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부결에 이어 지난 2일 미국 상원의 구제금융 수정안이 압도적 표차로 통과됐다는 소식에도 장중 국내 증시는 오히려 하락세로 돌아서 낙폭을 확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원의 재표결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경계심이 발동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관측이다. 특히 구제책의 의회 승인에도 불구하고 이는 불확실성의 해소로 이어지기 보다는 경기침체와 난항을 겪고 있는 미국 부동산 시장의 상처가 보다 부각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 경기침체 가속화에 더 민감 = 미국발 신용위기가 전세계 금융위기로 파급된 데 이어 실물경제로의 영향을 미치며 위축되고 있는 경기는 선진시장과 이머징마켓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다.
미국의 정치적인 요인으로 구제금융안 자체가 수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연일 끊이지 않고 시끄러운 월스트리트에 세계의 눈은 쏠렸다.
지난 2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20.02포인트(-1.39%) 하락한 1419.65로 마감했다. 코스닥지수도 전일대비 8.85포인트(-2.01%) 내린 432.10으로 거래를 마감했다. 코스피는 개장 초반 상승세를 보였지만 미국 의회 상원에서 구제금융안이 통과됐다는 소식 이후 하락세로 돌아섰다. 그만큼 구제금융 부결이 악재로는 작용하더라도 통과시 호재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
시장 관계자들은 상원의 통과가 이미 예견돼 있고, 하원의 정치적 변수 등이 부각되면서 오히려 불확실성이 증대된 것으로 풀이했다.
동양종금증권 이재만 연구원은 “구제금융법안은 최선의 선택일 뿐 최상의 선택은 아니다”라며 “과거 저축대부조합 사태 당시 부동산에만 국한됐던 데 비해 지금의 국면은 파생상품으로 정확한 부실 규모를 알기 어렵고, 글로벌 경기와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구제금융법안 통과가 국내 증시를 밀어올리는 재료로서는 부족하다는 것.
또한 각종 국내외 경기관련 지표들이 악화되는 모습이어서 미국 경기침체 우려가 보다 크게 작용했다. 구제금융안 통과에도 불구하고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계속 꼬리를 물고 있다.
상품투자 귀재로 널리 알려진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7000억달러의 구제금융법안은 경제 위기를 지연시키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이듬해 러시아 디폴트 선언을 예로 들며, 한국과 러시아처럼 어려움을 딛고 성장세를 기록한 것처럼 미국 역시 정부 개입보다 자연스런 치유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시장의 자정작용을 강조했다.
또한 구제금융안의 통과에도 불구하고 향후 정책 집행과정에서의 돌발 악재가 불거질 수도 있다는 점 또한 부담스런 요인이라는 설명이다. 구제금융의 의미가 금융시장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심리적인 도움을 주고 신용경색 여파를 얼만큼 해소할 수 있는지에 있지만, 경기둔화와 금융불안의 근본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는 미국 부동산시장의 회복이 당분간 어려워 보인다는 것이 구제금융 효과를 상당히 희석할 수 있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 국내 요인 불안감도 증폭 = 별 덕을 볼 수 없는 해외변수 이외에도 국내 사정도 악화일로다. 특히 국내 증시는 최근 프로그램 매매 패턴이 주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SK증권 원종혁 연구원은 “구제금융안 재료는 해결과정으로 가고 있음에도 큰폭의 추가상승을 이끌기 어렵고, 수급에 영향을 받는 국내 증시가 프로그램 변수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외환보유고 논란까지 불러일으키며 서울 외환시장의 불안한 모습 속에서 유동성 우려 등이 부각되고 있다.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220원대까지 치솟았다.
삼성증권 투자분석부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실물부문 전이가 가속화되고 있고, 국내 외화 및 원화 유동성 문제까지 부각되고 있어 자금시장의 경색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3분기 기업실적 악화와 부동산시장 위축, 수출둔화, 이에 따른 8개월 연속 무역수지 적자 등이 향후 전망을 밝게 보기에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대신증권 성진경 투자전략팀장은 “MSCI한국지수의 12개월 예상 주당순이익(EPS)은 지난 6월 말부터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어 실적 부진이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시중금리도 국고채 5년물 수익률 기준으로 5.7~6.2% 범위로 변동성이 증폭되고 있다. 미분양물량이 쌓여가는 부동산시장의 우려도 깊어가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 불안하기는 하지만 감내할 만한 수준이라는 데 위안을 삼고 있는 모습이다.
이같은 국내 경기 여건 악화로 이달 이후 물가를 비롯한 지표개선이 이뤄질지에 관심이 모아지며 시장 주변에서는 조기 정책금리 인하 기대감이 확산되고 있다.
배동호 기자 dhb@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