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꿈이 있었지만 지금은 내 품에 있는 저 아이들과 오래오래 같이 살고 싶은 것이 유일한 소망이다.”
지난 14년동안 뇌성마비자, 정신지체아, 자폐아 등 갈 곳 없는 중증 장애아들을 거둬 부양해 온 장은경 장호원신협 조합원(40세·사진)의 작은 꿈이다. 사실 장은경 조합원 자신도 몸이 편치는 않다. 어릴적 소아마비로 하반신을 쓸수 없는 1급 휠체어 장애인이기 때문.
지금에야 ‘작은 평화의 집’에서 15명의 장애아들과 가족을 이뤄 살고 있지만 처음 장 조합원이 장애아들을 부양하고자 했을 때 가족들의 반대와 주변의 무관심은 거대한 장벽으로 다가왔다.
이러한 반대도 ‘소외된 이들을 위한 삶을 살고 싶다’는 그의 굳은 결심을 깨지는 못했다.
‘소리방’이라는 레코드점을 운영하면서 조금씩 모은 돈과 은행에서 대출받은 1500만원을 합쳐 지난 91년 작은 평화의 집에서 아이들과의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3년도 되지 않아 ‘집터를 내어달라’는 땅 주인의 요구에 장 조합원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소리방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모든 재정을 부담하기에도 역부족인 상태에서 당장에 땅을 구입할 만한 자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봉사활동에 감동한 것인지 처음엔 그토록 반대했던 아버지의 도움으로 양지바른 땅 1700여 평을 장만할 수 있었다.
또한 봉사활동이 지역에 알려지면서 지역인사들이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 건축에 필요한 절차와 설계를 대행해 줬다. 지역건축업체도 건축비를 월별로 분활상환하는 조건으로 미리 집을 지어주기도 했다.
가족들과 주변의 도움으로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할 무렵 또다른 문제가 벌어졌다.
바로 주수입원이던 소리방의 수입이 점점 줄어든 것이다. 그는 소리방을 서점으로 업종변경했지만 얼마 못가서 그마저도 그만두어야 할 처지에 이르렀다. 근육병을 앓고 있던 아이의 병세가 악화돼 병간호를 하느냐 자리를 비우는 날이 많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그의 사정을 딱하게 여겨 후원회를 조직하라고 권유했지만 장 조합원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후원회를 조직하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돈에 대한 욕심이 생길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작은 평화의 집은 주변 봉사단체등에서 비정기적으로 도움을 받아 운영하고 있지만 어려움은 많다.
하지만 장 조합원이 지난 14년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금전적 어려움이 아니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같이 지내던 아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는 장 조합원의 말에서 이시대 진정한 천사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안영훈 기자 anpress@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