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적 시장으로 볼 때 인근지역이나 온 세계 시장 진출도만 낮은 게 아니라 국내시장 장악력 또한 충분치 않고, 업무 내지는 서비스 시장 면에선 가계와 중소기업 예대업무에 편향된 반쪽 경쟁력 밖에 없는 것이 가장 큰 극복 과제다.
지난 25일 인천 영종도 한 호텔에서 금융연구원이 언론사 경제·금융부장과 은행장들을 초청한 가운데 마련한 세미나에서 내려진 진단을 이같이 압축해 봤다. 업무 내지는 서비스 영역에서 특정 부문에 높은 의존도 때문에 외부 여건이 나빠질 때마다 휘청거리기로는 비단 은행 뿐만이 아니라는 지적은 금융계 어떤 권역을 막론하고 공통적인 사안이라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특히 2003년 카드 대란 이후 영업실적 큰 줄기를 훑어본 결과 은행권은 2005~2007년 13조원 이상 순익을 냈던 황금 호황기 때 보이지 않게 축적해 둔 밑천을 고스란히 털어 먹은 상태인 것으로 분석된다. 뒷마당에 묻어 놓았던 숨은 밑천마저 고갈된 처지에 복합불황 삭풍 속에서 활로를 엿보는 처지인 셈. 핵심 역량의 획기적 확장과 축적에 나서지 않고 인력 R&D와 인프라투자 없이 국내 금융계가 지금 이대로를 고집하다간 시장에서 도태되지 말란 법이 없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에도 다 이유가 있다.
또한 동시에 발 빠른 혁신에 나선다면 영업실적 최대 호황기로 기록될 2005년부터 3년 동안 13조원 이상 당기순익 행진을 뛰어 넘어 해외 무대에서도 의미 있는 영업성과를 겸비할 수 있다는 지적이 뒤 따른다.
◇ 순익 껍질 벗겨낸 뒤 확인해 보는 속살
2011년 순익이 10조를 훌쩍 넘어 대손준비금 반영전 연결 기준 14조 7129억원을 찍었을 때 숱한 대중매체들은 ‘땅 짚고 헤엄치는’ 수준의 예대업무(예금받아 대출 내주기)나 하면서 이자와 수수료를 너무 많이 받는 것 아니냐고 지엽말단적 검증 시도를 했던 적이 있다. 불과 몇 해 지나지 않아 직원 급여와 후생은 노사협상을 거치고 임원 급여는 이사회를 거치는 정상적 절차에 따라 집행됐는데도 순이익이 반토막인데 연봉잔치를 벌인다고 비난의 소리를 높인 바 있다.
최근 한국금융신문과의 통화에서 은행권 한 고위관계자는 “초음파나 CT기에 이어 MRI기기까지 제 아무리 진단 장비가 최첨단을 달린다 해도 막상 개복하고 보면 생각보다 더 악화된 병세를 확인했다는 사례가 왕왕 발생하는 법인데 은행이 처한 현실에 대한 진단은 정밀진단조차 없이 감상적인 풍조가 지배하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은행권 순익은 2003년 카드대란 이후 적게 남은 해가 7조원, 많이 남긴 해는 15조원 가까이를 찍었다가 지난해 10조원 벽 앞에서 주저 앉고 올해 상반기를 합해 3조원 벽 앞에서 주저 앉고 말았다. 감독당국 수장이 반토막 실적을 우려하면서 비상한 대응에 나서려고 하니 수수료 인상 절대 반대 정서에 가로 막혀 본질은 뒷전으로 밀려 났던 게 지난 상반기 풍속도였다. 겉 모습이 화려했던 과거를 지닌 사람일수록 눈 앞에 닥친 불행에 더 큰 충격을 받기 마련이라는데, 대한민국 금융산업이 처한 이익 침하 현상을 둘러싼 과민반응이 마치 그 꼴이라고 지적할 만 하다.
◇ ’05~’07 황금기 3년과 2011년 결정적 차이 간파해야
은행연합회장 박병원 회장은 한 기자간담회 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 은행 이자마진에 비춰볼 때 결코 마진 폭이 큰 게 아니라고 통계치를 들이 밀면서 거듭 강조한 적이 있다. 금융산업 경영여건과 실적을 살필 때도 적어도 외환위기 이후 전체를 거슬러 살피면서 앞날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교훈 역시 그와 같은 태도를 취했을 때 얻을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울 만 하다.
은행 경영실적 큰 줄기를 훑으면 2011년 15조원 가까이 남긴 순익 규모는 2005~2008 석 삼년 황금기에 남겨 둔 자양분을 몽땅 뽑아 쓴 결과였을 개연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순익 규모와 더불어 대손충당금 순전입액 등 손실이 나면 감당할 수 있도록 투자한 규모를 함께 보기만 해도 얼추 짐작할 수 있다.
2007년 당시 대손충당금 잔액은 15조 3529억원에 불과했다. 이듬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곧바로 순익 규모가 8조원 턱 밑에서 그치고 2009년엔 7조원을 간신히 넘기는 사이 충당금 잔액은 21조원 수준으로 6조원 가까이 늘렸다. 이어 2010년과 2011년 약 27조원과 28조 7000억원으로 늘려야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순전입액이 5조원 이상 불어난 건 2008년과 2010년 두 해 뿐이라는 점. 2011년 15조 순익은 2009년 8000억원에도 못미치고 2011년 1조 8000억원도 안되는 충당금 순전입액에 힘입은 바 크다.
◇ 손실흡수 여력 깎아 내어 지탱하던 순익 ‘탈’ 벗을 때
특히 2011년 대손준비금을 처음 쌓으면서 2조 7000억원을 장부상 순이익에서 빼고 계산해 보기도 했지만 경기가 더 나빠진 지난해오 올 상반기 준비금은 오히려 환입해 갔다. 그러고서도 순익이 크게 빠진 것이 금융계와 당국 그리고 금융소비자 모두 인정해야 할 은행 건강상태인 것이다.
충당금을 덜 쌓아 겨우 맞춰 내던 순익 규모가 더 이상 장부상으로도 가능하지 않다는 현실 인정에서 재활을 모색해야 하는 셈이다. 이 마당에 금융연구원 이수진 연구위원은 △주요 고객이 가계·중소기업이며 소매금융에 특화 △스스로 역량을 키우기 보다 이미 진출한 금융사 인수하는 방법 사용 △은행의 타 금융기관 인수능력 부족 △글로벌 선진은행에 비해 미흡한 해외 네트워크 및 글로벌 경쟁력 등을 극복해야 할 점으로 꼽았다.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