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초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화폐단위 변경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하자 "화폐단위 변경을 논의할만큼 한가롭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던 것을 감안하면 화폐개혁과 관련한 정부의 입장이 변화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아직 본격적인 논의시점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화폐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했고 구체적인 검토단계에 진입한 상황이라면 예상외로 논의시기가 앞당겨질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다만 최근 부진한 경제상황과 함께 화폐단위 변경으로 인한 비용 등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부총리가 고액권 발행보다 화폐단위 변경을 통한 화폐개혁 입장을 밝혔음에도 시기에 대한 언급을 자제한 것도 이같은 요인들 때문이란 해석이 가능한 상황이다.
◇이 부총리 "화폐단위변경 구체검토 초기단계"
이헌재 부총리는 이날 국회 예결위에서 박병석 의원이 "화폐단위 변경에 대해 정부는 어느 단계에 와있느냐"고 묻자 "연구검토 단계를 지나서 구체적인 검토의 초기단계에 와 있다"고 답했다.
이 부총리는 "화폐단위 변경의 경우 최단 3년, 최장 5년의 기간이 걸린다"며 "언제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하느냐 여부는 지금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고액권을 발행해도 4, 5년 후에는 다시 화폐단위 변경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며 "당장 경제적 비용이 들더라도 고액권 발행은 참는 것이 좋고, 근본적인 화폐단위 변경을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화폐단위 변경은 고액권 발행보다는 국민적 정서에 부합하고, 우리 경제 크기에 맞춰 화폐단위를 적절한 수준으로 가져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밝혔다.
논의시점을 못박기는 힘들겠지만 최근 제기되고 있는 10만원권 발행 등 고액권 발행보다는 화폐단위 변경이 옳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상황에 따라 본격적인 논의시기를 앞당길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경기부진·소요비용 등 난제는 `부담`
문제는 화폐단위 변경의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최근 상황이 이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기에는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국제유가와 테러 등 대외변수들이 여전히 불안한 모습이고 국내경기도 소비와 투자가 위축된 상황에서 물가나 실업률 등이 개선조짐를 보이지 못하면서 연 5% 성장에 대한 비관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화폐단위 변경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그에 소요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현재 상황에서 화폐개혁이란 카드를 꺼내들기엔 부담스럽지 않겠냐는 관측이다.
이 부총리도 오늘 답변에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있고, 자기 자산가치에 대한 상실감과 같은 심리적, 정서적 거부감을 부인하기 어렵다"며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국민적 논의를 충분히 거쳐야만 화폐제도 개선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심리적으로는 과거와 같이 예금을 동결하거나 화폐단위 변경 이외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며 "따라서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우리나라 경제규모와 성장추세를 볼때 4~5년후 지금의 `조`단위가 아닌 `경`단위까지 도입해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현실적으로 화폐단위 변경의 필요성을 부인하긴 어렵다. 이 부총리가 이날 고액권 발행보다 화폐단위 변경에 힘을 실은 것도 이같은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4~5년후 지금의 화폐단위는 한계치에 이를 전망이다. 또 화폐단위 변경이 최단 3년, 최장 5년의 기간이 걸린다면 내년쯤에는 본격적인 논의와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는 결론이 다다른다.
결국 최근 부진한 국내경기가 어느시점에서 회복세를 보여줄지가 화폐개혁작업 속도를 좌우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데일리 제공)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