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하기 전 국내 금융회사들이 단기차입을 급격히 늘린 적이 있고 이 때문에 해외 여건 변화에 대한 민감도가 극도로 높아졌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외화로 구성된 자산과 부채의 규모가 달라(통화불일치) 환율이 변하기만 하면 손실과 이익이 널 뛰듯 뿜어져 나왔던 문제, 자산과 부채 만기가 달라 부채를 회수하기 전엔 즉시 대응하지 못하는 유동성 위험에 적나라하게 노출되곤 했던 처지를 벗기 위한 장기적인 대안이 모색된 결과다.
미국 프린스턴대 신현송 교수(경제학과)와 한국은행 정규일 국제경제연구실장, 그리고 같은 연구실 박하일 전문연구원은 특히, 국내 조선사들을 비롯해 수출기업들이 외화로 받은 대금에 대한 위험 헤지에 나서고 이 헤지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만큼 국내 은행들이 해외차입을 늘려야 했던 경로를 끊는 방식을 끌어 왔다. 장기적으로는 이른 바 ‘외환안정기구’를 만들어 선물환 거래와 환 헤지 과정을 주선하고 흡수해 줌으로써 국내 금융회사에 쏠렸던 단기 외화차입 급증 유인을 해소하는 안정적 시스템을 갖추자는 제안이다.
◇ 수출흑자 속 단기외채 급증 은행으로는 막을 수 없으니
신현송 교수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2004년 말 약 440억 달러에 그쳤던 은행들의 단기외채가 글로벌 위기 직전인 2008년 9월 1600억 달러로 급증한 원인을 직시했다.
그동안의 취약성은 주로 수출업체들의 대규모 환위험 헤지거래로부터 극대화됐다고 분석했다. 수출업체들이 수출계약을 통해 외화자산을 받는 경우 이 자산은 대부분 많은 시간이 지나야 수익으로 실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수출업체들은 은행에 선물환을 팔아 두는(매도거래) 방식으로 환위험을 피하곤 했다.
수출업체가 내놓은 선물환을 사 들인 은행들 역시 이에 따른 환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해외로부터 주로 단기자금을 빌려 와, 원화로 바꾼 다음 보유하는 방식을 취했다는 것이다. 외화 자산을 끌어다 원화로 바꿨으니 통화불일치 문제는 해결했지만 장기 선물환 때문에 단기 외화부채를 잔뜩 지게 된 것이 유동성이 극히 취약한 시스템으로 이어진 것이다.
여기다 조선사 등 수출업체가 따오는 자산은 중장기 외화자산인데 정유사나 철강사 등 대표적 수입업체들은 단기 외화부채가 주류를 이루기 때문에 수출업체와 반대 요인에 따른 환위험 헤지 수요가 많지 않아 취약성이 더욱 커졌다고 살폈다. 선물환거래 때문에 은행들이 단기 외화차입을 늘려야 하는 문제를 완화시킬 방법으로 신 교수 등은 아예 외환안정기구(가칭)를 고려해 봄 직하다고 주장했다.
◇ 은행 대신 선물환 거래 수요 감당할 기구 창설
물론 외환안정이라는 공공적 가치를 수행해야 하는 만큼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지 않으며 영업자금을 자본금으로 조달하도록 하고 △자산과 부채 모두 달러화로 구성하되 △기업들이 실수요에 따라 선물환을 팔 경우 이 기구가 사들여서 늘어나는 외화자산 만큼 이 기구의 다른 외화자산을 줄여서 상쇄하는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자는 게 뼈대다.
일단 이 기구는 자본금 규모 만큼 미국 국채를 보유한 채 출범한 뒤 선물환을 사들이고 나면 이 금액 만큼 미국 달러화 자산을 팔고 우리 국채와 같은 원화표시 자산을 사들이는 방식을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신에 한국 국채에 대한 평가는 미 달러화로 이뤄지게 하는 장치를 미리 전제로 깔아뒀다. 이렇게 하면 은행들과 달리 선물환을 사들였다고 외화차입을 해야하는 상황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기구는 선물환 계약이 끝나면 반대 과정의 외화와 원화 간 포트폴리오 조정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수출업체가 수출 대금으로 받은 미국 달러화를 이 기구에 넘기면 이 기구는 한국 국채 등 원화 자산으로 돌려 놓은 자산을 매각해 수출업체에 돌려 주는 구조다.
◇ 기존 안정책 보완하고 세계경기 회복 후 수요급증 때 효자노릇 기대
수출업체가 나중에 선물환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는 선물환 계약 자체를 수출송장 금액의 일정비율로 묶어 두거나, 신용장을 선물환 계약의 담보로 잡아두는 방안 등이 제시됐다. 또한 환헤지와 직결되는 스왑거래와 관련해서는 외환안정기구가 기업이 환헤지를 주목적으로 행하는 거래 일부를 담당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 교수 등은 이 기구가 출범할 경우 기대되는 효과로 첫째, 선물환포지션 한도, 외환건전성 부담금 등 기존 규제로는 수출업체 실수요에 따른 거래가 급증할 때 대응하기 어려웠던 난점을 극복하는 등 기존 거시건전성 정책을 보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나중에 세계경기가 호전돼 조선업체 선박수주와 국내 투자가들이 해외투자를 급격히 늘리려 나서는 바람에 급격히 늘어날 헤지수요에 따른 시스템 리스크를 줄인다는 것이다. 부수적으로는 헤지 서비스만을 제공하는 기구가 가동되면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 환율을 조작하는 것 아니냐’며 수시로 날을 세우곤 하는 선진국 정부 등의 공세를 차단하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두번 째 큰 기대효과로는 모든 자산과 부채를 미 달러화로 평가하기 때문에 이 기구의 자본금이 환차익도 못 누리겠지만 환차손이 없어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봤다.
끝으로 금융시장을 통해 환 헤지를 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에게는 이 기구가 적극적으로 공공적 가치에 입각한 서비스를 제공해 고용창출력이 높은 중소기업의 성장을 도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제안이 어떻게 수용될지 주목된다.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