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매분기 하향 수정되는 한은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두고 중앙은행으로서 통계 정확도와 예측력에 문제제기를 하는 목소리도 높다. 한은이 빠르게 변화하는 지급결제 환경에서 독립성과 전문성을 토대로 정책판단에 유용한 통계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 ‘GDP 연구반’부터 신종 서비스 통계까지
한은이 통계 개발과 확충에 주목하는 것은 변화하는 통화정책 환경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다. 지난 5월 이주열닫기

이에 따라 한은은 디지털 경제와 공유경제 확산에 대응해 국민소득 통계의 유용성을 높이는 연구에 나섰다.
16일 한은에 따르면, 한은은 올해 7월 ‘국민계정 연구반’을 신설하고 현재 3명의 인력이 투입돼 연구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한은이 지난 13일 발표한 경제전망보고서 중 ‘디지털경제 하에서의 GDP 측정에 관한 주요 이슈’에 따르면, 한은은 주거(AirBnB)·운수(Uber)·전자상거래(e-Bay)·대부서비스(P2P대출) 등 업종에서 주요 디지털경제 사례를 포착하고 측정해보니 현재 GDP 추계방식에서 큰 결함이 있지 않다는 판단이다. 이 보고서는 지난 7월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워킹페이퍼를 토대로 작성됐다. 다만 한은은 “디지털 경제 규모가 점차 확대됨에 따라 관련 상품 또는 산업에 대한 추계방식을 보다 정교화하고 공식 기초통계가 발표되기 이전에도 서베이 등을 통해 자료수집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GDP 통계는 국가 간 비교를 위해 국제기준에 따라 산출되고 있어서 한은 독자적으로 GDP 보완을 추진하긴 어렵다. GDP 산출기준은 국제연합(UN) 산하 국민계정사무국(ISWGNA)에서 정한 통계지침서인 국민계정체계(SNA)에 따른다. 실질적인 개편이나 보완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뜻이다.
한은 관계자는 “(GDP 개편은) 글로벌 기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며 OECD를 중심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단기적으로 결과물이 나오긴 어렵고 아직 시작단계로 보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은 내년 4월 ‘국제소득 및 부(Wealth) 연구학회(IARIW) 공동 컨퍼런스’를 열고 GDP 보완 논의와 관련 학계와의 협력도 강화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삶의 질’같은 가치가 포함되지 않는 GDP 통계 한계에 대해선 국제적 공감대가 높은 만큼 GDP 통계 보완작업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주열 총재도 “인터넷 빅데이터 활용 등을 통해 GDP 통계 추정방법을 개선하고 생활수준을 보다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새로운 지표를 개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급결제 서비스 혁신과 관련된 통계 개발도 주요 연구분야다. 핀테크(FinTech) 확산에 대응해 지급결제시스템 안전성과 효율성을 제고하려는 것이다. 한은은 이달 11일 신종 전자지급서비스인 지급카드기반 ‘간편결제’와 선불식 ‘간편송금’에 대한 통계를 처음 공개했다. 이들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자금융업자의 결제 유동성·운영 리스크 등에 대한 효율적 관리 필요성이 커져서다. 한은은 앞으로 매분기마다 전자지급서비스 이용현황과 함께 간편결제와 간편송금 통계를 공표할 예정이다.
아울러 한은은 ‘동전없는 사회’ 구현, 생체정보 분산관리 기술 표준화, 디지털 통화, 분산원장 기술 공동연구 등 지급결제 혁신에 맞춘 정책사업도 추진 중이다.
국제기준(FSB)에 따른 그림자금융 통계, 상세 자금순환표 등 금융안정 관련 통계도 개발 단계다. 그림자금융은 은행과 유사한 업무를 하면서도 중앙은행과 금융당국으로부터 은행만큼 엄격한 건전성 규제를 받지 않는 투자은행(IB)이나 사모펀드같은 금융회사들을 말한다.
지난 4일 열린 한은 국정감사에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의원이 한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그림자금융 규모는 지난해 말 현재 166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1년(1062조원)과 비교하면 4년 만에 규모가 56.5%(600조원) 불어났다.
이주열 총재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에서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펴면서 그림자금융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국내 그림자금융 규모가 아직 선진국에 비해 크지 않지만 상호 연계성이 높으므로 위험요인이 커지고 있다”며 점검하겠다고 했다.
한은은 올해 자체감사에서 경제통계 간 부문 분류 일치 필요를 인식하고 자금순환표, 산업연관표, 가계신용통계 간 분류를 일치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 내리고 또 내리고.. 경제예측 제고 요구 높아
문제는 고도의 전문성을 토대로 경제통계를 생산해야 할 한은이 경제전망 측면에서 작지 않은 예측오차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 개발과 보완이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과제가 아닌 만큼 중앙은행의 신뢰성 측면에서 중요한 문제로 꼽힌다.
한은은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연속해서 세 번 낮췄다. 올해 1월 3.0%로 전년도 10월(3.2%)보다 0.2%포인트 낮췄고, 4월엔 2.8%까지 내렸다. 이어 7월에도 2.7%로 하향 수정한 뒤, 지난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이전(2.7%) 수준을 유지했다. 대신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7월, 2.9%)보다 0.1%포인트 낮춘 2.8%로 하향했다.
물론 경제 성장률은 대내·외 다양한 변수에 의해 영향을 받는 만큼 미리 정확하게 판단하기란 사실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한은뿐 아니라 민간 연구기관도 성장률 전망 수정 사례가 많다. 하지만 중앙은행인 한은이 전망치를 석 달마다 고치는 일이 반복되고, 특히 연속적으로 하향 수정하는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2014년 이주열 총재가 취임한 이후 한은은 성장률 전망 정확도를 높이는 차원에서 1년에 두 번 작성했던 경제 전망을 분기 별로 연간 총 4회로 늘렸지만 경제전망 예측오차는 벌어지고 있다. 경제성장 전망 오차가 커지면 기업의 투자계획부터 정부의 재정정책 판단까지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번번이 경제예측이 빗나가면 민간의 중앙은행 신뢰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은이 경제 전망과 예측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앨런 블라인더 전 미국 연준(Fed) 부의장은 저서 ‘중앙은행의 이론과 실제(1998)’에서 “선출된 정치인들에게 중앙은행이 독립되어야 하는 주요 이유는 정치과정이 지나치게 단견적(shortsighted) 경향을 띠기 때문(78쪽)”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중앙은행 독립성에 으레 수반되어야 하는 올바른 결과는 바로 공적 책임성”이며 “독립성과 책임성은 서로 돕는 관계로 부딪치는 관계가 아니다(89쪽)”고 설명했다.
최근 이뤄진 한은 국정감사에서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한국은행 보고서가 갈수록 줄고 한은 목소리도 갈수록 안 보인다”며 “청와대 한마디에 꼼짝 못 하는 기재부나 이런 데 쳐다보지 말고 중앙은행이 목소리를 내줘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통계 적실성을 높이기 위한 한은의 노력은 진행형이다.
지난해 국정감사 시정·처리요구 사항에 대한 한은의 조치결과 자료에 따르면, 한은의 경제 전망치 오차가 크고 최초 예측치보다 악화되는 패턴이 5년간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한은의 경제전망 정확도 제고’가 지적됐다. 이와 관련 한은은 “최근 경제구조와 대내·외 경제여건 변화를 반영한 전망모형 개발과 보완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한은 해외 선진 중앙은행과 전망 관련 정보교류 네트워크도 구축하기로 했다.
가계부채 통계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작업도 추진되고 있다. 설문조사 방식의 가계금융복지조사 한계를 보완해야 한다는 ‘실데이터 자료 바탕 가계부채 통계자료 산출 검토’ 의견이 제기된 데 따른 조치다. 한은은 “앞으로 가계부채 실태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가계금융복지조사에 행정자료, 신용정보 등을 활용하는 방안 등을 통계청 등 관계기관과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선은 기자 bravebambi@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