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학생 B양은 좋아하는 아이돌의 그룹의 ‘굿즈(캐릭터 상품)’를 사고 싶었지만 돈이 모자라 SNS를 통해 여러 명으로부터 2∼10만원씩 대리입금을 이용했다. 하지만 상환하지 못해 계속 돌려막기를 하다 결국 이자를 포함해 400만원의 빚을 지게 됐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연 5000%가 넘는 고금리를 뜯어내는 불법 ‘대리입금’ 광고가 올해만 3000건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일명 ‘댈입’으로 불리는 대리입금은 콘서트 관람권이나 게임 아이템, 연예인 기획상품(굿즈) 등을 사기 위해 돈이 필요한 청소년을 페이스북,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유인한 뒤 10만원 안팎의 소액을 초고금리로 단기(2~7)로 빌려주는 불법 고금리 사채다. 대리입금 광고와 피해가 급증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책정한 예산마저 집행하지 않는 등 감독과 예방 활동을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9일 국회 정무위원회 양정숙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불법 대리입금 광고는 2019년 1211건에서 올해 8월 말 3082건으로 약 2.5배 급증했다.
불법 대리입금 광고는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금감원이 수집한 불법 대리입금 광고 수집 건수는 2020년 2576건으로 전년보다 2배 이상 증가했고 지난해에도 2862건으로 직전해 대비 11.1% 늘었다. 올해도 7.6% 뛰었다.
대리입금 업자들은 이자와 연체료 대신 ‘수고비’, ‘지각비’ 등 청소년들에게 친근한 용어를 사용해 지인 간의 금전 거래인 것처럼 가장하는 수법을 쓴다. 이자는 대출금의 20~50% 수준으로, 연이자로 환산하면 1000% 이상에 달한다.
대리입금 과정에서 신분 확인을 빌미로 한 개인정보 유출, 불법 추심, 학교 폭력 등의 2차 피해도 발생하고 있다. 업자들은 청소년들에게 돈을 빌려주며 이름과 나이는 물론 전화번호, 신분증(학생증) 등을 요구한다. 상환이 늦으면 시간당 1000부터 1만원까지의 연체료를 부과하고, 전화와 카카오톡 등으로 욕설과 협박 등 불법 추심을 일삼고 있다. 돈을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화번호나 주소, 다니는 학교 등을 SNS에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청소년이 다른 청소년을 상대로 대리입금을 하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고등학생 C군은 2020년 1월부터 작년 9월까지 SNS에서 또래 청소년을 상대로 대리 입금 광고를 한 뒤 연락해 온 이들에게 SNS 오픈채팅방을 통해 개인정보를 습득했다. A군은 총 580명에게 1만~10만원씩 총 1억7000만원을 대출해주고 최고 5475%에 해당하는 고금리를 받아 챙겼다가 지난해 말 경기도 공정특별사법경찰단에 적발됐다.
불법 대리입금 관련 피해는 급증하는데 신고는 저조한 상황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불법 대리입금 피해 신고는 2019년 1건, 2020년 4건, 지난해 1건에 그쳤다. 올해는 아직 신고 건수가 있다. 대리 입금이 소액인데다 청소년들이 돈을 빌린 사실을 주위에 알리려 하지 않는 특성상 거래가 음성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대리 입금의 경우 소액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특성상 피해 신고 건수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대리입금 피해가 늘어나자 지난해 7월 경기도 특사단과 경기남·북부경찰청은 청소년 대상 고금리 불법 대리 입금 행위에 대한 집중 단속을 벌였고, 서울시도 민생사법경찰단을 통해 올해 1월부터 집중 수사를 벌인 바 있다. 작년 9월 경기도가 도내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청소년 불법 대출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66%가 대리 입금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법 대리 입금의 단속, 예방책임이 있는 금감원은 지난해부터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양 의원에 따르면 금감원은 2020년 생활지도 활동 4차례와 교육동영상 1건 제공 외에는 작년과 올해 별다른 활동이나 홍보를 하지 않았다.
금감원은 불법 대리입금 예방예산으로 2019년 2억2600만원을 책정한 이후 올해까지 매년 2억2400만~2억6400만원 가량의 예산을 확보해왔다. 그러나 실제 예산 집행은 2020년 교육동영상 제작비 1650만원 외에는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양 의원은 “5000%가 넘는 고금리 이자로 청소년들을 사지로 모는 불법 대리 입금 문제에 대해 어느 때보다 엄격하게 관리 감독해야 할 금감원이 탁상행정을 펼치고 있다”면서 “금융지식 없이 무방비 상태에서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청소년들 보호를 위한 특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대리 입금은 대부분 10만원 미만의 소액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친구, 지인 등을 가장해 음성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실태조사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해명했다.
현행법상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광고를 올리고 여러 명에게 반복적으로 대리입금을 하면 대부업법, 이자제한법 등 위반 소지가 있고,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또 대리입금 과정에서 정보주체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제공받고 이를 이용해 추심하는 행위는 개인정보보호법 등 위반 가능성이 있다.
대리입금을 이용한 뒤 제때 돈을 갚지 않는다는 이유로 개인정보를 유포한다는 협박을 받고 있다면 즉시 학교전담경찰관이나 선생님, 부모님 등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금감원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에 신고해야 한다. 금감원 홈페이지를 통해 신고하는 방법도 있다. 민원신고 항목에 들어가 불법금융신고센터의 불법 사금융 개인정보 불법 유통 신고를 하면 된다.

자료=양정숙 의원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