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동네 축구 방식 하에서 선수 개개인들은 관중들의 환호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현란한 개인기를 닦으려는 노력을 등한시 하게 된다. 공을 잡자마자 사방에서 달려들어 몸을 움직이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현란한 개인기가 발휘될 수 있는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상대편 선수들이 사방에서 달려들기 전에 공을 질러 놓고 먼저 달려가 공을 다시 잡는 능력이 우수 선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달리기 속도와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체력이 우수 선수를 가름하는 핵심 경쟁력이다.
동네 축구에서는 팀의 입장에서도 그림 같은 골을 만들어 내는 섬세한 전술을 개발해야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 상대팀이 우격다짐으로 나오는 상황에서는 전술을 개발해봐야 먹히지가 않기 때문이다. 고스톱이나 포커를 치더라도 상대방이 뭘 알아야 전술이 의미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의 경기방식은 동네 축구를 벗어나지 못했다. 국제 대회에 나가면 그날 경기장에서 죽는다는 각오로 혼신을 다해 온 경기장을 뛰어다니면서 상대편과 몸싸움을 해대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던 우리 대표팀의 경기방식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월드컵 4강에 올라가는 과정에서 보여준 경기 하나 하나가 모두 수준급이었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히딩크라는 우수한 감독을 영입한 것이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요인은 월드컵 경기 몇 년 전에 우리나라에 프로리그가 도입된 데에 있다고 보여 진다.
프로 리그의 도입은 선수와 팀에게 전혀 새로운 환경을 조성하였다. 우선 선수들의 입장에서 시즌기간 동안 수많은 경기를 치러야 하고 시즌은 내년, 내후년에도 계속되므로 매 경기는 수 없이 반복되는 경기 중의 하나일 뿐이다. 동네 축구 스타일로 매 경기를 치른다는 것이 결코 최적의 반응이 아니다. 밀착 방어의 정도가 이완되고 개인기를 발휘할 여지가 생긴다.
팀의 입장에서도 경기방식의 변화 필요성을 크게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동네 축구로는 관중 동원이 불가능하다. 관중을 끌어들일 수 있는 그림 같은 골과 스타플레이어가 나와야한다. 그림 같은 골을 엮어내는 전술이 필요하다. 전술을 실행할 수 있는 개인기와 조직력을 개발해야할 필요성을 느낀다. 체력도 중요하나 개인기가 탁월한지와 팀플레이에 공헌할 수 있는 지 여부가 우수 선수의 판정기준이 된다. 어느 한 경기, 한 시즌의 승부에 집착해서 비싼 가치를 가지는 스타플레이어에게 부상을 입힐 수 있는 무리한 전술을 구사하는 것을 자제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금융회사들의 경영방식을 보면 동네 축구를 연상하게 하는 요소가 다분하다. 장이 열릴 때마다 회사 전체가 전력을 다해 우르르 몰려다닌다. 가계대출에서 부동산 담보대출로, 또 최근에는 중소기업대출로 몰려다닌다.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키우지 않으면 죽는다는 식의 인식이 유행병처럼 퍼져 있다.
조직 구성원들의 피로 도를 감안하지 않고 항상 전력을 다해 뛰어다닐 것을 요구한다. 항상 바쁘고 여유가 없으나 제살 깎아 먹기 식 경쟁으로 수익이 크지 않고 부실 위험이 상존한다. 그림 같은 성공 사례를 만들기 위한 전술과 팀플레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조직원들의 개인기를 키우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내년 시즌의 우승을 위해 금년 시즌을 포기하기도 하는 전략이 부족하다.
프로처럼 움직여야 할 우리나라의 금융회사들은 왜 이런 동네 축구 식 행태를 보이는 것일까. 무엇이 우리 금융회사들로 하여금 마치 오늘이 있을 뿐 내일은 없다라는 생각에서나 나올 법한 경영방식을 요구하는 것일까. 무엇이 우리 금융회사의 최고 경영자들로 하여금 내년, 내후년에도 시즌은 지속된다는 생각을 접고 금년 시즌에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의 편집증적 집착을 가지게 하는 것인가. 무엇 때문에 최고 경영자의 그러한 집착이 조직 내부에서 견제되지 못하고 회사 전체로 순식간에 파급되는 것인가.
우리 금융을 동네 금융에서 프로 금융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서는 프로 축구 리그와 구단의 경영을 연구해야 할지도 모르는 심각한 상황이다.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