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국제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다드 앤 푸어스(S&P)는 제너럴 모터스(GM)과 포드의 회사채 신용등급을 정크 본드(투자부적격 채권) 수준으로 떨어뜨렸습니다. 사실 이때만 해도 그 파장을 실감하기 어려웠습니다. 각종 복지비용과 매출부진으로 미국의 대표기업도 곤란을 겪는구나 하는 정도였지요.
그럼 어떻게 해서 `GM 쇼크`가 `헤지펀드 위기설`로 확장됐을까요. GM은 세계 1위 자동차 회사이면서 동시에 회사채 발행 규모면에서 미국 최대를 자랑합니다. S&P가 지난주 GM과 포드의 회사채 등급을 하향조정하면서 4500억달러의 회사채가 정크본드로 전락했습니다.
헤지펀드는 다양한 투자수단을 동원해서 높은 투자수익률을 거두는 펀드를 말합니다. 4년전 4000억달러에 불과했던 세계 헤지펀드 자산규모는 현재 1조달러를 넘어설 정도로 급성장했습니다.
헤지펀드에 이처럼 많은 돈이 몰리게 된 배경은 단순합니다. 연 10%가 넘는 고수익을 보장해 준다는 얘기가 투자자들 사이에 널리 퍼졌기 때문입니다. GM같은 부실기업이 발생한 회사채도 헤지펀드가 애호하는 투자대상 중 하나입니다. 정크본드는 하이일드 본드(high yield bond)라고도 불립니다. 위험이 높은 만큼 수익률도 높다는 의미지요. 지난해 일부 헤지펀드들은 부실 회사채와 연계한 파생상품에 투자해 20~30%대의 고수익을 올렸습니다.
지난해 큰 돈을 벌었던 헤지펀드들은 이번에도 GM과 포드가 발행한 회사채를 싼맛에 대거 사들였습니다. 그런데 바닥이라고 생각하고 산 GM과 포드의 회사채 가격이 S&P의 신용등급 강등으로 급락해버렸습니다.
헤지펀드들은 수익률 방어차원에서 회사채를 사면서 동시에 주식 하락에 베팅하곤 합니다. 채권가격 상승으로 이익을 챙기면서 동시에 공매도 등의 기법을 동원, 주가 하락에서도 이익을 내겠다는 계산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계산은 S&P가 GM과 포드의 신용등급을 하락하기 바로 전날 한 억만장자가 GM 주식 공개매수를 선언하면서 뒤틀려버렸습니다. GM 주가는 급반등하면서 공매도 세력의 뒤통수를 쳤고, 바로 다음날 채권 가격은 급락했습니다.
이 정도가 지난 10일 뉴욕증시에서 퍼진 `헤지펀드 위기설`의 개괄적 내용입니다.
그런데 `헤지펀드 위기설`이 시장에 노출된 것은 이날 하루뿐입니다. 국내 금융권의 GM 관련 회사채 보유규모도 1200억원 정도로 걱정할 정도가 아니라고 합니다.
문제는 헤지펀드에서 고수익과 고위험은 공존할 수 밖에 없고, 다소 수그러들긴 했지만 헤지펀드를 둘러싼 불안감은 여전히 잠복돼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영국의 대형 헤지펀드들은 지난달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최근 발생한 `GM 쇼크`를 반영하지 않았는데도 수개월째 손실이 이어진 것입니다. 5월 수익률이 나아질 것이라고 자신할 만한 근거도 없습니다. 이 때문에 헤지펀드 고객들의 환매 요청이 이어져 펀드 자산 매각이 잇따르는 `5월 위기설`이 나돌고 있습니다. S&P에 이어 무디스도 포드의 신용등급을 낮췄습니다.
아직까지 파산을 신청한 헤지펀드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역시 `아직까지` 없다는 것일 뿐, 사태가 진행되면서 파산을 신청하는 펀드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헤지펀드의 경우 그 속성상 공개된 것보다 공개되지 않은 게 더 많습니다.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시장 리스크를 줄인다는 측면에서 파생상품 옹호론자입니다. 그런데 최근 파생상품에 대해 시장의 검증이 필요하다면서 조심스런 입장을 개진했습니다. 독일에서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헤지펀드에 대한 통제를 지시했다고 합니다. `투자의 귀재`라는 워렌 버핏은 파생상품을 `시한폭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만큼 위험이 크다는 의미지요.
<이데일리 제공>
파생상품은 투자위험을 적절히 분산함과 동시에 또 다른 투자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현대 금융시장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투자위험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을 경우 금융시장의 폭탄으로 돌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롱텀캐피탈이나 대우채 등에서 위험 대가를 충분히 경험해왔습니다. 위기를 부풀릴 필요도 없지만, 모른체 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같은 이유때문입니다.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