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금 투입은행의 前 행장과 임원의 경영실패, 그리고 이로 인한 해당 은행이 부실화의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와 금융당국이라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수신과 여신 등 일반적인 금융업무 수행에 있어서 정부가 일정 부분 책임을 보장하는 ‘암묵적인 정부보증’의 관행이 만연했고 이것이 현재와 같은 금융권 전체의 부실을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공자금이 투입된 은행의 전직 행장과 임원에 대한 손배소 제기가 진행되고 있는 것과 관련, 당시의 정책 수립에 관여된 정관계 인사들도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이 금융계 곳곳에서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19일 금융계에 따르면 공자금이 투입된 은행의 전직 임원에 대한 손배소 제기가 구체화되고 있다.
이와 함께 공자금 투입은행이 부실화된데 따른 책임소재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
과거의 실패한 경영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당시에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한 정부와 금융당국도 이에 상응하는 법적·도덕적 책임을 져야 형평성의 원칙에 부합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정건용 산업은행 총재는 “예보가 ‘투망식’으로 은행원들에게 무차별 손배소를 제기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손배소는 명백히 부실 책임이 있거나 위법행위를 한 경우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정총재의 발언은 손배소가 제기되고 있는 공자금 투입은행은 물론 금융권 전체의 공통된 지적 사항이기도 하다.
물론 예보가 공자금 투입은행에 손배소 제기를 지시한 것은 법적으로 문제되지는 않는다.
더욱이 예보는 1년여동안 현장조사를 거쳐 손배소 제기의 대상을 최소화했다.
하지만 금융계 일부에서는 한나라당이 공자금 관련 국정조사를 실시하려는 움직임과 관련, 정치권이 먼저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한 은행 임원은 “현재 제기되고 있는 손배소와 관련 근본적인 문제는 소송가액이 얼마인지를 산정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실패한 경영에 대한 책임소재가 어디까지인가를 규명하는 것”이라며 “현재의 시점에서 경영의 실패 여부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말했다.
한편 예보에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명시적인 예금보호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정부가 예금을 보호해주는 ‘암묵적 정부보증’이 있었다는 점이 지적됐다.
따라서 업계 전문가들은 저축증대에 대한 정책적 유도와 정부의 기업여신관여가 일상적이었던 과거의 우리나라에서는 정부가 드러내지 않았지만 금융기관과 고객을 보호했고 시장규율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는 해석이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과보호 아래서 관행처럼 진행됐던 부당여신거래의 문제가 지금 불거졌다고 당시의 은행 관계자들만이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은 형평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논리다.
박준식 기자 impark@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