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 가격이 한꺼번에 20% 떨어진다 해도 은행권 부실위험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정도로도 2금융권의 부실이 커질 수 있어 우려스럽고, 만약 30% 수준으로 떨어지면 은행들도 위험한 구간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신한은행 이상호 부행장)
가계부채를 놓고 이 분야 국내 대표적 연구기관 두 곳이 여건과 상황이 급격히 악화될 경우 어떤 형편에 처할 것인지 재어보는 ‘스트레스 테스트’를 해 본 결과 웬만한 위기가 오더라도 심각한 위험에 빠지지는 않을 것으로 예측됐다. 물론 그렇다고 안심해도 된다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기 때문에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는 컨센서스가 크게 일어났다.
가계부채 규모가 총량 수준으로 매우 많이, 소득수준보다 가파르게 늘어났던 후유증을 완전히 피하기 어렵고 대외 불안요인과 국내 실물경제 등 악영향을 끼치는 요인이 복합한데다 악영향이 2차, 3차로 연쇄 파급되면 은행권조차 신용창출기능을 잃는 등 경제 시스템 전반이 극단적 위기의 늪으로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설령 담보가치가 높은 대출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계부채 자체는 극단적 위기에 빠지지 않을지 몰라도 이미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의 경우 자칫 대내외 경제 악화양상이 길어지면 부실화가 진척될 수밖에 없어 금융건전성이 안정권에 있다고 보다가는 큰 코 다칠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 다중채무자 상환 형편 등 감안 최악상황 테스트 큰 의미
금융위원회 주최로 금융연구원이 주관한 지난달 30일 ‘가계부채 미시구조 분석 및 해법’세미나에서는 다중채무자의 채무부담 현황과 상환부담률을 미시적으로 추적한 뒤 부동산 가격이 전국적으로 20% 떨어질 경우, 그리고 부동산 가격과 더불어 가계소득이 최대 20% 줄었을 경우 가계부실 발생 규모를 추산했다.
이튿날인 지난달 31일 한국금융학회와 금융연구원이 주최한 심포지엄에선 한국개발연구원(이하 KDI)이 추정한 소득, 금리, 부동산 가격 하락 시나리오별 가계 부도위험을 추정한 결과가 제시됐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을 비롯한 여러 참가자가 총량과 증가속도 등을 놓고 막연하게 우려해왔던 가계부채 건전성 평가에 진일보한 접근이 이뤄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아울러 안심할 단계가 아니기 때문에 다각적인 대응책 가운데 몇몇 과제는 새롭게 부각되면서 향후 실행 추이에 관심이 쏠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KDI 김영일 부연구위원은 소득이 10% 줄고 주택가격이 전국적으로 10% 떨어지는 동시에 금리가 2%포인트 오르는 3각 파고가 들이닥칠 경우 부도위험에 빠질 가구가 약 6% 가까이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 소득 금리 부동산값 다 하락해도 은행은 견딘다?
소득, 자산, 이자율이 현 수준에 머무를 경우 3% 수준인 데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나는 것이지만 그 규모는 크지 않을 것이란 추산 치다. 부도위험에 빠질 부채규모는 7.27%로 더 많이 늘지만 경제 시스템 리스크로 늘어날 정도는 아니라고 그는 진단했다.
김 위원은 은행들의 BIS자기자본비율 하락 폭을 1%포인트 안팎으로 예측하고 크게 우려스런 상황은 아니라고 봤다. 하루 앞서 발표에 나섰던 금융연구원의 테스트 결과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집값이 모두 20% 떨어지고 금융회사 채권 회수율이 70%에 그친다고 봤을 때 부도위험에 이를 고위험가구가 14만 7000가구에 이르고 금융권 손실규모는 16조 6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또한 집값과 가계소득이 동시에 20%씩 떨어지면 고위험가구는 19만 7000가구에 이르고 금융권 손실규모는 17조 9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특히 금융연구원 임진 연구위원은 “전국 주택가격 20% 하락에 따른 손실을 전부 은행권이 부담한다 하더라도 BIS자기자본비율은 최대 1.4%포인트 하락하는 수준에 그칠 것으로 추산돼 은행권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고 봤다.
◇ 악재 중첩 연쇄 땐 은행도 어렵고 당장은 비은행 우려
그렇다고 경계론이 걷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신한은행 이상호 부행장은 “은행 주택담보대출은 LTV 50% 이내가 대부분이어서 집값이 20% 떨어지더라도 손실위험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일단은 낙관했다. 하지만 “LTV가 60% 안팎에 이르는 채권은 결코 적지 않은 규모”라며 “집값이 30% 수준으로 떨어지기만 해도 고위험가구의 연체가 늘어나는 등 은행도 위험한 구간에 진입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금융지주 김홍달 전무는 “가계부채 해법을 동원한다면 고소득층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커지고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대책 마련 논의만 되풀이 할 것”이라며 “고연령일수록 만기 일시상환 대출 비중이 크면서 상환여력이 적은 만큼 제도적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장기 원리금분할상환으로 전환하는 노력을 기울이되 원금 상환에 따른 추가부담은 소득공제를 늘려 주는 등 실효성 있는 유인책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