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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칼럼] 아이와 찾은 용산공원, 개발보다 보존인 이유

주현태 기자

gun1313@fntimes.com

기사입력 : 2026-09-07 00:00

미군부대에서 공원으로
보존에 새 쓰임 더해야

▲ 주현태 건설부동산·행정 팀장

▲ 주현태 건설부동산·행정 팀장

[한국금융신문 주현태 기자] “아빠, 저기 헬리콥터 온다.”

최근 첫째 딸 체육대회를 따라 용산공원을 찾았다. 까만 활자를 보며 매일 오전을 시작하다가 오랜만에 녹색 잔디와 파란 하늘을 봤다. 눈은 호강했지만 날씨는 전혀 봐주지 않았다. 뜨거운 햇볕까지 더해져 오래 기억에 남을 하루였다.

강력한 더위 속에서도 체육대회가 끝난 뒤 아이들은 잔디밭을 뛰어다녔다. 부모들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오랜만에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눴다. 특별한 시설이 없어도 넓게 펼쳐진 잔디와 탁 트인 하늘은 도심속 여유를 즐기기에 충분했다.

아이들이 뛰어놀 공간이 있고 어른들이 잠시 쉬어갈 나무그늘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공원의 역할은 충분해 보였다. 굳이 무언가를 더 채우지 않아도 비어 있는 공간 자체가 주는 여유가 있었다.

때때로 머리 위로 헬리콥터가 지나가자 아이들은 신이 나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과거 이곳을 상징했던 군사시설의 흔적마저 아이들에게는 그저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한참을 뛰어놀던 아이들이 다시 잔디밭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바라봤다. 문득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이 공간을, 앞으로도 그대로 보존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기자는 용산공원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나기 전에도 이곳을 찾은 적이 있다.

2017년 용산구 출입기자단 자격으로 당시 용산 미군기지 일대를 방문했다. 그때도 묘하게 마음을 편하게 하는 공간이었지만, 외국인들이 오가는 이질적인 분위기가 더 크게 느껴졌던 기억이 남아 있다.

1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은 달랐다. 잔디밭에는 가족들이 앉아 있었고 아이들이 뛰어놀았다. 과거의 공간이 조금씩 시민의 일상으로 바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최근 불거진 용산공원 주택 공급 논란이 더 아쉽게 다가오는 이유다.

정부가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청년과 무주택자의 주거 안정을 위해 서울 도심에 주택을 공급하는 일은 중요한 과제로 꼽히기 때문이다.

정부 역시 논란이 된 법안이 용산공원 본체부지 전체를 개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캠프킴 등 쓰임새를 다한 주변 부지에 한정된다는 입장이다. 그 취지라면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쓰임새를 다한 공간은 정말 아파트를 지어야만 다시 쓰임을 얻는 것일까.

기자가 용산공원을 바라보며 떠올린 말은 ‘존고생신(存古生新)’이다. 옛것을 보존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용산공원에 필요한 것도 바로 이런 접근이 아닐까 싶다. 과거 군사시설이라는 이유로 공간을 그대로 묶어두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역사적 흔적은 살리면서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기능을 더하는 방식이다.

쓰임을 다한 부지가 있다면 그곳에 다시 쓰임을 만들어주면 된다. 문화공간이 될 수도 있고, 시민 휴식공간이나 교육시설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과거를 지우고 새로운 건물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기존 공간이 가진 가치를 살려 다음 쓰임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용산공원이 뉴욕의 센트럴파크처럼 서울을 대표하는 도시 자산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센트럴파크의 가치는 단순히 나무와 잔디에서 나오지 않는다. 시민들이 오랜 시간 이용하고, 도시의 역사와 문화가 쌓이면서 공간 자체의 가치가 커졌다.

용산공원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아이들이 뛰어놀고, 가족들이 쉬어가고, 외국인 관광객이 서울의 역사를 경험하는 공간으로 조금씩 가꿔간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자산이 될 수 있다.

더 걱정되는 것은 법 개정이 남길 선례다.

현재는 캠프킴 등 일부 부지에 한정한다고 해도 한 번 바뀐 법이 4년 뒤, 8년 뒤에도 같은 원칙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개발의 문이 한 번 열리면 또 다른 주택 공급 논리가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이에 중요한 것은 개발이냐 보존이냐를 단순히 양자택일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쓰임을 다한 공간에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되 한번 사라지면 되돌릴 수 없는 역사와 공간의 가치는 남겨두는 지혜가 아닐까 싶다.

옛것을 지키는 것이 반드시 개발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켜야 할 가치를 남겨두고 그 위에 새로운 쓰임을 더하는 것이 더 큰 도시의 가치를 만들 수 있다.

얼마 전 용산공원에서 뛰놀던 아이들에게 이곳은 과거 미군기지도, 주택 공급 후보지도 아니었다. 그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넓은 공원이었다.

그 공간을 다음 세대에도 그대로 물려주는 것. 그리고 그 위에 더 많은 시민이 누릴 새로운 가치를 하나씩 쌓아가는 것. 그것이 용산공원이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한다.

과거를 보존해 현재에 새로운 쓰임을 만들고, 그 가치를 미래로 이어가는 것. 그렇게 용산공원이 언젠가 ‘서울의 센트럴파크’로 불리는 날을 기대해본다. 이 글에 담은 바람이 현실이 돼 성지의 글이 되길 바란다.

주현태 한국금융신문 기자 gun1313@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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