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10일 정부는 신용불량자 특히 다중채무자 구제방안의 일환으로 배드뱅크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현재 다중채무로 금융기관에 신용불량자로 등재된 숫자는 약 235만여명. 정부는 이들 다중채무자 중 6개월 이상 5000만원 미만 채무자 140만여명중 3분의 1인 40만명을 배드뱅크를 통해 구제한다는 계획이다.
제2금융권에서도 카드사와 상호저축은행이 배드뱅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결정했지만 그 운영안을 놓고 업계의 희비가 교차하고 있다.
현재 운영안 예시에 따르면 배드뱅크 협약 금융기관들은 현금수취예상액 8%(채무자 상환 3%, 자산관리공사 출자액 5%)와 출자지분 평가액 10% 등 채권총액의 18%를 돌려받게 된다.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은 현금수취예상액과 배드뱅크 출자지분 평가액. 카드사는 순익이 늘어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저축은행은 약 3100여억원의 대손충당금을 6월말 결산까지 적립해야 한다.
카드사는 이미 배드뱅크 가입대상인 6개월이상 연체자 채권에 대해 대손충당금을 적립해 놓은 상태이다.
LG카드는 지난해 실사결과 드러난 3조2000억원의 부실을 전액 재무제표에 반영하면서 거의 대부분 대손충당금으로 적립했고, 외환·우리카드는 모은행으로의 합병 이전에 보수적으로 충당금을 쌓았다.
카드사들이 대손충당금을 보수적으로 적립하는 이유는 재무건전성 확보에 있다. 대손충당금을 적립하면서 생기는 실적손실보다는 건전성이 더욱 절실하기 때문이다.
신용카드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미 신용불량자가 400만명에 육박하는 수준에서 연체채권을 가지고 있어봐야 더 나아질게 없다”며 “모든 카드사들이 연체채권에 대해서는 보수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배드뱅크 운영예시안을 적용하게 되면 카드사들은 실질적으로 18%의 대손충당금 환입으로 순익이 늘어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저축은행은 배드뱅크 운영안이 현안대로 진행된다면 대손상각처리로 인해 재무구조에 악영향을 받게 된다.
저축은행은 현재 소액신용대출의 경우 3개월 이상 6개월미만 연체채권에 대해 7%, 6개월이상 연체분에 대해서는 75%의 대손충당금을 적립하고 있다.
현 배드뱅크 운영안대로라면 저축은행은 현금수취 예상액 8%와 출자지분 평가액 10%를 제외한 채권총액의 82%를 대손충당금으로 적립해야 한다. 이에 현재 일반대출의 경우 20%를 적립하고 있는 저축은행은 실질적으로는 62%의 대손충당금을 추가로 적립해야 한다.
이는 6개월이상 연체채권액이 5000여억원인점을 감안할 때 3100억원의 추가 손실을 입게 되는 것이다.
또한 배드뱅크 신청 채무자가 시중은행에 6개월이상 연체가 있다면 저축은행의 6개월 미만 연체채권까지 이에 포함되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특히 이러한 추가손실을 오는 6월말 결산에 반영해야 하는 저축은행으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저축은행업계 관계자는 “당초 저축은행의 상황을 고려해 대손충당금 적립기준을 완화해 적용했는데 이제와서 거대 금융권들과 동일한 기준으로 적용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아무리 취지가 좋다고 해도 손해를 보면서 참여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저축은행업계는 지난 17일 서울지부에서 실장급 30여명이 모여 대책방안 마련에 나섰다.
또 18일에는 여의도 소재 LG투자증권에서 열린 ‘배드뱅크 설립을 통한 개인신용회복 프로그램 설명회’에서 자문사인 LG투자증권에 현재 저축은행의 상황을 설명했다. 이날 설명회에 참가한 저축은행업계 50여명은 배드뱅크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배드뱅크 출자지분에 대한 평가는 유예해 줄 것을 건의했다. 10%의 예시안이 있지만 실제적으로 평가액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 저축은행업계의 주장이다. 만약 출자지분을 평가하게 된다면 NPL(부실채권)방식으로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또한 6개월미만 연체채권의 대손충당금 적립기준도 신용회복위원회와 같이 7%로 적용해 줄 것을 건의하고, 대손충당금을 지난해 수준까지 계속 적립하겠다고 밝혔다.
저축은행업계 관계자는 “현재 저축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연체채권을 단순히 부실채권으로 평가해서는 안된다”며 “실질적으로 이러한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실채권으로 일괄평가한다면 저축은행 입장에서는 배드뱅크 참여가 스스로 손실을 키우는 꼴”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저축은행들이 운영안 개정 건의를 통해 이익을 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예전 수준의 대손충당금을 적립할 것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저축은행의 입장에 자문사인 LG투자증권과 재경부도 현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LG투자증권 관계자는 “저축은행이 공기업도 아닌데 손실을 감내하면서까지 배드뱅크에 참여하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대손충당금 적립기준>
안영훈 기자 anpress@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