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각 사 '2025년 지배구조 및 보수체계 연차보고서'. 사진=옥준석 기자
한국금융신문이 저축은행 15곳(SBI·OK·한국투자·웰컴·애큐온·다올·DB·신한·하나·페퍼·KB·OSB·우리금융·상상인·상상인플러스)의 ‘2025년 지배구조 및 보수체계 연차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사외이사 44명 중 여성은 2명(4.5%)에 불과했다. 여성 사외이사가 있는 곳은 SBI저축은행과 애큐온저축은행뿐이다. 나머지 13곳은 이사회가 전원 남성으로 구성돼 있다. ‘다양성’은 선언에 머물고, 실제 구성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구조다.
이 같은 수치는 다른 금융권과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금융지주와 주요 상장 금융사의 경우 여성 사외이사 비율이 20~30% 수준까지 올라와 있다. 자본시장법상 성별 다양성 규제가 작동하면서 최소 1명 이상의 여성 이사를 포함하는 구조가 빠르게 확산된 결과다. 반면 저축은행은 규제 적용 대상에서 벗어나 있으며, 이 차이가 곧 이사회 구성의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
상장 금융사와 대비…이사회 성별 구성 격차 뚜렷
그나마 포함된 여성 사외이사도 역할은 제한적이다. 두 저축은행 모두 법률·금융 전문 변호사를 선임했다. 규제 대응과 자문 기능을 보완하려는 목적은 분명하지만, 여성 인재 활용이 특정 직군에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 ‘선별적 기용’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략·리스크·경영 전반을 아우르는 다양한 배경의 인재가 참여하는 구조와는 거리가 있다.저축은행들은 “후보군 단계에서 성별 다양성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사외이사 인력뱅크나 헤드헌팅을 통해 후보를 추천받는 과정도 존재한다. 그러나 최종 선임 단계에서는 여성 인사가 배제되는 결과가 반복되고 있다. 다양성 고려가 절차적 요건에 머물고, 의사결정 단계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후보 풀의 한계도 구조적 요인으로 꼽힌다. 금융권 전반에서 여성 임원과 등기이사 비율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과거 여성 인력의 금융권 진입 시기가 늦었던 데다, 영업·지원 직무에 집중된 경력 구조가 이어지면서 핵심 의사결정 라인으로 진입할 수 있는 경로가 제한돼 왔다. 여기에 출산·육아에 따른 경력 단절, 승진 과정에서의 보이지 않는 장벽까지 겹치며 고위 여성 인재층이 충분히 두텁게 형성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인력 규모가 작은 저축은행 업권에서는 이러한 구조적 제약이 더 크게 작용한다. 내부 승진을 통해 여성 임원이 배출될 가능성이 낮고, 외부 영입 역시 제한된 후보군 안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 결국 ‘여성 인재 부족’이 아니라 ‘여성 인재가 보이지 않는 구조’가 반복 재생산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다양성 결핍, 내부통제·소비자 보호 리스크로 확산
근본적으로는 제도 공백이 변화 속도를 결정짓고 있다. 자본시장법은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에 대해 특정 성별로만 이사회를 구성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사실상 최소 1명 이상의 여성 이사를 포함하도록 하는 효과를 내며 상장사의 이사회 구조를 빠르게 바꿨다. 그러나 대부분 비상장사이거나 자산 규모가 작은 저축은행은 이 규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규제의 유무가 곧 이사회 다양성의 유무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사례다.문제는 다양성 결핍이 단순한 ‘대표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금융회사 이사회는 리스크 관리와 내부통제의 최종 의사결정 기구다. 다양한 배경과 관점을 가진 사외이사가 참여할수록 특정 시각에 치우친 판단을 견제하고, 소비자 보호와 준법감시 기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적지 않다. 반대로 단일한 배경의 인물로 구성된 이사회는 집단사고(groupthink)에 빠질 가능성이 높고, 이는 위기 대응 능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금융권에서 내부통제 실패와 소비자 피해 이슈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사회 구성의 다양성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고위험 여신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저축은행 업권의 특성을 고려할 때, 외부 시각을 통한 견제 기능은 더욱 중요하다.
해법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여성 할당제를 도입할 경우 형식적 선임이나 역차별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반면 자율에만 맡겨둘 경우 현재와 같은 정체 상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지난 수년간 저축은행 이사회 구성에서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은 이를 방증한다.
이에 따라 공시 강화, 여성 인재 데이터베이스 구축, 외부 추천 시스템 확대 등 ‘유인 기반 정책’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단순히 규제를 강화하기보다 기업이 다양한 후보를 탐색하고 검토하도록 만드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금융당국 차원의 가이드라인 제시나 모범 규준 도입 필요성도 제기된다.
지금의 저축은행 이사회는 ‘문제를 인식하고도 바꾸지 못하는 구조’에 머물러 있다. 규제의 공백, 인력 구조의 한계, 관행적 의사결정이 맞물린 결과다. 다양성을 외면한 지배구조는 결국 리스크로 되돌아온다. 변화가 지연될수록 그 비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옥준석 한국금융신문 기자 okmoney@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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