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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칼럼) 투자자는 야구팀 단장이다

장태민

기사입력 : 2021-02-10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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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ml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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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금융신문 장태민 기자] 2013년 12월.
한국인 메이저리거 추신수는 텍사스 레인저스와 7년 총액 1억 3천만 달러라는 파격적인 내용의 입단 계약을 체결한다. 우리 돈으로 따지면 1년 평균 연봉이 200억원 수준인 대형 계약이었다.
추신수의 계약 규모는 일본 야구 천재 스즈키 이치로가 시애틀 매리너스와 맺었던 계약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었다.
이치로는 2001년 시애틀과 5년 총액 9000만 달러라는 거액에 입단 계약을 체결했다. 이치로의 시애틀 입성 이후 14년이 지나긴 했지만, 추신수의 계약 규모는 놀라웠다.
아시아 출신 메이저리거 가운데 가장 높은 금액이었다. 또 총액기준 자유계약선수 몸값으로는 메이저리그 역대 27위에 해당할 정도로 컸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도 텍사스에서 뛴 적이 있다. 박찬호는 2002년 LA다저스에서 텍사스 레인저스로 옮기면서 5년 간 총 6500만 달러를 받는 큰 계약을 체결했다. 시대가 흘러 선수들의 몸값이 올랐다고 하지만, 박찬호의 계약은 추신수와 비교할 때 초라해 보일 정도였다.
추신수는 어떻게 대형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고, 텍사스는 왜 그렇게 추신수의 몸값을 높게 쳐줬던 것일까.

■ 텍사스의 추신수에 대한 투자

계약을 체결한 그 해에 추신수가 보여준 어마어마한 성과가 대형 계약에 큰 영향을 미쳤다.
추신수는 2013년 시즌 메이저리그 역사상 7번째로 20홈런, 20도루, 100볼넷, 100득점, 300출루를 기록한 선수였다. 공격과 주루, 선구안 등을 두루 갖춘 선수였기 때문에 시장 가치가 컸다.
특히 추신수의 볼넷을 골라 나가는 능력, 즉 출루율은 .423(4할2푼3리)으로 메이저리그 최정상급이었다. 내셔널리그 2위, 메이저리그 전체 4위에 해당할 정도였다. 추신수는 100번 타석에 설 때 42번을 살아서 1루를 밟을 수 있는 선수로 중심타자 앞에서 밥상을 차려줄 선수로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텍사스가 추신수의 한 시즌 성적만 보고 그를 영입한 것은 아니었다. 추신수는 꾸준한 실력 향상을 보이면서 2013년 굉장한 성적을 냈다.
추신수에 투자한 텍사스는 그를 장기간 관찰해왔다. 메이저리그는 한 해에 162게임을 치르는 장기 레이스를 펼친다. 추신수는 2008년 시즌 94게임을 뛰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100게임 넘게 출장하며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교타자로 성장했다.
추신수는 2009년과 2010년 정상급 교타자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타율 3할을 넘긴다. 2013년엔 타율 .285를 기록해 타율이 3할을 약간 밑돌았으나 출루율이 .423으로 '커리어 하이'를 나타냈다. 텍사스 구단은 추신수의 이 지표에 반하고 말았다.
텍사스는 장거리포를 확보하고 있었으나 중심타선으로 찬스를 연결시켜 줄 선수가 부족했다. 이에 수년간 준수한 성적을 내온 데다 리그 정상급 출루 실력을 지닌 추신수를 거금을 주고 영입한 것이다.
하지만 텍사스의 투자 타이밍은 '고점에서의 매수'였다. 3할 내외의 타율을 기록하던 추신수의 2014년 타율은 .242에 그쳤으며, 4할을 넘었던 출루율도 .340로 뚝 떨어졌다.
텍사스는 'FA로이드'를 걸러내지 못하는 실수를 한 것이다. FA로이드는 FA(자유계약선수)와 스테로이드(야구선수 등이 근육 강화를 위해 복용하는 금지약물)를 합친 말로, 자유계약선수로 풀리기 전 평소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텍사스로 이적한 뒤 추신수는 전성기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연평균 2천만달러의 거액을 받는 선수였지만, 텍사스 이적 후 그의 타율은 2할 3푼대~2할 7푼대를 오가는 평범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게다가 수비 능력이 떨어지는 약점까지 부각돼 추신수에 대한 야구팬들의 비난도 적지 않았다. 몸값을 못하는 데 대한 비난도 적지 않게 받았던 것이다.
추신수의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치긴 했지만, 그가 대단한 '먹튀'는 아니었다. 메이저리그엔 거액 계약을 체결한 뒤 드러누워 버리는 선수가 수도 없이 많다. 투자자(구단)는 이런 위험을 감안해 선수를 사야 한다.
추신수의 입장은 구단과 반대다. 추신수 인생에 있어서 텍사스와의 계약은 인생에서 가장 잘한 계약이었다. 자신의 능력이 최고치에 있을 때 상품성을 한껏 부풀려 자신에게 투자를 하도록 한 것이다. 투자의 책임은 투자자가 진다.
텍사스는 2014년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거포 프린스 필더도 영입했다. 프린스 필더는 목덜미에 한글로 '왕자'라는 문신을 해 국내의 메이저리그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기도 했다.
텍사스가 추신수 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 영입한 필더는 텍사스로 이적한 뒤부터 전혀 정상적인 플레이를 하지 못했다. 필더는 2007년 홈런 50개를 때려내는 괴력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홈런 개수는 2011년 38개, 2012년 30개, 2013년 25개로 점점 줄었다. 이미 고점을 찍고 내려오는 선수를 구단이 비싸게 산 것이다.
필더는 2014년 텍사스에서 42경기에만 출장해 단 3개의 홈런을 쳐내는 데 그쳤다. 그는 결국 몸이 아파 2016년 시즌 89경기에만 나와 8개의 홈런을 치고 은퇴했다. 구단이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거포 필더에 걸었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 주식투자자는 야구팀 단장이다

주식 투자자는 메이저리그 야구팀의 단장이다. 괜찮은 선수를 싼 가격에 영입해야 유능한 단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커리어 전성기를 지난 선수를 고액에 영입하는 것은 이익의 정점을 찍은 주식을 비싸게 사는 것과 같다.
개인적으로 한국인 메이저리거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추신수를 좋아하고 응원한다. 추신수 자신의 몸값 띄우기 전략에도 배울 점이 많다고 본다. 다만 추신수를 매수한 텍사스로서는 상당히 큰 실수를 했다는 점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우선 텍사스 구단은 추신수의 가치를 측정하는 데 있어서 '현재' 시점에 너무 큰 가치를 뒀다. 2013년은 추신수 야구 인생이 만개한 때였다.
주식투자자가 기업의 이익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그 주식을 사는 행위는 '뒤늦게' 비싼 값에 매수하는 셈이 된다. 이러면 주식투자자는 손해를 볼 확률이 높아진다.
추신수-텍사스 사례는 이것저것 다 따지다가는 투자에 있어서 한 발 늦을 수 있다는 점을 말해 주고 있다. 선수의 포텐셜이 터지기 전에 '싸게' 매수하는 게 확률을 높이는 투자다. 주식에 투자할 때도 이익이 증가하기 시작하는 시점에 먼저 매수하는 게 유리한 것과 같은 이치다.
경제 성장률과 기업의 이익은 사이클을 그린다. 회복기와 상승기를 거쳐 정점을 찍은 뒤 후퇴기와 하락기를 그린다. 주가는 돈의 힘(유동성 장세)으로 회복기에 가장 큰 폭으로 오르는 경우가 많다. 정작 이익이 정점을 찍을 때는 주가가 오히려 고꾸라지는 사례도 허다하다.
경제와 기업에 대한 투자와 비교할 때 야구 선수에 대한 투자는 '단기간'이다. 야구선수는 인간의 근육이 가장 싱싱한 짧은 기간 동안만 가질 수 있기 직업이기 때문이다. 다만 야구선수의 인생 역시 상승기와 하락기를 거친다는 점에서 야구와 경제, 투자는 공통점을 갖는다.
텍사스가 이미 야구선수로서의 하락기에 접어든 게 거의 확실해 보이는 프린스 필더를 거액에 영입한 것은 대단한 실수였다. 텍사스가 추신수 영입 후 필더의 영입을 발표했을 때 여러 사람들이 "필더가 여전히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지만, 왜 전성기를 지나고 노쇠화가 완연하게 진행되는 선수를 비싼 값에 샀을까"라는 의문을 표시하기도 했다. 당시 운동선수의 '사이클'을 이해하는 많은 사람들이 텍사스의 필더 영입을 이해하지 못했다.
선수 영입 실패는 구단 재정에 큰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고액을 들여서 영입한 선수들의 성적이 부진할 경우 관중 수입 등 구단의 이익이 줄어든다. 주식투자자로 치면 포트폴리오가 쪼그라드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구단은 괜찮은 선수를 영업하는 데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30개 구단이 겨루는 메이저리그의 많은 팀들은 '잘못된 투자' 때문에 수년간 하위권 성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주식투자자가 특정 종목에 대거 투자한 뒤 그 종목의 주가가 크게 빠지면, 그의 투자 여력이 줄어드는 것과 같다. 투자자의 손실은 괜찮은 주식을 살 기회도 빼앗는다.
투자는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싸다고 해서 어떤 주식을 샀는데, 기업이 망해버리는 수도 있다.
야구 구단이 몸 값이 싼 선수를 샀지만, 계속해서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가는 성적만 거둔다면 굳이 영입할 필요가 없었던 셈이 된다. 싸 보이는 주식을 살 때도 상당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점을 말해준다. PER(주가수익률비율)이나 PBR(주가순자산비율)이 낮아 샀는데, 이 주식이 '미래가 없어서' 싼 것이라면 투자자는 큰 실수를 한 셈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래가 없는 싼 주식보다는 괜찮은 주식을 적정한 가격에 매입하는 게 더 나은 것과 같다.
이러다보니 가치평가라는 작업은 매우 어렵다. 메이저리그 구단주나 주식투자자 모두 불확실한 '미래'의 이익에 투자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 경기 상황과 수급 요인...그리고 내재가치

메이저리그 스토브리그(시즌 종료 후 이적 시장)도 경제상황에 영향을 받는다. 관중 등 야구단의 수입, 재력가의 야구 산업 진출, 전반적인 경제 상황 등에 야구산업이 영향을 받는다.
특히 뛰어난 선수들이 얼마나 많이 FA로 풀리느냐도 특히 주목을 받는다. FA를 통한 특급 선수의 공급이 1,2명에 그칠 경우 그 선수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기도 한다.
메이저리그 팀들의 넘치는 유동성과 특급 선수 공급 부족이 맞물리는 특정 시기엔 해당 선수의 몸값이 폭등한다. 모든 투자 행위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작용하는 것이다.
2020년 주식투자 붐은 한국 주식시장이 태동한 이래 2000년 전후 IT붐 시기와 더불어 가장 뜨거웠으며, 이런 분위기는 2021년 들어서도 이어졌다. 역대 가장 많은 돈이 주식시장으로 들어왔고 넘치는 유동성(수요)을 기회로 삼아 많은 기업들이 주식 공모(공급)에 나서기도 했다.
코로나19 이후 경기는 안 좋았지만 풀어 놓은 유동성 덕분에 주식시장에선 잔치가 벌어졌다. 유동성 장세가 결국은 기업의 실적 증가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감도 컸다. 또 많은 사람들이 '주식투자 외엔 자산을 불릴 방법이 없다'고 느꼈던 해이기도 했다.
아파트 값은 부자가 아니면 쳐다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이미 치솟은 데다 규제 때문에 사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시중금리는 너무 낮아져 채권이나 예금으로 재산을 불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주식시장 대체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동산의 가격 급등이나 규제, 금리상품의 메리트 저하 등은 주식투자를 더욱 부추긴 것이다.
경기 상황과 수요와 공급 요인에 따라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몸값도 달라지지만 또 하나 중요한 변수가 있다. 야구산업 경기가 안 좋더라도 특급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 기본적인 몸값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선수들은 내재가치가 아주 높은 것이다.
주식 투자자들도 항상 기업의 내재가치를 주시해야 한다. 주목을 못 받는 괜찮은 기업이 있다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익의 성장세가 돋보이는데, 시장이 관심을 갖는 '테마'가 아니라는 이유로 소외돼 있다면(싸게 거래된다면) 이런 주식을 언젠가 빛을 볼 가능성이 높다.
야구든 주식투자든 선수(종목)에 투자할 때는 시장가치와 내재가치를 판단해서 접근해야 한다. 내재가치보다 낮은 가격에 살 수 있는 선수(주식)는 과감하게 영입해야 한다.
주식 투자자와 메이저리그 야구팀 단장이 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같다.

장태민 기자 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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