. 시간이 곧 경쟁 력인 반도체, 자동차 부품, 의약품, 전자제품 등 고부가가치 화물 물류에서 이 격차 는 결정적 우위로 작용한다.
이미 구축된 한국의 고속철도 인프라는 TKR 시대의 핵심 자산이다. 수도권에서 부 산․목포․강릉까지 연결된 고속철도망은 향후 경의선․경원선 북향 노선과 접속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한국의 철도 전철화율은 이미 82.3%에 달해 탄소중립 물류 체계 구축에 유리한 기반을 보유하고 있다. 표준화된 운영 체계, 안전 관리 시스템, 스마트 물류 기술이 TKR 개통과 함께 대륙으로 확장될 수 있다.
남북철도 연결은 단순한 인프라 사업이 아니다. 그것은 한반도 경제통합의 선행 조건이자, 동북아 물류질서 재편의 신호탄이다. 개성공단이 가동되던 시기, 경의선 화물열차는 남측의 자본과 기술, 북측의 토지와 노동력을 연결하는 협력의 레일 역할을 했다. 철도가 열리면 사람과 자본, 정보와 기술이 이동하고, 그 이동은 신뢰를 낳으며, 신뢰는 더 깊은 협력으로 이어진다.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높아진 지금, 역설적으로 육상 연결의 필요성은 더욱 강해졌 다. 해상 병목이 반복적으로 위협받고 통행료라는 새로운 위험까지 현실화된 환경에 서, 대륙 철도는 분산된 물류 루트를 확보하는 국가 안보적 수단이기도 하다.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은 철도 선택 이유
2050 탄소중립 목표를 향한 국제사회의 전환은 글로벌 물류 체계의 근본적 재편을 요구하고 있다. IMO의 넷제로 전략과 EU-ETS 편입으로 해운의 탄소 비용 부담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반면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으로 운행되는 전철화 철도는 사실상 탄소 배출 제로에 근접한 운송이 가능하다. 전철화율 82.3%의 한국 철도 인프라는 이 전환의 시대에 강력한 경쟁 우위를 제공한다.
국제철도연맹(UIC)의 분석이 확인하듯, 철도는 해운․트럭․항공 대비 압도적으로 낮은 탄소 배출을 자랑한다. 탄소 비용이 공급망 설계의 핵심 변수로 자리 잡는 시대, 친 환경 운송 수단으로서 철도의 위상은 갈수록 높아질 것이다.
지금,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들
첫번째 지금부터 준비해 나가야 할 정책 과제는 남북 철도 연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과 함께 연결 이후의 운영 체계 설계다. 기술 표준, 운임 체계, 세관 협력, 운행 안전 규정 등 복잡한 국제협력 사안들이 사전에 조율되어야 개통과 동시에 실질적인 운영이 가능하다.두번째는 복합물류터미널 구축이다. 철도가 해운을 대체하기보다 보완하는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려면 항만과 철도, 도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복합물류 허브의 구축이 필수적이다. 부산 신항, 인천, 평택항 등 주요 항만과 고속철도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인프라 투자가 요구된다.
세번째는 에너지 수송 루트의 육상 다변화 전략이다. 호르무즈 통행료 리스크가 현실화된 지금, 러시아 송유관 연장 구상, 중앙아시아 철도 수송 확대, TKR 연결 후 완전 육상 에너지 루트 구축으로 이어지는 단계적 로드맵 수립이 시급하다. 네번째로 철도 운영 역량의 통합적 강화가 필요하다. 현재 논의 중인 철도 운영 체계의 개편은 분산된 역량을 하나로 모아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단순한 조직 통합을 넘어, TKR 시대를 내다본 장기적 운영 전략이 함께 수립되어야 한다.
민간과 공공의 역할 분담도 필요하다. 유라시아 철도 연결은 정부의 외교적 리더십, 공공 철도기관의 인프라 운영 역량, 민간 물류기업의 시장 개척력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하는 국가적 과제다. 특히 철도 운영의 안전성과 효율성은 국제 신뢰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공공 철도 운영의 역량 강화는 단순한 서비스 개선을 넘어 국가 전략자산의 구축이다.
레일 위에 그리는 미래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는 단순한 지역 분쟁의 여파가 아니다. 그것은 해운 과의존의 글로벌 물류 체계가 안고 있는 구조적 취약성이 마침내 수면 위로 드러난 사건이다. 봉쇄가 풀려도 이제 그 해협은 공짜가 아니다. 에너지와 물류, 두 개의 생명선이 동 시에 위협받는 시대, 이 경고를 흘려보내지 않는 나라가 다음 시대의 공급망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다.한국은 지리적으로 대륙과 해양의 교차점에 위치한다. 그 위치는 오랫동안 분단의 제약 속에서 반섬나라의 한계로 작용해 왔다. 그러나 남북 철도가 연결되고 유라시아 대륙 철도망에 편입되는 순간, 이 지리적 조건은 최대의 강점으로 전환된다. 부산에서 출발한 열차가 평양을 거쳐 모스크바까지, 베를린까지 달리는 날, 한국은 비로소 대륙과 해양을 동시에 품은 유라시아의 관문이 된다.
그 미래의 레일을 까는 일은, 지금 이 시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박진이 SR 상임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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