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로선 별다른 대응 준비를 하고 있지 않다.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 예금이 빠질 조짐이 보인다면 그때 가서 새로운 상품을 내놓거나 특판 상품을 내놓겠다.” - B시중은행 간부
세법 개정에 따라 은행권 수신이 타격을 입으리라던 전망이 현실화됐지만 은행들이 느긋했던 이유가 뜻밖의 곳에서 노출되기 시작했다. ▶ 관련기사 3면
은행들은 대내외 실물경제 여건이 나빠지는 가운데 저성장 기조마저 덮쳐 오자 ‘선택과 집중’ 원칙을 강고하게 하는 대출 책략에 힘쓰고 나섰고 그 결과가 제한적 대출 성장으로 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 대출 가운데 견조함을 이어 가고 있는 분야는 대기업과 주택담보대출 뿐이다. 비록 최근 들어 중소기업 대출이 늘어나긴 했지만 업종과 신용등급 전반에 걸쳐 대출을 확대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또한 앞으로 꾸준한 대출 증가로 이어질지 역시 불투명하다.
이런 가운데 마이너스통장 등 신용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 외 대출은 다시 줄이고 있고 중소기업 대출에 포함돼 있는 개인사업자 대출은 부진의 소용돌이에 가까워지는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양극화에도 여러 겹 층이지는 새로운 단계로 옮겨 온 것인지 여부는 이르면 1분기 안에 늦어도 상반기 중 확연해 질 전망이다.
◇ 양극화 심화되니 여러 겹 층이 진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양극화라 함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고신용자와 나머지 신용자, 위험 업종과 업황 호조 업종 등 단순 양극화로 특징을 드러냈지만 이제는 이런 설명 만으로 한계가 뚜렷해지고 있다. 경기 하방경직성이 커지면 개인사업자를 비롯한 중소기업 대출 회수 일색이던 모습은 나타나지 않고 증가세가 여전한 듯 하지만 내면적으론 중소기업 안에서도 집단별 격차가 심화되는 양상이 불가피 할 것이기 때문이다.
13일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이 낸 금융시장 동향과 자영업자 기업대출 현황 등에 따르면 표면적으로는 중소기업 대출 여건이 그다지 나빠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지난 12월 대출 감소 폭이 7조 7140억원으로 2011년 12월 10조 2049억원보다 적었다. 이어 1월 순증 폭은 지난해 1조 9567억원보다 올해는 1조 1000억원 이상 더 많은 3조 1139억원을 기록했으니까.
◇ 몰랐던 착시 걷고 보니 중소기업 회피 현상 실감
하지만 지난해는 물론 2011년 역시 중소기업 대출 증가치는 착시였을 혐의가 짙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1년 중소기업 대출 증가규모는 11조 3116억원이고 지난해엔 5조 7259억원으로 급감했다. 지금까지 금융당국과 통화당국은 지난해의 경우 중소기업 기준이 달라져 재분류한 영향이 컸다면서 이 규모를 감안하면 대출이 결코 급감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중소기업 대출에 포함되는 개인사업자 대출 움직임을 보면 이같은 설명이 궁색해지고 만다. 2011년 개인사업자 대출 증가 규모는 약 13조원으로 중소기업 대출 규모보다 약 1조 7000억원 정도 많다. 지난해 역시 개인사업자 대출 규모는 약 15조원이었다. 개인사업자대출이 이처럼 늘지 않았다면 중소기업 대출은 역성장, 즉 감소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중소기업 재분류 규모가 2011년 13조 2000억원, 지난해 22조 80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은행들이 대출을 줄인 게 아니라는 해명을 곧이곧대로 반영하면 어떻게 되나. 2011년은 11조 5000억원 지난해는 13조 1000억원 늘었던 셈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른다.
민간 연구기관 한 전문가는 “중소기업을 재분류했던 취지는 사실상 중견기업 수준으로 성장한 기업을 중소기업 울타리에서 보호해주던 때가 지났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인데 그런 기업들에 대한 대출을 중소기업 대출인 셈 치자는 것은 현실을 정확하게 보려는 태도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사실상 대기업으로 분류해야할 기업 대출을 빼고 개인사업자 대출 증가폭에 따라 실상보다 부풀려진 거품을 빼고 보는 중소기업 대출은 실질적 감소세라고 보는 것이 훨씬 타당해지는 시점이다.
◇ 그나마 우량 중소기업에 집중할 개연성 짙어
반면에 2011년과 지난해 대기업들은 2년 연속 27조원 웃도는 대출 증가세를 누렸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중소기업으로 최종 잔존한 업체 사이에서 양극화가 본격화 할 개연성 또한 짙다. 개인사업자보다 박한 대접을 받으며 대기업에 자금 몰아주기 현상이 심화되는 와중에 여전히 중소기업으로 불리는 기업 사이에서도 매출과 이익 움직임이 천차만별일 것이기 때문이다. 은행 대출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한은이 조사한 바 대출태도는 지난해 4분기보다 올해 1분기 크게 강화할 것이라고 파악됐다. 1월 중소기업 대출 증가폭 3조 1139억원 가운데 개인사업자 대출 증가분을 빼더라도 증가폭은 결코 적지 않다.
출범을 앞둔 박근혜 정부는 중소기업 지원 확대를 핵심과제로 꼽고 있다. 은행들이 대출을 늘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렇다고 중소기업 대출이 순탄하게 골고루 이뤄지리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금융계 한 간부는 “연말에 일시 상환했던 자금 중 일부만 다시 대출로 되돌아 온 규모를 뺀다면 진짜 늘어난 규모가 얼마겠으며 설날이 2월 10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1월에 설 자금을 미리 받아 놓은 것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조 7000억원 중 설자금 집중지원 분까지 제거하고 나면 중소기업 자금수요에 기별이나 갔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이 중소기업 대출을 취급하는 은행권의 경기순응성이고 적나라함이라 할 만 하다.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
이나영 기자 lny@fntimes.com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