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올해 초 ‘하나의 회사, 하나의 팀(One Company, One Team)’이라는 목표를 밝히고 양 은행의 화학적 통합을 강조했다. 김 회장은 “하나금융에 올해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IT통합”이라며 “IT통합이 완벽하게 끝나야 상품을 본격적으로 개발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을 정도로 전산통합에 대해 기대가 컸다.
◇ 전산통합, 실질적 원뱅크의 신호탄
KEB하나은행이 3일간의 전산통합을 마치고 오늘 업무를 재개한다. 이번 전산통합으로 (구)하나은행과 (구)외환은행으로 나뉘어 실제론 투뱅크 체제였던 KEB하나은행이 ‘원뱅크’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계기가 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원뱅크’는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모토로 (구)하나은행과 (구)외환은행 통합의 상징적 의미로 꾸준히 사용된 용어다.
당초 KEB하나은행은 올해 설 연휴를 활용해 전산통합을 끝낼 생각이었지만 지난해 하나카드와 외환카드 전산통합 작업 과정에서 발생한 결제오류로 인해 일정이 미뤄졌다. 이번 전산통합으로 기존 고객 정보도 합쳐지기에 KEB하나은행은 다음달 3일까지 영업점, 인터넷 뱅킹, 콜센터를 통해 정보 변경 신청을 받는다. 기존 양 은행 이용한 고객들은 은행 우편물 등이 원치 않는 곳으로 갈 수 있기에 사전 확인이 필요하다.
KEB하나은행은 지난 9월 합병을 완료하고 새롭게 출범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따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동안 기본적인 은행업무인 통장 개설과 해지, 대출 신청 및 연장, 보험과 펀드 상품 가입 및 해지 등을 전산 시스템 분리로 인해 하나·외환 지점별로 따로 수행해 왔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영업점에서 상대 은행의 업무를 볼 수 없는 상태였다.
◇ 인사 교차발령으로 구성원 통합 준비
전산통합 뿐만 아니라 구성원 간 화학적 통합을 위한 인사 교차발령도 단행되었다. 6월 2일부터 (구)하나은행 직원 695명이 (구)외환은행으로, (구)외환은행 직원 669명이 (구)하나은행으로 자리를 옮긴다. 총 1364명이 발령받은 것으로 이전에 본점 직원들 간 교차인사는 있었지만 지점 직원 대상으로는 처음 시행된다.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지점별 규모에 차이가 있지만 평균 1~2명씩 교차인사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여수신 시스템은 기존 하나은행을, 외환 시스템은 외환은행을 바탕으로 진행되었기에 직원들끼리 서로 코칭을 통해 숙련도를 끌어올리기 위해선 교차 인사가 필요하단게 이번 인사의 명분이다. KEB하나은행은 이번 발령으로 양 은행의 강점은 공유하고 단점은 보완되길 바란다는 입장이다.
◇ 통합이 구조조정을 부른다?
하지만 이번 통합이 구조조정과 연결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도 존재한다. 전산통합으로 인해 영업점 통합도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합병된 쪽인 외환은행 측이 이런 상황을 더 우려하고 있다. KEB하나은행은 이미 지난해 말 40세 이상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한 바 있다. 더욱이 신입행원으로 뽑힌 300여명의 직원들을 모두 기존 하나은행 점포로만 배치했기에 영업점 통폐합이 이뤄질 경우 외환은행 쪽이 배제될 가능성이 있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겹치는 점포는 30여 곳에 달한다.
이번 교차 인사발령도 원래 시스템 숙달을 명분으로 삼은 것에 비해 규모가 크다는 지적이다. 여수신과 외환 담당 직원뿐만 아니라 다른 업무를 맡고 있는 직원들도 인사 발령 대상이 되었다. 외환은행 노조는 예전 하나은행과 서울은행이 통합했을 당시 교차 발령을 계기로 서울은행 조직이 해체되어 힘을 잃었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외환 노조는 외환은행 직원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는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하겠다고 밝혔다.
◇ 내부에서 제기된 속도조절론
전산통합과 교차 인사발령을 완료했지만 원뱅크가 되기에는 아직 산적한 문제가 많다. 사측과 협의를 담당할 노동조합도 여전히 분리되어 있다는 상태도 변수다. 내부 조직 통합에 있어 ‘속도조절’론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김창근 하나은행 노조위원장과 김근용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은 모두 올 연말 임기가 만료된다. 통합노조가 출범을 해야 회사와의 협상도 원활할 것으로 보인다. 원뱅크를 숙원으로 삼고 있는 하나은행은 노조 없이 진행하기엔 부담이 크다. 리더십을 보여주기 위해선 관련 부서 통합 등 인적 구성을 계속 조정해야 하는데 통합 노조가 있는 편이 각 노조가 있는 현재보다 협상하기 더 수월하다. KEB하나은행 관계자도 “신한은행도 과거 조흥은행과의 전산망 통합에 2년이 걸렸지만 완전 통합은 그로부터 1년 뒤였다”며 KEB하나은행도 관련 부서 통합도 빠르게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 시사했다.
◇ 연봉·직급은 여전히 투트랙
노조 통합은 연봉과 직급체계 일원화하고도 밀접하게 관련된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출신 직원들은 서로 다른 직급·승진체계를 통합 이후에도 줄곧 유지해 오고 있다. 외환은행 직원들의 평균 연봉이 하나은행보다 700만원 가량 높다. 상이한 연봉테이블은 교차 인사이후 불만을 촉발시킬 뇌관이다. 같은 업무를 같은 장소에서 함에도 서로 연봉이 다르다면 필연적으로 직원통합의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봉 문제 역시 빠른 시간 안에 해결되긴 어렵다. KEB하나은행 직원들은 앞으로 1년 이상 전 소속 은행 기준의 연봉테이블에 따라 연봉을 받는다. 양 은행이 지난해 9월 통합 당시 향후 2년간 인사·연봉을 투트랙으로 가기로 이미 합의했기 때문이다.
KEB하나은행은 연봉테이블을 어느 은행 기준에 맞출 지는 아직 미정이라 밝혔다. 그러나 최근 금융권에 불어 닥친 성과연봉제가 큰 변수다. 성과연봉제 도입 압박이 거세지만 단일 연봉 기준이 없는 KEB하나은행은 문제를 풀어가기 더 어렵기 때문이다. KEB하나은행은 성과중심·영업제일주의 문화 정착을 내세우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향후 연봉테이블 일원화가 더 빨라질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함영주 은행장도 올해 초 “구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노조를 올해 안에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노조 통합과 임금·직급체계 일원화 의지를 드러냈다.
신윤철 기자 raindream@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