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존 종합금융투자사업자(대형IB) 기준인 3조원 이상 증권사에게는 신용공여 한도를 자기자본 100%까지 허용해 주고 다자간 비상장주식 매매·중개 업무를 맡게 한다. 또 정책금융기관·국부펀드와의 협력 강화로 해외 프로젝트나 인수합병(M&A)을 지원한다. 자기자본 4조원 이상 IB는 자기자본 200%까지 어음을 발행할 수 있게 된다. 어음은 회사채보다 발행 절차가 간편해 자금 조달이 보다 쉽다. 그간 증권사에 허용되지 않았다. 8조원이 넘는 IB는 종합금융투자계좌(IMA), 부동산 담보신탁 업무까지 추가 허용된다. IMA는 증권사가 고객이 맡긴 자금을 적극 운용해 원금과 수익을 지급하는 상품이다. IB가 자기자본을 늘릴수록 더 많은 당근이 제공되는 셈.
IB는 증권 인수 등 투자 형태로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금융회사에서 출발, M&A·프로젝트파이낸싱(PF)·기업 신용공여 등으로 그 영역을 확대해 왔다. 지금처럼 저성장 기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우리경제의 활력을 높이려면 혁신 기업을 발굴할 뿐만 아니라 그 기업에 집중 투자하고 자금을 공급해야 한다. 하지만 은행과 벤처캐피탈 중심의 자금 공급은 바닥 난지 오래다. IB 중심의 ‘종합 기업금융서비스’가 요구되는 상황. 즉 IB가 나서 투자자와 기업을 연결해 자금을 효율적으로 순환하고, 그 위험을 인수하는 대가로 높은 수익을 거두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IB는 위험을 감수할 만큼 자본력과 전문성, 네트워크가 뒷받침돼야 한다.
◇ 한국 IB의 현주소는 어떨까
우선 자본규모가 역부족이라는 게 정부 설명이다. 현재 국내 6대 대형IB 자기자본 규모는 3조원~6조원 대다. 그마저도 M&A로 몸집을 키웠거나 키우게 될 회사를 포함해서다. 2016년 3월 말 기준, 자기자본 규모 약 4조4700억원으로 1위인 NH투자증권은 NH농협금융지주가 지난 2014년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한 결과물이다. 하반기 완전한 합병을 통해 1위에 오를 통합 미래에셋대우는 약 6조7000억원의 자기자본을 보유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증권을 인수한 KB금융그룹의 KB투자증권은 자기자본 규모 약 3조8470억원으로 업계 3위에 오른다. 삼성증권(약 3조3850억원), 한국투자증권(약 3조1710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50여개 증권사들은 모두 자기자본이 3조원 미만이다.
게다가 이들 수익구조는 대체로 비슷하다. 그 중 위탁매매 비중이 40~50% 수준으로 미국(14%), 일본(17%)보다 현저히 높다. 이는 선진형 IB 촉진을 위해 2013년 도입한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의 취지와 어긋난다. 일반은행의 경우 혁신 기업이나 초대형 프로젝트에 모험자본을 공급하는 데 한계가 있기에 IB가 그 역할을 한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제도 도입 후에도 증권업계는 과거를 답습했다. 기업금융 업무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지만 만족할 만한 정도는 아니라는 게 금융위 설명이다. 금융위는 “이번 기회로 기업금융 등 고부가가치 업무를 수행하는 초대형 IB가 성장하도록 기틀을 다지겠다”고 전했다.
◇ 정부안이 정답일까
증권업 종사자들은 국내 IB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자본규모를 어느 정도 확충해야 한다는 데에 대체적으로 동의한다. 우리 정부가 ‘초대형 IB’ 롤모델로 꼽은 미국 골드만삭스의 자기자본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약 102조1000억원. 그밖에 모건스탠리(미국·88조5000억원), 노무라(일본·28조1000억원), 중신(중국·25조6000억원) 등 순이다.
하지만 초대형 IB, 이른바 ‘한국형 골드만삭스’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찮다. 한 증권사 임원은 “수십조원의 자기자본을 가진 글로벌 IB를 상대로 3조니 8조니 옥신각신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 직원은 “자기자본 규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적 인정과 규제 완화”라고 밝혔다. 덩치는 작더라도 실적이 좋으면 이를 인정하고, 레버리지 관련 규제를 완화해 수익원을 늘리자는 것.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자본규모에 따라 업무를 지정하기보다 개수를 제한하는 방식을 도입, 각 증권사가 업무를 자율선택해 전략을 구축하고 특화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글로벌 IB들은 주력 분야가 있다. 골드만삭스는 M&A 자문과 자기거래 분야에 주력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골드만삭스가 M&A 자문을 맡은 것은 394건으로 업계 1위였다. 모건스탠리는 적극적으로 M&A 사업에 참여하고 위험관리 능력을 끌어올렸다. 노무라와 중신은 아시아 시장에 중심을 두고 점유율을 높였다.
김진희 기자 jinnykim@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