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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소도시의 부활③] 누구나 탐내는 매력적인 해외 소도시, 그 안에 숨은 변화의 스토리

김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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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8-07-18 11:47

소도시에 살어리랏다! 다시 커지는 소도시 부활의 노래 ⑶ 도시재생으로 다시 생기 찾은 해외의 소도시들

[한국금융신문 김민정 기자]


한국의 도시는 동맥경화 상태다. 한국 국토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50%가 살고 있다.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는 말처럼 서울은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목적지이자 모든 이목이 집중되는 단독 주연이었다.

반면 수도권 중심의 불균형 성장이 오랜 기간 지속되면서 지방은 낙후됐다. 30년 안에 전국 시군구의 37%, 읍면동의 40%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하지만 최근 독특한 아이디어와 비즈니스, 라이프스타일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매력적인 소도시들이 국내에도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도시들은 지역에 잠재돼 있는 공간과 사람, 콘텐츠의 재발견 등을 통해 다시 부활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소도시로 간다.


도시는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이다. 매일 매일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터전이기도 하다. 도시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는 까닭도 도시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지대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도시화율은 90%를 넘어 이미 대다수의 국민들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도시가 효율적으로 기능하지 않고 도시경제가 활성화되지 않는다면 국민들의 삶의 수준도 나아질 수 없다.

하지만 꼭 대규모 도시들만이 성공적인 도시발전을 이루어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범죄도시에서 문화도시로의 변화에 성공한 영국의 소도시 리버풀이나 주민주도형 도시재생 마을인 일본의 나가하마 같은 도시들도 세계 곳곳에는 즐비하다.




우범지대에서 세계적 관광명소로 탈바꿈한 ‘비틀즈의 도시’

세계적인 팝그룹 비틀스의 고향으로 유명한 영국 리버풀은 매년 수백만명이 방문하는 영국의 대표적인 관광 도시다. 라이브 클럽이 밀집한 리버풀 중심가 매튜 스트리트는 비틀스의 숨결을 느끼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세계 축구 팬들은 리버풀 FC를 응원하기 위해 앤필드 로드 스타디움으로 향한다.

리버풀 박물관과 도서관, 공연장도 언제나 관광객들로 붐빈다. 도시 곳곳을 둘러봐도 불과 30년 전 리버풀이 가난과 실업을 대표하는 쇠락한 도시였다는 것을 느끼긴 어렵다. 지역사회의 참여를 바탕으로 음악·미술·공연·스포츠 등 다양한 문화 인프라를 구축해 문화 도시로 변신한 덕분이다.

영국 서쪽 바다 아이리시해의 작은 도시 리버풀은 17세기 해상무역으로 크게 성장했다. 18세기에는 카리브해 노예무역의 중심지로서 전 세계 해상무역의 40%가 리버풀을 통해 이뤄졌다. 그런데 19세기 말부터 리버풀 경제는 침체의 길을 걸었다. 산업 구조가 변하며 도시 경제가 쇠퇴하기 시작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집중폭격을 당했다. 1981년에는 인종 차별을 불씨로 폭동까지 발생했다. 이후 사람들은 사람들은 도시를 떠났고, 낡은 항구 주변은 우범지대가 됐다.




이에 리버풀은 본격적인 도시재생을 추진했다. 도시를 따라 흐르는 머지강의 이름을 딴 ‘머지사이드 구조계획’을 수립해 낡은 도시를 문화·상업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특히 유럽연합(EU)이 선정한 ‘2008 유럽 문화 수도’로 뽑히면서 도시재생을 염원하는 시민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음악·미술·공연·스포츠 등 다양한 문화 인프라를 구축했다.

또 문화 수도 프로젝트가 리버풀을 최고 수준의 문화 도시로 탈바꿈시키는 계기가 되도록 문화관광·국제협력·도시개발 등 관련 부서를 통합한 ‘리버풀 컬처 컴퍼니’를 설립해 운영했다.

이처럼 리버풀의 도시재생 노력은 이벤트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정책 과제로 이어졌다. 노력은 성공적이었고, 현재 리버풀은 영국에서 가장 주목 받는 예술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물론 리버풀의 도시재생사업은 지금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오래된 도시 유산을 정비하고 여기에 리버풀만의 스토리를 입혀 도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프로젝트 초기에는 시 정부가 작업을 주도했다면, 지금은 기업과 지역사회 등 민간이 주도한다는 점이 다르다. 현재 시 정부는 민간 투자를 유치해 시장 중심의 도시 정비가 이뤄지도록 돕고 있다.

지역주민이 주도한 살기 좋은 도시 만들기 프로젝트

나가하마는 일본 시가 현에 위치한 소도시로, 주변에는 전국시대의 많은 역사와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으며 예로부터 물류의 집산지였다.

그러나 1975년부터 나가하마 교외에 대형 쇼핑센터들이 들어서면서 중심시가지가 급격하게 쇠퇴하기 시작했고, 700여개에 달하던 중심 상점가의 점포가 1989년에는 150여개만 남기고 문을 닫아버렸다. 이 같은 중심 시가지의 쇠퇴는 나가하마 시의 침체로 이어졌고, 인구 수도 15%나 감소했다.

중심시가지의 쇠퇴가 지속되자 경제적 활력을 제고하기 위한 도시재생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나가하마의 도시재생 첫걸음은 나가하마 성 재건이었다.

시민들의 기부로 이뤄진 이 사업을 계기로 중심시가지 활성화를 위한 나가하마의 마치즈쿠리(마을 만들기)가 시작됐으며, 나가하마를 ‘개성이 넘치고 아릅답고 살기 좋은 박물관’ 같은 도시로 만들자는 것이 비전이었다.

박물관 도시 구상은 총 3단계로 진행됐다. 1단계인 ‘점의 정비’ 단계에서는 나가하마의 역사 박물관 등 대표적인 역사, 문화적 거점과 점포 휴한지 등을 정비했다.

2단계 ‘선의 정비’에서는 상점가의 도로를 재포장하고 상가의 외관을 전통적인 가옥의 분위기로 바꾸었으며, 상가마다 상징을 만들어 상점별로 차별화가 이루어지도록 했다. 이후 3단계인 ‘면의 정리’는 1·2단계가 이루어진 후 중심시가지 전체를 정비하는 면의 정비로 확대해 나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가하마가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각광받는 주요한 이유는 지역주민이 출자한 주식회사 형태의 다양한 추진 주체들이 시기와 역할을 달리하면서 마을 만들기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는 ㈜구로카베와 플라티나 플라자가 있다.

㈜구로카베는 민간기업과 시가 공동으로 출자한 합작법인으로, 이들은 ‘구로카베그룹’이라는 지역 브랜드를 만들어 공동으로 점포를 운영한다.

구로카베는 ‘유리산업’을 나가하마의 재도약을 위한 카드로 꺼내 들었다. 그리고 중심시가지 일대의 빈 점포에 대한 정보를 신속하게 수집해 나가하마의 중심시가지와 컨셉트가 다른 점포의 진입을 막고, 빈 점포와 창고에 디자인 개념을 입혀 재정비했다. 그 결과 나가하마의 도시재생사업은 ‘디자인’의 가치가 빛을 발한 사례로 여겨지고 있다.

플라티나 플라자는 고령자들이 운영하는 점포로 참여자들이 출자하여 점포를 경영하며 고령자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면서 마을 만들기 사업을 추진하는 두 가지 효과를 누리고 있다.


지역의 기존 역사·문화·예술을 유리공예산업과 결합해 관광 상품화하고, 빈 점포를 활용해 세련된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한 나가하마. 이처럼 상업, 문화, 관광산업 분야를 아우르는 마을만들기 사업을 전개한 결과, 쇠퇴했던 나가하마의 중심시가지는 이제 연간 2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마을로 재탄생했다.

시장도 활기를 띠면서 점포를 열고 싶어 기다리는 젊은이들도 많아졌다. 대기업 브랜드도 지역에 하나 둘 생기고, 타지로 나갔던 젊은이들도 고향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 작은 도시의 성공은 나가하마를 사랑하는 주민들이 만들어 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시장 운영에 인력이 필요하면 선뜻 나서서 자원봉사를 하고, 운영 자금에 적극적으로 모금을 했던 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나가하마의 재건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지역의 균형 발전을 위한 정부의 고민은 오래 전부터 이어져 왔다. 과거 수도권 중심의 발전 전략에 기반한 고도의 압축 성장으로 ‘경제 기적’을 이루는 데는 성공했지만, ‘수도권 과밀과 지방의 침체’라는 국토의 양극화가 시작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1970년대 이후부터 다양한 정책을 펼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1973년부터 1990년까지 3차례에 걸쳐 시행된 ‘서울 인구 분산 시책’이 대표적이다. 당시 정부는 이전이 용이한 소규모 국가 연구 기관이나 청 단위 부처를 지방으로 이전하며 지역 발전을 도모했다.

대규모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통한 이른바 ‘혁신도시’ 구축의 밑그림을 그린 것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3년이다. 공공기관 이전을 통해 지역 전략산업과 혁신 클러스터 육성을 지원, 지방에 자립적 발전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 취지였다.

이후 정부는 ‘공공기관 지방 이전’의 법적 근거 등을 마련한 뒤 2005년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공공기관 지방 이전 계획’을 공식적으로 내놓았다. 2007년 10개 혁신도시 지구 지정을 완료한 뒤 이전 대상 공공기관 지방 이전 계획 등을 승인(혁신도시 115개, 개별 이전 19개, 세종시 19개)하며 활발하게 혁신도시 구축을 진행해왔다.

그 결과 현재 공공기관의 이전을 핵심으로 하는 혁신도시 구축은 대부분 완성된 상태다. 당초 계획했던 바와 같이 115개 공공기관이 10개 혁신도시로 흩어져 지난해 말 이전을 완료했다.

다만 그간 혁신도시 정책이 지역별로 부지를 개발하고 공공기관을 이전하는 데 역점을 기울이다 보니 도시의 정주 환경이나 기업 유치 측면에서 문제점이 제기된 상태다.

국토부에 따르면 이전 기관 직원들의 가족 동반 이주율은 대략 50%대로, 교육·의료·문화·복지 등 인프라 시설이 부족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문재인 정부가 ‘혁신도시 시즌2’ 구상을 내놓은 것도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만 초점을 맞추던 기존 정책에서 벗어나 혁신도시 발전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혁신도시 시즌2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최근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 따른 혁신도시 건설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혁신도시 조성 및 발전에 관한 특별법’으로 개정했다. 개정안에 따라 공공기관 이전을 위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공공기관지방이전추진단’은 ‘혁신도시발전추진단’으로 명칭을 바꾼 상태다.

조직 구성은 국토부 2차관을 단장으로 내부에 6개과 총 34명 규모로 구성돼 이전과 같다. 추진단은 혁신도시 정주 인프라 개선 등의 업무를 담당하면서 산·학·연 클러스터 활성화와 지역 생활권 내 상생 발전·협력 등을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이를 통해 각각의 혁신도시들은 고유한 테마에 맞는 이른바 ‘스마트 혁신도시’로 거듭나도록 할 예정이다. 국토부는 올해 6월까지 시·도별 발전 계획을 수렴하고 10월까지 혁신도시별 발전 테마를 담은 종합 발전 계획을 수립할 것으로 알려졌다.

류승한 국토연구원 산업입지연구센터장은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혁신도시를 만들기 위해선 연구·개발 기능과 생산·업무 기능 강화가 중요하다”며 “아직 가용 토지가 남아 있는 혁신도시 지자체는 각종 연구 기관과 기업 유치를 위한 활동을 더욱 활발히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한국금융신문에서 발행하는 '재테크 전문 매거진'<웰스매니지먼트 7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김민정 기자 minj@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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