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관의 주총 의결권 행사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고려대학교 박경서 교수는 27일 ‘자산운용사의 의결권 행사 개선방안 공청회’에서 의결권 행사와 관련한 사전 공시제도를 폐지하고 관련 서비스 및 행사권을 대행할 위탁기관 설립 등을 제안했다.
◆ 경영권 방어 조항 반대 = 현행 간투법과 그 시행령상 자산운용사가 운용하고 있는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수탁자 책임에 의거 수익자 이익을 위해,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 원칙적으로 통용된다. 그러나 자산운용사와 펀드가 주식을 보유한 기업과의 계열화를 방지하기 위해 일정한 경우에 한해 섀도우 보팅(Shadow Voting)을 의무화하고 있다.
반면 주식을 발행한 법인의 합병, 영업 양수·도, 임원 임면, 정관변경 등 간접투자 재산의 명백한 손실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예외가 인정된다.
현행 의결권 공시대상법인은 간접투자기구 자산총액의 5% 혹은 10억원 이상을 보유하는 주식의 발행법인으로 명문화돼 있는 상태. 이들에 대한 의결권 행사 혹은 불행사시에는 그 사유를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박 교수는 “상법상 2주전으로 돼 있는 주총 소집통지기간도 기관들의 의안 분석과 숙려기간을 위해 좀더 충분한 기간이 주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 교수의 개선안에는 의결권 행사 지침 내용으로 집중투표제, 황금낙하산제, 초다수결의제, 시차임기제 등 경영권 방어조항에 대한 원칙적 반대를 포함하고 있다. 일정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주요주주들의 경영감시 기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달 말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전자의 IR담당 주우식 부사장이 창립 10주년째를 맞은 미래에셋 박현주닫기

국내에서 미국의 30년대 ‘월스트리트 룰’과 같이 주주권보다는 투자기업 주식에 대한 매각 방식을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박 교수는 “미국에 비해 높은 거래회전율(2004년 14.2배, 2005년 6.55배)과 수탁자 책임에 대한 인식 부족 때문”이라며 “현재 대부분의 의결권 행사도 공시대상법인 등과 같이 법에 의해 강제되고 있는 항목에 한정돼 있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려해도 의안분석 서비스 제공 등과 같은 의결권 행사 업무지원이 부족하고 행사 가이드라인이 명확치 않은 점도 주요인”이라고 설명했다.
◆ 사전공시 폐지 갑론을박 = 박 교수는 “현행 규정상 코스피 또는 코스닥시장을 통해 행사하고자 하는 의결권 내용을 주주총회일 5일전까지 사전 공시해야 하는데, 의결권 행사 내용의 사전 공시 내용에 따라 운용사는 외압에 노출될 개연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그는 “현행 공시제도를 폐지하고 영업보고서를 통한 사후 공시만 하도록 하되 이를 운용사, 자산운용협회, 감독기관의 홈페이지 등에 전자공시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이에 대해 김지원 피델리티자산운용 상무는 “사전공시 폐지에는 공감한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해외투자 대상기업에 대한 의결권 행사 내용이 운용보고서 22페이지에서 9페이지 가량을 차지한다”며 “그러나 운용사와 고객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지는 짚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김선웅 소장은 고객 자산의 운용을 통해 수익률을 극대화해야하는 운용사의 의결권 행사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자 의무라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의결권 행사에 대한 외부 아웃소싱을 주장한 박경서 교수의 제안에 대해서도 이견이 노출됐다. 박경서 교수는 “자산운용사가 투자회사와 이해상충 관계에 놓이다 보니, 독립성을 가지고 의결권을 행사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선 의결권 행사를 대행해주는 기관 및 관련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토론에 나선 패널들은 독립성 확보에는 공감하면서도 위탁기관 도입 문제에 대해서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었다.
중앙대학교 신인석 재무금융경영학과 교수는 “미국도 위탁기관에 의결권 행사를 맡기는 것은 연기금들 위주”라고 지적했고,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영태 전무도 “기관투자가의 평균 주식보유 기간이 19개월에 그치는 상황에서 장기보유가 먼저 전제돼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황인학 상무는 “운용사의 의결권 행사는 자발적으로 행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외부기관에서 가이드라인 혹은 지침을 만들어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일축했다.
배동호 기자 dhb@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