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은 29일 대우건설·두산에너빌리티 컨소시엄과 진행하던 두코바니 원전 건설사업의 시공계약 협상을 공식 종료한다고 밝혔다. 주요 계약 조건을 놓고 양측이 이견을 보였으며, 실무협상과 이견조정위원회, 경영진 협상까지 진행했지만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한수원은 협상 종료 이후 사업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후속 조치에 들어갔다. 기존 시공사와의 공동협력협약 종료 절차를 밟는 동시에 신규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입찰을 준비하고 있다. 새 시공사가 선정되기 전까지는 필수 업무를 직접 수행해 사업 공백을 막겠다는 방침이다.
한수원은 정부와 체코 발주사, 협력사 간 협력을 바탕으로 사업을 당초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시공계약 협상은 종료했지만 전체 원전 건설사업을 중단할 계획은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계약 결렬의 배경이다. 대우건설은 공사비뿐 아니라 설계 변경에 따른 위험 분담과 업무 범위, 계약상 책임을 놓고 한수원과 의견 차이가 컸다고 설명했다. 특히 시공사가 통제하기 어려운 설계 오류와 공사 지연에 따른 비용까지 부담하도록 하는 조건이 협상 결렬의 핵심 원인이라는 입장이다.
대우건설이 배포한 반박자료에 따르면, 한수원은 설계 오류가 발생하더라도 시공사가 이를 발견하지 못하면 책임을 부담하도록 하는 조건을 제시했다. 한수원의 설계 오류로 재시공이 필요해져도 원청사가 체코 발주사로부터 보상받지 못하면 시공사에 관련 비용을 지급하지 않는 내용도 포함됐다는 설명이다.
다른 협력업체의 과실에 대한 한수원의 책임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거나, 발주사가 부지를 제때 제공하지 않아 공사가 지연되더라도 추가 간접비를 보상하지 않는 조건도 제시됐다고 대우건설은 설명했다.
대우건설은 체코 원전에 적용되는 APR1000이 세계 최초로 상용 건설되는 노형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동일한 노형으로 건설한 선행 발전소가 없는 만큼 실제 시공 과정에서 설계 변경과 물량 증가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공사에 비용과 위험을 집중시키는 계약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대우건설은 당초 한수원에 제시했던 공사 단가를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협상 마감일인 29일에는 금액을 더 낮춘 수정안도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협상이 종료되면서 한수원이 합리적인 위험 분담 방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계약을 중단했다는 불만을 드러냈다.
반면 한수원은 계약 조건에 대한 양측의 이견을 끝내 좁히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한수원은 계약 종료 이후에도 전체 사업의 안정적인 추진을 위해 후속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양측이 제시한 설명만으로는 협상 과정에서 어떤 조건을 두고 어느 정도까지 조정이 이뤄졌는지, 최종 합의가 무산된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모두 확인하기 어렵다. 협상 결렬의 책임을 판단하려면 계약 조건과 협상 경과를 추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사태에서 주목할 부분은 시공계약 협상이 결렬됐다고 해서 컨소시엄에 참여한 두산에너빌리티의 모든 체코 원전 사업이 중단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시공계약 협상과 원자로·터빈발전기 공급계약은 별개라는 입장을 밝혔다. 원자로 등 주기기 공급계약은 이미 체결돼 정상적으로 준비하고 있으며, 이번 협상 결렬과는 무관하게 이행한다는 설명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대우건설이 사전협의 없이 배포한 컨소시엄 명의의 자료에 대해서도 "두산에너빌리티의 공식 입장과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시공계약 조건 협상은 한수원과 주간사인 대우건설이 진행했고, 두산에너빌리티는 비주간사로서 제한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설명이다.
두산에너빌리티 관계자는 “회사는 시공계약이 다시 진행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대우건설과 조건이 맞지 않아 협상이 종료된 것이고, 앞으로 어떤 컨소시엄이 구성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컨소시엄에도 재입찰이 허용된 만큼 입찰에 성실히 참여해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컨소시엄의 향후 구성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수원이 신규 시공사 선정에 나서면 기존 참여사들이 어떤 방식으로 입찰에 참여할지, 새로운 사업 구조가 어떻게 마련될지에 따라 사업 추진 과정도 달라질 수 있다.
체코 두코바니 원전사업은 총사업비가 약 26조원에 이르는 대형 프로젝트다. 체코 두코바니에 한국형 원전 APR1000을 적용한 5·6호기를 건설하는 사업으로, 5호기는 2039년, 6호기는 2040년 상업운전을 목표로 한다.
한국은 2025년 6월 체코 발주사와 주계약을 체결한 뒤 설계와 원자로 설비, 터빈발전기 설비 등 분야별 계약을 진행해 왔다. 한수원에 따르면 종합설계용역은 한국전력기술이, 원자로와 터빈발전기 설비는 두산에너빌리티가 맡는 계약을 체결했다. 원전연료 계약과 시운전·정비 용역 계약도 2027년 체결을 목표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여러 국내 기업과 기관이 참여하는 대형 사업에서 시공계약이 결렬되면 단순히 시공사 한 곳을 교체하는 문제를 넘어설 수 있다. 새 시공사를 선정하고 기존 업무를 인계하는 과정에서 일정과 비용, 업무 범위를 다시 조율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수원이 사업 차질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새로운 계약 조건과 시공사 선정 결과에 따라 후속 일정이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 큰 쟁점은 이번 갈등이 K원전의 해외 사업 신뢰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다. 원전 사업은 설계와 기자재 공급, 시공, 시운전과 정비까지 여러 분야가 장기간 맞물리는 산업이다. 계약 단계에서 위험을 어떻게 나누고, 예상하지 못한 설계 변경이나 공사비 증가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는 사업의 안정성을 좌우하는 요소다.
전문가는 이번 사태를 개별 기업의 공사비 협상에 국한해 봐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수원과 시공사가 각자의 손익만 따지기보다 사업 전체의 성공과 국내 원전산업의 장기적인 경쟁력을 고려해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안형준 건국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는 “공사비 문제로 협상이 결렬되는 사례를 만드는 것 자체가 우리 나라 원자력사업에 큰 타격을 줄 수도 있다”며 “한수원이 보유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민간산업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찾고, 국가를 대표하는 사업이라는 관점에서 더 깊이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계약 결렬이 국제사회에서 한국 원전산업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원전 수출은 개별 기업의 실적을 넘어 국가 차원의 산업 역량과 신뢰를 바탕으로 추진되는 만큼, 사업 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는지도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안 교수는 “이번 선택은 세계 시장에서 한국이라는 브랜드의 신뢰와 신용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며 “체코 사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원전시장에 한국이 어떤 방식으로 진출할 것인지 큰 틀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원전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개별 사업의 성과뿐 아니라 산업 전반의 지속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반도체 등 일부 산업에 의존하기보다 원전과 같은 분야에서도 국제 경쟁력을 확보해야 국가 경제의 성장 동력을 다변화할 수 있다는 취지다.
한수원은 기존 컨소시엄과의 협상 종료 이후 신규 시공사 선정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재입찰 과정에서도 계약 조건을 둘러싼 이견이 반복된다면 사업 추진의 불확실성이 다시 커질 수 있다. 설계 변경과 공사비 증가에 따른 위험을 어느 쪽이 얼마나 부담할지, 발주사와 원청사·시공사 간 책임을 어떻게 구분할지가 핵심 과제로 남는다.
주현태 한국금융신문 기자 gun1313@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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