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TIMES 대한민국 최고 금융 경제지
ad

[데스크 칼럼] 항룡유회보다 일월영측이나 ‘극즉반’

정희윤 기자

simmoo@

기사입력 : 2012-11-26 06:46

정희윤 은행팀장

  • kakao share
  • facebook share
  • telegram share
  • twitter share
  • clipboard copy
[데스크 칼럼] 항룡유회보다 일월영측이나 ‘극즉반’
노자께서 생각한 최고 수준의 통치단계는 ‘통치자가 있다는 사실만 겨우 알고(太上, 下知有之, 도덕경 제57장), 통치자의 존재를 부담으로 느끼지 않는 단계’라고 한다.

최근 우연히 본 글 중에 서강대 최진석(철학) 교수는 “국가나 사회 혹은 기업 조직이 진정한 강자가 되기 위해서는 주도권이 구성원들의 자발성으로 넘어가”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본 사람이 노자라고 전했다.

“노자가 보기에 조직이나 사회 건강성은 개별적인 각자가 얼마 만큼의 자율성을 부여받고 얼마 만큼 자발적 생명력이 허용되는가에 달려 있다”고 그는 풀이했다. 필자의 짧은 식견 속에는 노자가 생각한 이상사회를 ‘소국과민(小國寡民)’이라는 말로 집약했다는 이야기도 생각난다.

‘나라는 작게 하고 백성 수는 줄여서 비록 배와 수레가 있더라도 그것을 타고 옮겨 다녀야 할 일 없고 무장한 군대가 있어도 진을 칠 곳이 없게 해야 한다’는 무위와 무욕을 실현시킨 이상사회 말이다. 경쟁 상대의 불행을 빌어서라도 나의 행복을 확장하는 짓조차 서슴지 않는 자본주의 문화의 대척점에 서 있는 사상체계라 일컬을 만하다. 짐작하건대 굳이 거대한 권력과 강력한 법치를 앞세우느라 정부와 사법기구가 많은 인력과 예산을 들여 가며 물샐 틈 없이 업무를 보느라 애써야 하는 사회와 정반대가 아닐까 싶다.

◇ 뉘 있어 잠룡이라 참칭하며 견룡도 없이 항룡을 논하는가

바야흐로 대선 국면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어느 샌가 평범한 신문 독자들에게 선거철이 다가왔음을 깨닫게 하는 제목 뽑기가 ‘잠룡(潛龍)’이란 표현으로 관용화됐다. 효시는 아마도 김영삼 대통령의 뒤를 이을 당시 신한국당 유력 후보군들을 일컬을 때가 아니었을까, 기억을 더듬어 본다.

필자의 기억으론 8명의 후보군을 놓고 잠룡으로 칭하며 강점분석과 일상행보를 소개하는데 지면을 대폭 할애하는 유력 일간지들의 풍속이 생겨났던 때가 그 때였다. 훗날 만인이 우러를 존귀한 자리에 오를 자질과 잠재력을 가진 상서로운 존재를 칭하던 ‘잠룡’이라는 말이 자질과 잠재력은 뒷전이고 일단 지명도가 있고 깔고 있는 세력이 커서 대선 후보군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만 하면 당연히 부여받는 칭호로 매우 격하된 채로 세속화됐다.

‘항룡유회(亢龍有悔)’라는 뜻 깊은 말도 남용을 일 삼는 사람들이 값어치를 저자거리로 내 던져 놓았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지난 연초에 내놓았다는 신년사에 이 말이 등장했다. 올해가 임진년 용의 해였으니 용과 관련된 덕담을 하려 했고 선거의 해니까, “대통령이 되려는 대선 주자들은 ‘항룡유회’라는 옛말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는 이야기다.

◇ 액면과 자구(字句)의 표피에 함몰된 인스턴드 지식의 가벼움

일단 박 전 의장이 2008년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의 핵심당사자였던 만큼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 3부 요인 중 한 분으로써 부여받아 마땅한 존경과 예우를 거둬들여야 하니 신년사에 담긴 뜻마저 평가절하해야 한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권력의 핵심부 극상의 자리에 오르고 나서 교만과 안일에 젖어 초심을 잃기 얼마나 쉬운지 그래서 후회하는 상황에 이르기 마련이니 삼가고 경계하며 덕을 쌓아 바른 길을 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에 간곡한 뜻을 담아 낸 권고였을지도 모른다.

정작 다시 한 번 돌아보자고 독자제현께 간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다. 원래 잠룡이니 항룡이니 하는 이야기들은 주역의 건괘(乾掛)에 등장하는 운세의 흥망성쇠를 비유한 것으로 요즘 매스미디어가 쓰듯 남발할 말이 아니다. 잠룡을 단순히 잠재력을 지닌 후보 중 하나라고 칭하는 데나 쓰는 순간 인스턴트 지식 섭취자의 한계를 드러내는 격이다. 그냥 때를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 연못 깊이 몸을 삼가며 역량(덕)을 쌓는 단계에 있는 존재를 잠룡이라 한다면 모를까.

또한, 잠룡이 모두 항룡이 된다던가? 아니다. 충분히 덕을 쌓은 뒤 때에 이르러 모습을 드러내어 군주로부터 인정을 받는 견룡(見龍)의 단계를 거쳐 갈고 닦은 덕을 세상에 널리 끼쳐(덕화를 입힌다고도 한다) 하늘을 날아 제왕의 지위로 나아가는 비룡(飛龍)이 되면 따르는 인재가 구름같이 몰려드는 단계를 맞이한다고 한다.

항룡은 그런 연후에 더 이상 더 나아갈 곳이 없는 극한의 경지에 처하는 상태다. 오로지 현세를 중심으로 마음을 닦고 사람들 간에 마땅히 지켜야 할 예를 길러 궁극의 경지를 완성하는 즐거움을 최고로 삼은 유가가 헤게모니를 잡은 이후 완성된 철학 또는 학문을 한학(漢學)이라 한다. 한학 초심자가 흔히 읽는다는 천자문엔 ‘총증항극(寵增抗極)’이란 구절이 나온다. 영광이 높아지면 마땅히 극에 이르게 되고 장차 추락할 위태로움을 생각하라는 뜻을 담은 이 말은 항룡유회와 통한다.

하지만 당장 가져다 쓰기 좋다고 마구 쓸 뿐 아니라, 새로 등장하는 유력 인사 여럿을 다같이 ‘용중일인’으로 떠받드는 과한 처사는 어찌 평가해야 좋을까

◇ 금융산업 싸이클에도 ‘극즉반’의 원리는 엄연

우리 사회에선 한학의 알맹이는 안중에도 없이 자녀의 한자실력 공인 등급을 높게 따려는 심산에 천자문을 배우는 열풍이 불었다. 천자문 세 번째 글귀가 끝 없이 운행하는 해와 달이 차고 기울기를 반복하는 진리를 담은 일월영측(日月盈仄)이다. 일월영측의 법칙을 인간사회에 좀더 구체화 한 것중 하나가 총증항극 등의 표현일 것이다. 그리고 치세에 큰 뜻을 품은 사람의 성공가도와 용퇴에 이르는 운세와 이 과정에서 새겨야 할 교훈을 담은 것이 주역 건괘편의 가르침이지 않을까.

하지만 한자 낱낱의 음과 훈만 가르치고 시험을 봐서 한자능력시험 급수 올리는 데 만족하는 가르침으론 한학경전에 담긴 글월의 뜻을 알 수 없다. 아니 우리 사회는 그런 것쯤 몰라도 되는 사회로 변질됐다가 최근에야 온고이지신의 참 뜻을 회복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사실 나라의 정사 말고도 금융산업 역시 일월영측의 법칙은 그대로다. 다른 표현 중에 극즉반(極卽反)이 있다. 기운이 지극한 곳에 이르면 반대의 길로 되돌아 가는 법칙을 이른다. 은행 경영의 호시절이 다하고 여러 여건이 어려운 때에 접어들고 금융계의 ‘용’들 가운데 극즉반의 형세에 처할 분이 나타날테니 앞으로 금융경제계 밑바닥에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삼가고 근면을 다해 덕을 쌓으신 분들은 두고 두고 칭송을 받을 것이고 권세 집행에 집중하느라 덕화를 끼치지 못한 분들은 오명으로 오르내리는 전대 금융경영자들의 전철을 밟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무릇 금융인이라면 항룡유회라는 말보다 ‘절의염퇴(節義廉退)’나 ‘노겸근칙(勞謙謹勅)’하는 마음가짐으로 바른 길을 걸으려 애쓰는 태도를 본으로 삼는 편이 유익하리라 믿는다.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

가장 핫한 경제 소식! 한국금융신문의 ‘추천뉴스’를 받아보세요~

데일리 금융경제뉴스 FNTIMES - 저작권법에 의거 상업적 목적의 무단 전재, 복사, 배포 금지
Copyright ⓒ 한국금융신문 & FNTIMES.com

오늘의 뉴스

ad
ad
ad
ad

한국금융 포럼 사이버관

더보기

FT카드뉴스

더보기
[카드뉴스] 국립생태원과 함께 환경보호 활동 강화하는 KT&G
[카드뉴스] 신생아 특례 대출 조건, 한도, 금리, 신청방법 등 총정리...연 1%대, 최대 5억
[카드뉴스] 어닝시즌은 ‘실적발표기간’으로
[카드뉴스] 팝업 스토어? '반짝매장'으로
[카드뉴스] 버티포트? '수직 이착륙장', UAM '도심항공교통'으로 [1]

FT도서

더보기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