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감독당국이 나서면 따르겠다는 답변도 즉시 들을 수 있다. 정답은 없이 주어진 문제에 근사치를 적어 내면서도 실제 생각과 행동은 다르게 나타나는 상황이 반복되는 대한민국 금융계 생존책이 또 한 번 드러날 전망이다.
◇ 고정금리 대출 비중 10% 벽 언제 넘나
당국의 정책과 일선 금융계의 수용 결과 사이의 간극이 어떤 것인지 미리 보여 준 사례가 있다. 반년 전 온 금융계에는 가계부채 연착륙 대책이 엄습했다. 가계대출 증가율을 구체적 목표치로 직접 지도하는 일이 생긴 것을 포함해 예대율 규제 등 다양한 처방이 망라됐다.
여러 처방 가운데 총아라 할 만한 것 중 하나인 장기·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 확대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 고정금리대출 비중은 신규 취급 기준으로 하반기 급상승, 지난해 11월 30% 벽을 뚫으며 기세를 올렸으나 기력을 잃더니 지난 1월엔 28.00%로 떨어졌다. 잔액 기준 비중 10% 벽을 돌파하는 시기가 늦춰질 공산이 커졌다. 잔액기준 고정금리 대출 비중은 신규취급 때 20%대 후반까지 늘기 시작한 지난해 9월 8%대로 올라섰고 지난해 말엔 9.30%, 지난 1월엔 9.50%까지 늘었다.
상반기 말 7.30%였던 것에 비하면 반년 동안 3%포인트 늘었으니 당국의 주문이 제대로 이행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신규취급 대출에서 비중이 다시 줄고 있고 장기 고정금리 대출은 대세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쪽’ 신세라는 지적이 일반적이다. 한시적으로 장기고정금리 상품을 내놓았던 A은행 관계자는 “수요가 충분히 뒷받침된다면 상시 판매하는 상품을 내놓고 팔아야겠지만 고객들의 수요가 높지 않아 실제 수요에 응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관계자들은 경기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장기 고정금리 상품을 택하려는 발길은 더욱 위축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고정금리 상품 비중엔 허수도 적지 않다. 시작은 고정금리이지만 수년 뒤 변동금리로 갈아 타도록 하는 상품이라야 먹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 대출규모를 줄이면서 금융비용 완화, “답을 달라”
이런 가운데 서민금융 활성화를 겨냥한 정책 방향에 저신용층 대출 확대 카드가 등장하자 은행권의 표정은 더욱 갑갑하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은행권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가계대출 증가세가 지나치니까 낮춰야 한다는 정책 방향을 수용해 실제 증가세를 둔화시킨 바 있다. 더욱이 올해는 위험관리에 집중해야 하는 입장이라서 대출 자산을 적정수준 안에서만 늘리는 게 당연한 전략적 포지션이 됐다.
이 와중에 금융시장에선 은행 예대금리차가 갈수록 하향 안정화하는 양상이 이어지고 있다. 은행 가계대출 잔액기준 예대금리차는 지난해 5,6월 2.9%대 중반이었지만 꾸준히 떨어지면서 지난 1월엔 2.82%포인트로 줄었다.
신규취급액 기준으로는 지난해 5~6월 2.11%포인트였던 것이 등락을 거쳐 지난해 말 1.93%포인트까지 떨어졌다가 지난 1월 다시 2.05%포인트로 2%포인트 벽을 다시 넘었다. 전반적으로 대출 증가세를 억제하려니 취약층에 대한 금리를 올리게 되는 현상과 동시에 우량 등급 고객을 둘러싼 경쟁이 우량 고객 금리를 낮추는 경쟁으로 흐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B은행 한 간부는 “어차피 실적평가에 따라 성과급이 왔다 갔다 하는 처지에 놓인 은행원들이 평시에도 저신용층 대출을 취급하기 어려운데 경기가 나빠서 리스크관리가 강조되는 때에 오죽하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대출 취급에 보수적 방침을 내놓은 여신전략과 리스크관리 정책은 물론 여신심사 프로세스, 성과와 보상시스템 등을 완전히 바꿔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