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비메모리 자회사 SK키파운드리가 적자에 빠진 8인치 파운드리 시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력반도체 사업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다는 소식에, 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확실히 이 회사는 최근 2년 사이 적자 전환할 정도로 실적이 악화했다. 같은 반도체 기업이건만, 연일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SK하이닉스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속단할 수 없다. 메모리 시장에서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를 앞서갈 줄 누가 예상이나 했었나.
◇ 18년 만의 ‘복귀’
SK키파운드리는 SK하이닉스 100% 자회사다. 출발은 1979년 설립된 LG반도체로 거슬러 올라간다. LG반도체는 1999년 외환위기 때 정부 주도 ‘빅딜’로 당시 현대전자와 합병했다. 덩치가 커진 반도체 회사는 반도체 시장에서 생존을 노렸으나 과도한 부채와 현대그룹 ‘왕자의 난’ 이후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
현대를 나와 사명을 하이닉스로 고친 뒤 2004년 비메모리 사업부를 사모펀드에 넘겼고 이는 매그나칩반도체가 된다.
그러다 2022년 SK하이닉스가 매그나칩 파운드리사업을 인수했다. 현재 SK키파운드리다. 18년 지나 SK하이닉스 품으로 다시 돌아온 셈이다.
사실 SK하이닉스는 파운드리 사업부문을 이미 갖고 있다. 2017년 분사한 SK하이닉스시스템IC라는 곳이다. 스마트폰·TV·모니터·노트북 등에 들어가는 8인치 웨이퍼 기반 범용 반도체인 카메라 센서(CIS), 디스플레이 구동칩(DDI), 전력관리칩(PMIC) 등을 위탁 생산한다. SK키파운드리와 사업 영역이 겹친다.
차이가 있다면 SK하이닉스시스템IC는 중국 우시 법인을 중심으로 고객을 확보하고 있고, SK키파운드리는 미국 산호세, 중국 상하이 법인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SK하이닉스시스템IC는 중국 법인 지분 일부를 매각하고 국내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반면 SK키파운드리는 SK㈜로부터 SK파워텍을 인수하는 등 사업을 확장했다.
◇ 인수 후 적자전환·매출 반토막
모회사 SK하이닉스가 승승장구하는 것과 달리 SK키파운드리는 실적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SK하이닉스와 사업 연관성이 거의 없어 외부 고객사들로부터 물량을 확보해야 한다. 8인치 파운드리 업계는 코로나 이후 IT기기 수요 부진에 따른 반도체 불황을 직격으로 맞았다.
SK하이닉스가 인수한 2022년에는 분위기가 좋았다.
그해 SK키파운드리는 매출 8425억원, 영업이익 2333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37% 증가하고 영업이익은 174%나 오른 최대 실적이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실적이 급격히 꺾였다. 2023년 매출 5220억원으로 전년보다 38% 줄고, 영업손실 672억원으로 적자전환했다. 지난해에도 이와 비슷한 실적 부진을 겪었다.
업계 관계자는 “2023년 이후 SMIC 등 중국 8인치 파운드리 업체가 공격적으로 생산 능력을 키웠다”며 “중국 사업에 비중이 높은 국내 기업들이 타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전력반도체 ‘승부수’
SK키파운드리의 SK파워텍 인수는 고부가 사업 확장이 시급한 상황에서 이뤄졌다. 현금 확보가 급했던 SK㈜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윈윈’ 딜이다.
올해 3월 SK키파운드리는 SK㈜가 보유한 SK파워텍 지분 전량(98.59%)을 25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SK파워텍은 실리콘카바이드(SiC) 전력반도체 사업을 영위하는 회사로, SK㈜가 지난 2022년 인수했다. 전력반도체는 전기차, 전자제품, 5G 통신망 등에서 전류 방향과 전력 변환을 제어하는 필수 반도체다. SiC는 일반 실리콘(Si)보다 고전압, 고전류 고온에서도 전력 변환 손실이 적은 신소재다.
SK실트론으로부터 SiC 웨이퍼를 공급받아 제품을 만들고, 이를 그룹 내 배터리 계열사에 판매하는 그림을 그리고 투자를 단행했다.
그러나 포트폴리오 리밸런싱 과정에서 SK실트론이 정리 대상에 오르며 SK파워텍 매각도 함께 추진됐다. 결과적으로 외부 매각이 아닌 유동성이 풍부한 SK하이닉스가 간접적으로 끌어안는 형태가 됐다.
◇ 파운드리 전문가 투입
SK키파운드리 이사회는 2022년 8월 인수 마무리 직후 SK하이닉스 사람들로 채워졌다. SK그룹 파운드리 전문가 이동재 대표를 비롯해 김달주 성장지원담당, 진보건 SK하이닉스 기업문화담당, 최소정 SK하이닉스 코퍼레이트디벨롭먼트담당 등이다.
이동재 대표는 1962년생으로 성균관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삼성전자에 반도체 엔지니어로 입사해 15년간 근무했다. 이후 싱가포르 파운드리 차터드세미컨덕터(현 글로벌파운드리스)로 자리를 옮겨 11년간 일하다가 2009년 SK건설(현 SK에코플랜트) 개발기획실장으로 국내 복귀했다. 2014년부터 SK하이닉스 파운드리·신사업부장, SK하이닉스시스템IC 대표이사를 거쳐 SK키파운드리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이 대표는 최근 “전력반도체 라인업을 넓혀 전력반도체 전문 파운드리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곽호룡 한국금융신문 기자 horr@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