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총재는 이날 한은 창립 69주년 기념사에서 향후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 “최근 미중 무역분쟁, 반도체 경기 등 대외 요인의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진 만큼 그 전개 추이와 영향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경제 상황 변화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해 나가야 하겠다”고 밝혔다.
이 총재가 ‘경제 상황 변화에 따른 적절한 대응’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조만간 금리를 내려 경기부양에 나설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금융시장에서는 이미 한은의 연내 금리인하 가능성을 높게 점쳐왔다. 구체적인 시기는 올해 3분기보다는 4분기가 유력한 것으로 제시된다.
당초 이 총재는 현재는 금리인하를 검토할 상황이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 총재는 지난 5월 31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거시경제와 금융안정 상황을 종합해서 보면 지금은 기준금리 인하로 대응할 상황은 아직은 아니라고 본다”고 선을 그었다. 조동철 금통위원이 소수의견을 제시한 데 대해서도 “소수의견은 말 그대로 소수의견”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이 총재는 이날 “앞으로 국내경제는 정부지출이 확대되고 수출과 투자의 부진이 완화될 것으로 예상되나 성장경로의 불확실성은 한층 커진 것으로 판단된다”며 대외 환경이 크게 달라진 점을 강조했다. 특히 "최근 미중 무역분쟁이 심화하면서 세계교역이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반도체 경기의 회복이 예상보다 지연될 소지도 있다"고 설명했다.
기념식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미중 무역분쟁이 어떻게 되느냐와 우리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 경기가 언제 어느 정도로 회복이 되느냐가 올해 우리 경제의 흐름을 좌우할 수 있는 큰 요인”이라며 “이 두 가지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어려운 쪽으로 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은이 마지막으로 금리를 인하한 시점이 2016년인 점을 고려하면 3년 만에 정책기조를 전환할 가능성을 시사한 셈이다. 한은은 지난 2016년 6월(연 1.25%) 금리를 인하한 뒤 2017년 11월과 지난해 11월 한 차례씩 금리를 올렸다. 이후 현 기준금리 연 1.75%를 유지하고 있다.
이 총재가 미중 무역분쟁 흐름과 반도체 회복 시기를 전제로 둔 점을 고려하면 한은은 향후 경제 여건 추이를 지켜보면서 금리인하를 검토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총재는 이날 기념사가 금리인하를 시사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기념사에 나와 있는 문안 그대로 해석해달라”고 답했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