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야마이치 증권 … 참회의 눈물
국내 은행 … 스톡옵션까지
현대의 경제제도하에서 한 기업의 경영이 더 이상 지탱할 수 없게 되어, 다른 새로운 기업의 지배 하로 이양되는 것은 구태여 시장원리주의라고까지 할 것도 없이, 자본주의를 유지하는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본령이다. 이는 누구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분명한 공리요, 당해 기업의 생존을 향한 경영 효율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대안으로 상정되는 것 또한 흔한 일이 되어 일반적인 현상이 된지 이미 오래다.
근년에 들어와, 경제 위기를 겪으며, 동양적 기업 윤리와 사회 통념에 젖어 현실 안주적인 경영을 답습해왔던 각개 산업, 각개 기업들이 적자생존, 우승열패의 엄정한 자본주의 논리를 몸소 뼈아프게 겪으며 재편되거나 사라져 간 숱한 사례들이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나아가, 자본주의가 실용화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질서와 행동 양식에 아무런 의도적인 제한이나 일방적인 선택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담보가 있어야 비로소 그 원초적인 효율성이 보장된다 할 것이다.
소위 IMF 금융 위기 이전의 우리나라 기업 경영 관행이란 “이미 있어 온 것은 그저 지켜간다”는 지극히 타성적이요, 어느 의미에서는 무책임한 것이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효율성을 잃어버린 금융기관을 권력의 힘으로 납세자의 부담을 빌어 구제한다거나, 벌써 절단났을 기업을 시장 체제의 보호라는 미명하에 지원을 계속하는 관행은, 대의적으로는 앞서 말한 엄정한 경쟁 원리를 거스르는 것이며 시대의 조류에 역행하는 것이 될 것이다. 퇴장해야 할 기업을 구제하여 영원히 고용을 지킬 수만 있다면야 자본주의만큼 편안한 장사가 이 세상 어디에 다시 있을 것인가.
어느 의미에서는, 기업의 파탄과 시장으로부터의 퇴출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지혜와 경영학이 여실히 표출되는 것이고, 이는 실로 경제 성장과 발전을 위해 걸어가야 할 주어진 진로요 겪어야 할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과거의 중앙 통제적, 하향지령식 경제체제에 익숙해 온, 관제자본주의의 영광을 흠모하는 관성적인 추종자들에게는 이러한 ‘비정한’ 기업 운명을 감성적인 것으로 받아드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하여, 혹자는 현대 경제의 논리를 ‘암울’하다고 하기도 하고, 혹은 성악설의 산물이라고 냉소하기도 했던 것인가?
우리나라 은행들도 예외로 머물 수는 없어, 거의 선단적으로 위기의 파장을 겪어 왔고, 그 과정에서 몇몇 외국계 자본들이 우리의 전통 은행들의 지분을 확보하거나 경영권을 양수해 간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오늘날과 같은 세계화의 조류 속에서 국내 자본이건 외국계 자본이건 굳이 가릴 것도 아니고, 어차피 차별을 두기도 어려운 실정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명분도 다양해서 선진 금융 기법을 전수받는다고도 하고, 혹은 월등한 자본력에 큰 기대를 하기도 한다. 하나, 실제로 소위 무슨 펀드니 하는 외국계 자본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선진 금융 기법을 전수받고 있는지, 또는 얼마나 많은 거대 자본력의 후원을 받고 있는 지는 아직 밖으로 알려진 바가 별무하여 가늠할 길이 없어 논외로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철저히 지적하지 않으면 안될 것은 이러한 피치 못할 경영권의 양도를 포함한 소위 경영합작이라든가 외자유치라든가 하는 과정에서, 과연 얼마나 투명한 협상 과정을 밟아, 기업 정체성의 대의를 살리려 노력해 왔고, 얼마나 실리적인 협상 결과를 도출해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이 점이 간과되어서 안되는 이유는 다름아니라, 이러한 요인들이 곧 현 경영층의 도덕 및 윤리성의 평가와 직결된 문제이고, 이것이 바로 그 은행을 경영파탄으로 몰고 갔을 부인할 수 없는 큰 요인의 하나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는 한 극적이라 할만한 장면을 떠올리고 싶다. 이미 수 년 전의 일로, 이웃 일본의 유수한 증권사였던 야마이치(山一)증권이 경영파탄을 맞게 되어 미국계 증권사로 넘어갈 당시, 전 경영층이 일본 국민들 앞에 엎드려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모든 경영실패의 책임을 자신들의 것이라 자인하고 새로이 경영을 맡게 된 미국계 경영진들에게, 남겨놓고 떠나는 동료 직원들의 앞날을 될 수 있는 한 보살펴 달라고 애절하게 읍소하던 장면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기업 회생에 회부되는 한 전통 산업의 경영층이 마지막 경영회의에서 자신들의 퇴직 급여 전액을 포기하기로 결의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물론 마찬가지로 일본의 예이다.
일전에, 나름대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국제금융전문 은행이라고 자처해온 한 은행이 미국계 투자 펀드에 경영권이 양도되노라고 발표하는 기자 회견이 있었다. 앞서 말한 대로 지분 및 경영권의 양도 그 자체에 대해, 매판자본이라느니, 경제주권의 포기라느니 또는 은행 산업의 외국 자본에의 종속이라느니 하는 전근대적인 논리로 구차하게 시시비비할 의도는 추호도 없다. 허나, 굳이 경제적인 게임 논리를 들먹을 필요도 없이 한 기업의 경영권의 양도는 분명히 총체적인 최악의 경영 실패요, 응당 이에 따른 사후책임(accountability)은 필연적인 것이라 해서 하등의 반론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사실을 발표하는 동 은행의 현 경영층은 일언반구 자신들의 경영 실패에는 사죄의 언급도 없이, 오히려 은행 경영권의 양도가 무슨 자랑스런 공적인 양, 마치 개선장군의 득의 만만한 기세로 흥분하는 행동은 과연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가. 솔직히 깊은 충격을 받은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 뿐인가. 며칠이 지나지도 않아 퇴임하는 이사회 임원들에게 무슨 공적에 대한 보상인지, 향후 무엇을 기대하는 유인인지 도저히 알 수도 없는 스톡 옵션을 듬뿍듬뿍 부여하기로 결의했다는 보도도 있고 보니, 실로 어안이 벙벙하다 못해 실소를 금치 못한 경우도 있었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이러한 경영 마인드를 가지고 그렇게 어려운 협상을 진행해온 것이라면, 그 결과 나타난 여러 문제점들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라 하여 어찌 반론할 수 있을 것인가?
불문가지 이 은행의 앞날에는 실로 엄청난 구조조정이 휘몰아칠 것이 분명하고, 그 결과란 하층 직원들의 대량의 정리해고가 최우선 메뉴일 것은 익히 겪어 온 관례이기도 하다. 한 구석에는 직원들에 대한 소위 명퇴금이 후해질 것이라는 기대로 다소 무마될 것이라는 계산도 있다는 얘기인 모양이다.
그러나, 아무리 몇 푼 더 쥐어 준다 한 들, 길게는 수 십 년 간을 지켜 온 그들의 조직에 대한 애착심에서 오는 허탈감을 어떻게 달랠 것이며, 그 은행을 거쳐간 수많은 OB들의 무상함은 무엇으로 위무할 것이며, 무엇보다도 그 은행을 사랑해 온 수 많은 고객들의 배신감은 어떻게 보상할 수 있을 것인가? 이들의 가슴 속을 단 한 낱이라도 헤아릴 줄을 알았다면, 어떻게 그렇게도 염치없는 행동들을 감히 자행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도저히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일찍이 고전적 경제학자 한 분이 경제학이란 ‘도덕과 윤리의 학문’이라고, 일견 아이러니한 정의를 하고 있다. 되새겨 보면 일반적인 경제 현상이, 그리하여 기업의 경영 행태도, 근본적으로는 근저에 도덕과 윤리가 바탕을 이뤄야 한다는 경구가 아닌가 싶다.
부디 새로이 은행 경영을 맡게 될 경영 주체가, 실은 은행도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청결한 도덕성과 투철한 윤리관에 바탕을 둔 조직 문화의 조성 및 향상이 불가결한 경영의 요제임을 절실하게 인식할 것을 충고하고 싶다. 자국인 미국에서 Enron 사태를 발단으로 하여 잇단 기업 경영 스캔들 이후, 정부 당국이 추진한 최우선의 조치가 기업 경영자들의 윤리성 회복 장치였던 점은 이를 잘 시사하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Sarbanes-Oxley법의 주요 내용이 기업 최고 경영자들의 방만한 경영 행태의 견제 및 기업 경영의 투명성 보장이라는 점도 참고가 될 것으로 본다.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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