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 연준 의장은 현지시간 27일 잭슨홀 심포지엄 연설에서 "2% 이상 인플레이션을 용인하겠다"면서 저금리 유지 방침을 시사했다.
파월 의장은 "연준은 시간을 두고 평균 2% 인플레이션을 추구할 것"이라며 "지속적으로 너무 낮은 물가는 경제에 심각한 위험을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은 다만 "인플레이션 오버슈팅은 온건한(moderate) 수준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 물가상승률 목표 2% '평균'...금리인상 시점은 늦어진다
미국 연준이 물가상승률 목표를 2% 평균으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코로나 19로 인해 고용과 물가의 하방 압력이 커지는 가운데 물가상승률이 일시적으로 2%를 상회하더라도 용인하겠다는 의미다.
파월 의장은 이번 결정에 대해 "통화정책의 강력한 변경"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연준이 물가 상승을 원하는 것은 상식에 반할 수 있으나 저물가 지속이 경제에 심각한 위험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연준은 성명을 통해 평균 물가안정 목표제 채택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장기간에 걸쳐 2% 물가 상승을 추구하게 되고 일정기간 금리가 목표를 상회하는 게 적절한 정책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일정기간 물가상승률을 평균 2%로 설정하고, 최대한 고용을 위해 노력한다는 입장이다.
'평균 물가목표제'(AIT, Average Inflation Targeting)로 변경하면 제로금리를 장기간 유지할 수 밖에 없다.
단순하게 접근하면 예컨대 연준이 2022년말까지 물가상승률이 1.7%로 관측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로금리 정책은 적어도 2023~2024년까지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연준은 물가가 목표치 2%를 한동안 적절한 수준을 웃돌아도(moderately above 2 percent for some time) 이를 용인하게 된다.
이번 정책은 지난 2012년 1월 버냉키 전 의장 때 발표한 장기목표와 통화정책전략(Longer-Run Goals and Monetary Policy Strategy)을 8년 동안의 변화된 환경을 반영해 수정한 것이다.
■ AIT...기준금리 못 올리고 장기금리 오를 가능성
연준 내부에선 코로나 19 확산세가 끝나더라도 미국 경제 부진은 상당기간 장기화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코로나로 입은 상처 때문에 기업이 정상적인 투자로 전환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면서 상당기간 저성장이 이어질 수 있다는 보는 것이다.
다만 연준은 이 새로운 체제를 시행하면서 방정식이나 공식은 제시하지 않았다.
즉 얼마나 오랜기간 저금리를 유지하고 어느 정도 높은 물가를 용인할 것인지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연준은 유연한 형태(Flexible Form)의 평균물가목표라고 밝혔으며, 향후 연준의 정책 기조는 5년 정도 단위로 재검토하겠다는 입장도 전했다.
파월 의장은 "연준의 평균물가목표제가 구체적인 수식에 의해 좌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어쨌든 평균으로 물가를 계산하게 되면 기존에 낮았던 물가의 영향력 때문에 평균까지 도달하기 위해선 상당기간 2%를 넘는 물가를 용인해야 한다.
다만 연준이 향후 과도한 물가 상승을 용인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카플란 달라스 연은 총재는 "AIT는 정형화된 것은 아니다"라면서 "오직 완만한(modest) 물가 오버슈팅정도가 용인될 것이며, 그 수준은 2.25~2.50% 정도"라고 언급했다.
아무튼 미국 채권시장은 '기준금리 인상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 밖에 없다'는 메시지에 장기 금리는 속등으로 반응했다.
파월 의장의 '인플레이션 오버슈팅 공식화'가 미국 장기금리의 상승세로 이어진 것이다.
코스콤 CHECK(3931)를 보면 미국채10년물 금리는 5.89bp 오른 0.7538%를 기록했다. 미국채10년물 금리는 4일 연속으로 오른 것이며, 금리 상승폭은 지난 8월 11일(6.1bp) 이후 가장 두드러졌다.
국채30년물 금리는 상승은 더욱 두드러졌다. 30년물 수익률은 9.59bp 급등한 1.5129%를 나타냈다. 30년물 금리 오름폭은 지난 6월 4일(9.93bp) 이후 근 3달만에 가장 컸다.
■ AIT...일드 커브 스티프닝 기대감 키운 정책 변화
사실 AIT는 그간 지속적으로 회자됐던 내용이다.
이달 초엔 평균 인플레 도입 기대감이 상당히 강해지기도 했다.
연준은 월초 "제로금리를 고용이 최대치가 되고 물가가 안정적인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유지하겠다"고 하면서 언지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장기금리 급등에서 보듯이 이 시스템은 장기 금리 상승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김상훈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을 위한 연준의 저금리 장기화 입장 발표가 금리 하락 재료로 보일 수 있지만, 연준이 근본적으로 꾀하는 것은 전통적 통화정책 수단 소진 시 실질금리 하락을 통한 경기 부양"이라고 지적했다.
평균 인플레 목표제를 통해 기대 인플레이션을 높이고, 명목금리를 관리해 실질금리를 한동안 낮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나 "연준은 기대 인플레이션은 높이는 반면, 명목금리를 낮추는 정책을 발표하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완전 고용보다 물가 상승에 더 주목하겠다는 연준의 강력한 의지가 장기물 금리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전날 미 국채 5/30년 스프레드는 119.5bp로 지난 6월 중순 이후 가장 많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이런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연준은 사실상 장기적 평균 물가 목표를 맞추기 위해 경기 과열 또는 자산가격 버블을 허용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해석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이번 정책변화의 큰 틀은 분명 연방금리를 중심으로 단기 금리를 안정시키는 통화정책 완화정책이라는 점에서 주식 중심의 위험자산에 긍정적으로 볼 수 있으나 중장기 시장금리는 상승하며 약세를 나타냈다"고 밝혔다.
그는 "궁극적인 AIT의 목표가 경기개선과 인플레이션 용인이라는 점에서 장기채권의 투자매력 감소하며 일드커브 스티프닝 강하게 진행됐으며, 추가적인 상승 압력이 작용할 수 있다"면서 내년 초중반까지 금리 1%대 초중반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 AIT...미국 커브 스팁 기대와 한국 채권시장
연준의 중요한 정책 구도 변화에 따른 금리 상승을 제어하기 위해선 연준이 더 채권을 사주는 수밖에 없다는 진단도 제기된다.
연준의 총자산은 6월 10일 7.17조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이후 7월 8일 6.92조달러까지 감소했다.
이번 주는 6.99조달러를 기록했다. 뉴욕 연은은 최근 9월 중순까지의 자산매입 스케줄과 관련해 기존의 월간 800억달러 규모를 유지한다고 밝혔다.
김상훈 하이투자 연구원은 "최근 running 4주 기준으로 최소 매입 규모를 하회한 바 있어 명목금리 안정을 위한 QE 확대 등의 추가 조치 없이는 일드커브 스팁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YCC가 금리상승 시 이를 억제하는 정책이지만, AIT은 인플레이션을 상당기간 용인하게 된다. 과거의 낮았던 물가부터 계산해 금리 인상을 늦추면 단기금리만 안정되는 커브 스팁이 강화될 수 있다.
또 이 정책은 물가를 올리는 데 주안점을 두기 때문에 주식 랠리를 더 연장시키려는 목적에 부합하고 채권엔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진단들도 많다.
국내 채권 투자자들도 미국 금리 오름세를 주의해서 보고 있다. 국내 상황이 여의치 않은 국면에서 미국 금리가 뛰자 채권 롱의 부담이 가중됐다는 평가들은 하고 있다.
즉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4차 추경 가능성, 내년 예산에 대한 부담 등으로 수급 부담이 적지 않았던 상황에서 한은이 단순매입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아 부담이 커졌고, 미국 AIT마저 금리 상승을 지지했다는 것이다.
A 증권사의 한 딜러는 "미국의 AIT 도입 충격이 생각보다 커 보인다"면서 "이 이슈 때문에 우리는 국고10년이 1.50% 근처로 가도 저가매수가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물량 부담이나 전일 한은 정책 스탠스에 대한 실망감에 미국 AIT 부담과 외국인 매도가 더해지면서 국고10년물 금리는 이미 1.5% 근처까지 올라온 상황이어서 진입의 기회를 엿보기도 한다.
B 증권사 딜러는 "미국 금리 상승이 부담이지만, 10년-3년 60bp 수준이면 플랫 포지션을 쌓으려는 수요도 많아 보인다"고 진단했다.
일각에선 한국과 미국의 금리 수준을 감안할 때 AIT 영향을 과대평가할 필요 없이 국내 장기금리는 한은의 단순매입으로 안정시켜야 한다는 논지를 펴기도 했다.
C 증권사 딜러는 "미국은 10년이 0.7%대니 금리가 너무 낮았다. 그러니 그 쪽에선 YCC를 기대한 것 아니냐"라면서 "우리는 물가 수준과 거의 엇비슷하니 10년 금리가 튈 이유는 물량 부담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제 한은 총재가 단순매입 스탠스와 관련해 시장에 실망감을 안겼는데, 결국 관건은 단순매입이 나오느냐 여부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 AIT...주식을 더 밀어올릴 수 있을까
AIT는 연준의 큰 변신이자 인플레이션 용인 정책이다.
최근까지 시장에선 연준의 사상 유례없는 통화 완화와 돈 풀기 정책으로 물가 압력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인식도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연준은 AIT를 통해 이런 우려는 차단하고 인플레이션 오버 슈팅을 용인하겠다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사실 연초 뉴욕 연은 총재는 "우리가 지난 30년동안 인플레이션이랑 싸워왔지만, 존재하지 않는 인플레이션과 계속 싸워야 되는지 고민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연준이 이번 AIT를 통해 인플레 파이터가 아닌 디플레 파이터로 변신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물가를 올리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이 노력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앙은행들이 디플레 파이터로 변신한지 오래됐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미국 연준의 AIT 도입이라는 상징적인 변신에 무게를 두면서 이렇게 보기도 하는 것이다.
이효석 SK증권 연구원은 "AIT는 올해 2분기 코로나발 경기 둔화가 내년 이맘 때 쯤에는 기저효과가 돼 인플레이션이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를 사전적으로 차단한 것"이라며 "예를 들어 내년 2분기에 인플레이션이 3%이 되더라도 올해 2분기와 평균을 내면, 2%가 안되니 계속 경기 부양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주식시장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봤다. 일단 이날 국내 주식시장은 미국 AIT 등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지수를 2,350선 위로 힘껏 당겨보고 있다.
이 연구원은 "연준은 디플레이션과 싸우기 위해서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연준의 자산은 미국 정부 국채 잔존액(정부 대출잔액)의 증가에 비례해서 늘었다"면서 "주식시장에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연준 조치는 디플레 압력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연준이 TIPS를 사고 있다는 것을 보면 연준의 생각을 알 수 있다. 연준이 혹시 있을 수 있는 인플레이션을 걱정한다면, TIPS를 살 수 있을까. 상대적으로 경기민감주에 대한 투자가 위험할 수 있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장태민 기자 chang@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