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 원화 움직임 예의 주시
최근들어 미국이 달러 약세를 용인할 제스추어를 쓰자 이의 파장을 막기 위해 일본과 유로가 엔화와 유로화의 약세를 고수하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세계는 점점 통화 전쟁의 가시권으로 접어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세계 기축통화권인 이들 지역이 앞 다투어 자국 통화약세를 고수하고 있는 것은 수출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으로 디플레이션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우리나라도 이런 대열에서 예외는 아니다. 지난달 외환시장을 효과적으로 관리한 덕분으로 무역수지 흑자를 이룰 수 있었으나 늘어가는 악재 속에서 앞으로도 이런 기조가 이어질지는 미지수인 것이다. 당연히 환율의 동향에 민감해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번의 통화긴장은 일차적으로 미국이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존 스노우 미 재무장관은 최근 방송에 출연하여 “달러약세는 수출업자들에게 도움이 된다”며 “수출업체들이 달러약세로 인해 점점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과거 “강한 달러에 대한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발언 형식적이나마 `강달러` 정책을 천명하던 것과는 상당히 달라진 모습이다.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도 지난달 말 미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에 출석하여 “미국 경제는 회복 중이나 그 시기와 폭은 불확실하다”고 말해 달러 약세를 부추겼고, 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에서는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인플레이션 가능성보다 높다고 지적했다. 이런 발언으로 인해 이달 초까지 118~119엔대를 맴돌던 달러/엔 환율은 한때 116엔대로 떨어졌다.
일본의 디플레이션 완화를 위해 달러 당 120엔대 유지를 원했던 일본 당국은 이런 미국의 입장 변화에 대해 상당히 신경질적이고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재무 당국자의 잇따른 개입으로 달러/엔 하락 저지에 나서던 일본은 지난 7일 달러/엔이 115엔대를 하회할 것으로 보이자 일본계 은행을 통해 대거 달러매수에 나서기도 했다. 미조구치 일본 재무성 차관은 지난 12일에도 “경제 펀더멘탈상 엔화가 강세를 보일 이유가 없다”며 “외환시장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필요하다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했다.
사태가 이렇게 돌아가자 그동안 환율 움직임을 방관하던 유럽 지역도 유로/달러 상승세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자 우려감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라파랭 프랑스 총리가 “유로/달러 환율이 유로지역 경제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라파랭 총리는 “유럽중앙은행은 금리결정에서 경제성장과 고용을 감안해야만 한다”며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동결을 비판했다.
이들 선진국들이 이처럼 자국 통화 약세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경기부양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금리나 재정 정책이 모두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경제를 살리기 위해 구사할 수 있는 세 가지 정책인 금리, 재정, 환률 정책 중 남은 것은 환율 정책 밖에 없다는 것이 이들 나라 재무 담당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미국은 쌍둥이 적자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며 현재 금리는 1.25%로 최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일본도 현재 금리가 제로 수준인 상황이다. 결국 디플레이션을 피하기 위해서는 환율정책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우리도 강대국들의 통화 약세 경쟁에 끼어 도태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달 무역수지가 10억1000만 달러 흑자로 4개월 만에 흑자반전 했으나 이는 다분히 유가하락과 엔/원 등 환율 상승에 힘입은 것이다. 그러나 이달 들어 무역수지가 다시 10억불 가까이 적자를 기록하고 있어 당국이 긴장하고 있다. 지난 13일 금통위가 일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금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경제에 관한한 악재가 산적해 있는 지금 우리나라는 어느 때보다도 환율 변동에 민감해지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다.
한때 일본 외환 정책을 전담하여 `미스터 엔`이라고 불리던 사카키바라 일본 게이오대학 교수는 “일본이 첫번째로 디플레이션 시대의 막을 열었고 미국과 유럽도 이를 따를 것으로 보인다”고 세계 디플레이션 시대가 도래할 가능성에 대해 경고하며 “미국이건, 일본이건, 유럽연합이건 자국 통화의 약세를 유도하기 위해 일방적인 조치를 취하기 시작한다면 다른 국가도 경쟁적으로 통화약세를 위한 행동에 들어갈 것이며 각국의 보호주의도 늘어날 것”이라고 3대 기축 통화의 동반 하락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강종철 논설위원)
강종철 기자 kjc01@epayge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