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자업계에서 ‘성장 = 리스크’라는 공식이 굳어지고 있다.
전산장애와 가상자산 민원이 폭증하면서, CEO의 경쟁력은 ‘수익’이 아니라 ‘문제를 덜 만드는 능력’으로 바뀌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민원은 12만8000건을 넘어섰다. 특히 금융투자업권의 증가 속도는 유독 가팔랐다. 금투 민원은 전년 대비 65% 이상 급증해 전 권역 중 최고 증가율을 기록했다. 가상자산 관련 민원도 1000% 넘게 늘며 ‘신규 리스크’로 급부상했다. 민원 증가 속도가 실적 증가를 앞지르는 구조가 고착화되는 양상이다.
이 같은 흐름은 단순한 고객 불만 증가를 넘어 사업 구조 변화의 후폭풍으로 해석된다. 디지털 거래 확대와 플랫폼 기반 서비스 확장, 가상자산 진출이 맞물리며 ‘성장 = 민원 증가’라는 역설적인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5분 멈췄는데 수천 건”…전산장애가 곧 집단 민원
증권사 CEO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전산 안정성이다.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장애는 곧바로 투자자 피해와 집단 민원으로 이어진다.한 대형 증권사에선 장중 거래가 수 분간 지연되자, 온라인 커뮤니티와 고객센터에 항의가 폭주하며 단시간에 수천 건의 민원이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투자자는 매도 타이밍을 놓치며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했으며 보상 요구는 집단적으로 확산됐다.
또 다른 증권사 역시 공모주 청약 마감 직전 접속 장애가 발생하면서 주문이 누락됐다는 민원이 제기됐다. 관련 민원이 집중되면서 내부 대응 조직에선 비상이 가동되기도 했다.
과거 ‘지원 조직’에 머물던 IT부문은 이제 사실상 핵심 경쟁력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브로커리지 수수료는 낮아지는 반면 서버·클라우드·보안 투자 비용은 계속 늘고 있다. 투자하지 않으면 사고가 나고, 투자하면 수익이 깎인다.
“이벤트 하나에 민원 폭발”…가상자산, 기회이자 민원 트리거
가상자산은 또 다른 ‘민원 트리거’다. 최근 한 가상자산 플랫폼에서는 거래 이벤트 보상이 일부 이용자에게 지급되지 않으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이용자들은 “조건을 충족했는데도 보상을 받지 못했다”며 집단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관련 민원은 금융당국과 회사에도 동시에 접수됐다.또 다른 사례에선 시세 반영 지연과 API 오류로 거래 체결이 늦어지면서 투자자의 불만이 폭증했다. 일부는 손실 책임을 두고 분쟁으로 확산됐다.
증권사와 자산운용사가 추진 중인 토큰증권(STO)과 디지털자산 사업 역시 구조적 리스크를 안고 있다. 규제와 소비자 보호 체계가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서비스의 빠른 확장은 곧 민원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업계 관계자는 “가상자산은 분명히 기회다. 하지만, 민원이 수익을 잠식하는 순간 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팔고 끝 아니다”…설명 부족이 민원으로 돌아온다
민원의 상당수는 상품 판매 이후 단계에서 발생한다.실제 일부 투자자들은 고위험 ETF나 테마형 펀드 투자 이후 손실이 발생하자 “위험성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았다”며 민원을 제기했다. 특히 시장 변동성이 커질수록 수익률 하락에 대한 책임 공방이 이어지며 분쟁으로 번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ETF와 펀드 시장이 커질수록 자산운용사의 역할도 단순 운용을 넘어 투자자 커뮤니케이션까지 확장되는 추세다. 상품 성과뿐 아니라 ‘얼마나 명확하게 설명했는가’가 민원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처리 지연이 또 다른 리스크…“시간이 비용”
민원 처리 기간이 평균 46.6일까지 늘어난 점도 부담이다. 처리 지연은 추가 민원과 분쟁으로 이어지며 이는 다시 평판 리스크로 확산된다.실제, 민원 대응이 늦어지면서 같은 사안이 반복 접수되거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이슈가 확산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시간 지연 → 불신 확대 → 추가 민원’의 악순환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에 CEO들은 내부통제 강화, 민원 전담 조직 확대, AI 기반 고객 응대 시스템 도입 등 대응책 마련에 힘쓰고 있다. 다만 이 역시 비용 증가로 이어지는 또 다른 부담 요인이 되고 있다.
“성장보다 신뢰”…금투업 경쟁 공식 바뀐다
결국 고민은 하나로 수렴된다. 성장을 밀어붙일수록 민원이 늘고, 민원을 줄이기 위해선 성장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전산 투자 확대는 비용 부담을 낳고 가상자산 진출은 민원 리스크가 커지고 상품 다양화는 설명 책임으로 이어진다.
금융투자업계 CEO들의 화두는 더 이상 ‘얼마를 벌 것인가’가 아니다. ‘얼마나 문제를 덜 만들면서 성장할 것인가’로 옮겨가는 양상이다.
민원은 사후 관리 이슈를 넘어 사업 전략 전면의 핵심이 되고 있다. 이제 금융투자업의 경쟁력은 ‘얼마나 덜 문제를 만드느냐’, 즉 신뢰 관리 능력에서 갈리게 된다.
성장 전략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은 시대다. 수익보다 민원이 더 빠르게 쌓이는 시장, 금융투자업의 룰이 바뀌고 있다.
금융투자업의 경쟁 공식은 바뀌고 있다.
얼마나 벌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덜 문제를 만드느냐다.
김희일 한국금융신문 기자 heuyil@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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