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 총재는 지난 1월 “고액권 발행과 위폐 방지, 디노미네이션 등 화폐 선진화 방안을 총선 후 정부와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당시 김진표 부총리가 고액권 발행에는 찬성한 반면 디노미네이션에는 반대해 디노미네이션은 물 건너갔다는 관측이 우세했었다.
그러나 한은 고위 관계자는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정책실장도 모두 바뀌는 등 상황이 바뀌었다”면서 디노미네이션 재추진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디노미네이션을 할 경우 액면절하 비율은 결정되지 않았으나, 한은 고위 관계자는 “OECD 가입 국가들의 대(對)달러 환율은 대개 한 자릿수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1000분의 1을 유력하게 검토 중임을 시사했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또 “디노미네이션을 한다니까 과거 화폐개혁을 연상해 겁내는 사람이 많지만, 옛 화폐를 새 화폐와 일정 기간 함께 사용하고 익명으로 교환할 수 있으며, 교환 기간이 지난 뒤에도 한국은행에 오면 계속 교환해줄 계획이므로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내년 1월부터 화폐단위를 100만분의 1로 변경할 예정인 터키의 경우도 1년간 옛 화폐와 새 화폐를 병용하고, 그 뒤에도 10년 동안 중앙은행 본·지점에서 옛 화폐를 새 화폐로 교환해주기로 했다.
한은은 디노미네이션이 필요한 이유로 거래가 편리해지고 회계 장부의 기장 처리도 간편화되며 특히 원화의 대외적 위상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꼽고 있다. 숫자 ‘0’을 세자리 덜 쓰는 편리함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수십년간 온 국민의 문제라면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은은 특히 10만원권 등 고액권 발행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높은 데다 날로 지능화해 가는 지폐 위조를 막기 위해 어차피 새 화폐 발행이 필요한 만큼 디노미네이션까지 한번에 추진해 ‘세 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지난 1월 김진표 전 부총리는 “디노미네이션을 하면 돈 있는 사람들이 돈을 실물로 바꾸려고 하는 등 경제에 상당한 충격을 줄 소지가 있고, 물가를 상승시킬 것”이라며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었다. 전문가들은 또 디노미네이션의 부작용으로 ▲상인들이 우수리를 떼고 가격 표시를 함으로써 발생하는 물가 상승 ▲컴퓨터 시스템과 현금자동지급기, 자동판매기 등의 대체에 따른 적지않은 비용 부담 등을 꼽고 있다.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