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전후좌우 살필 겨를도 없이 몰아친 은행 재편 소용돌이 속에 숱한 은행들이 사라지면서 소중했던 역사 편린들이 누락되거나 소실됐다.
◇ 급격한 재편 소용돌이 침몰 일쑤였던 역사 편린들
특히 인수합병이 됐든 대등합병이 됐든 역사가 길었던 은행의 전통은 대통합 기운을 살리는데 큰 걸림돌로 지목됐고 이 때문에 통합을 마치고 새로 출범한 날을 새로운 역사적 기점으로 삼는 은행이 늘었다.
지금은 이름이 사라진 한 시중은행 전직 임원 A씨는 “심모원려란 말을 꺼내어 검토하십사 요청할 여유도 딱히 자문을 구할 만한 금융역사 전문가도 없다 보니, 당장 통합 출범에 잡음을 없애고 한 가족 한 마음으로 뭉칠 것을 주문하기에 바빴던 것 같다”고 합병 과정을 떠올렸다. 더욱이 생존가능성을 중차대한 과제로 안고 있었던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 과정에선 통합 출범 초기 무렵 숱한 은행들이 과거를 돌아볼 여력이 없었던 것이 결정타로 작용했다.
적어도 두 세 개, 많게는 대 여섯 곳 이상 역사적 연원을 지니는 통합은행이었어도 과거 사료를 제대로 관리한 곳은 매우 드물고 스스로 연혁을 깔끔하고 완벽하게 정리하는 일은 나중의 일로 밀리기 일쑤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자랑할 만큼 긴 역사를 품은 은행과 통합한 뒤 그 역사 전부를 통합 은행의 역사라고 적극적으로 선전하고 나서지 않는 대신 통합 새출범 기념일을 부각시키는데 역량을 더욱 집중한 경우 또한 여럿 있었다.
◇ 현존 最古 우리은행 역사 종결은 지난해 다시 선포된 셈
그 때문에 인수합병을 거쳐 통합은행을 출범시켰던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은 인수 주체 쪽 역사적 출발 시기, 즉 신한은행 1982년 7월이나 하나은행 1991년 7월 기준으로 정리하지도 역사가 더 긴 은행 역사로 통합하지도 못한 채 각각 2006년 4월1일(신한+조흥기준)과 2002년 12월 2일 출범 기념에 집중하는 시기를 꽤 오래 걸치게 된다.
반면 공적자금 수혈에 의존함이 컸던 시중은행 둘이 대등합병한 우리은행은 조금 달랐다. 우리은행 전신은 1999년 1월 4일 출범한 한빛은행이고 이 은행은 옛 상업은행과 옛 한일은행 대등합병을 통해 탄생했다. 그리고 상업은행 전신인 대한천일은행은 1899년 1월 30일 창립했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은행은 우리 나라 최고(最古) 전통을 자랑하는 토종은행이란 역사적 가치를 내세울 수 있었다.
2001년 4월 출범한 우리금융지주 주력자회사로서 이같은 후광을 활용하는 건 당연한 몫으로 인정받는다.
물론 한때 법정공방까지 불사하면서 대한민국 첫 은행 자리를 놓고 다퉜던 조흥은행이 현실 무대 저편으로 떠난 뒤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나마 지난해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우리금융민영화를 최대한 조속한 기간 안에 완수하겠다고 천명하면서 시한부 신세가 됐다.
조흥은행의 전신인 한성은행은 1897년 2월 창립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다만 이 역사적 뿌리는 신한금융지주가 조흥은행을 인수한 지 채 2년 못된 짧은 기간에 통합작업에 박차를 기울여 신한은행과 통합하는 과정에서 잠시 무대 뒤편에 자리 잡는 것에 족해야 했다. 물론 이제는 한성은행이 신한은행 공식 홈페이지 연혁에 당당하게 등장하고 최근 신한지주 한동우 회장이 기자간담회와 자회사 부점장까지 참여하는 경영전략포럼에서 이 역사성에 생기를 불어넣는 시도가 취해지기도 했다.
◇ 화석화 시킬 것인가 되살려 낼 것인가 속단하기 일러
여기다 현존 은행들 가운데 가장 많은 은행이 창립됐던 1967년. 그 해 창립 러시 신호탄을 쐈던 외환은행(1월30일)이 최대 3년 1개월 안팎 동안만 독립경영을 유지할 수 있을 전망이어서 70년대 이전 시중은행은 전무한 상황이 펼쳐질 전망이다. 공식적으로 알리기를 외환은행과 하나SK카드가 스스로 머리를 맞대고 검토한 결과 통합하는 쪽이 생존가능성과 시너지가 훨씬 크다는 결론을 내림에 따라 외환은행에는 근본적 변동이 임박했다.
카드부문 분사에 나선 뒤 하나SK카드와 통합한다면 한 사업부문이 통째로 하나금융그룹에 화학적 결합을 맞는 셈이기 때문이다. 금융계에선 독립경영 5년 합의가 끝까지 지켜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장담하는 인사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옛 보람은행과 충청은행에 이어 서울은행 인수합병 이력을 지닌 하나은행과 궁극에는 통합 출범할 때가 만약 2017년이라면 외환은행 50년 역사는 어떤 운명을 맞을 것인가? 처음엔 홀대 받다가 나중에야 첫발을 내딛은 지 50년 넘는 유서깊으며 저력 있는 은행임을 표방할 것인지 아예 역사적 연대기를 20 줄 넘는 존재에서 단박에 50 줄 넘는 중후한 품격으로 올라설 것인지는 책략과 행동 나름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史實)로 인정받았던 가장 오랜 은행 역사를 온전히 되살렸다고 평가받기에 아직은 미흡한 신한은행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재평가 받고 역사적 재인식을 보편적으로 뿌리내리기에 적지 않은 공을 들여야 할 상황인 것도 같은 맥락인 것으로 풀이된다.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