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위 무산으로 타 산업 파급 ‘불투명’
은행에서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한 지 한달이 지났다. 근로조건의 개선과 인간다운 삶을 위해 제도가 도입된 이후 은행원들은 토요일 ‘반나절’의 자유를 때로는 자격증 준비에, 그리고 가족과의 친목을 도모하는데 이용하고 있다.
■ 자기계발의 허상과 실상
당초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되면 주말을 이용해 어학과 자격증 등 이른바 자기계발을 위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은행원이 많았다.
은행에서도 지원방안을 연이어 내놓았다. 국민은행은 자격증 취득 직원에게는 금융업무관련도 등을 감안해 5개 등급으로 분류, 등급에 따라 최고 200만원의 연수보조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외환은행은 지점장급 6명에 대해 서울대, 서강대 등의 고급관리자 과정에 파견하고 지난해 도입한 자기계발 휴가인력도 선발했다. 산업은행은 금융ㆍ정보기술ㆍ어학 등을 강의하는 ‘KDB토요 스쿨’을 9월부터 시행하며 기업은행은 동아문화센터와 제휴한 ‘사이버아카데미’에 여가 문화 어학 등 다양한 콘텐츠를 보강키로 했다.
이러한 문화가 확산되면 직원 개개인의 능력이 배양되고 결과적으로 은행의 경쟁력도 아울러 높아질 수 있다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자기계발 활동은 실제로는 하위직급에 집중되고 있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인사적체가 심한 은행의 경우 은행은 여전히 고용이 불안한 직장으로 인식돼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자격증은 별반 의미가 없다는 분위기다. 한 은행 임원은 “자격증을 취득하고 어학실력을 높인다고 자리가 보전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퇴직 이후를 고려한 ‘도구’로 사용할 자격증을 고민하는 직원들이 상당수다”라고 말했다.
한편 토요일 하루를 전부 사용하게 된 은행원들은 한결같이 여유 시간이 늘어난 만큼 소비와 지출이 증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예전 같으면 일요일 하루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한 장소로 여행을 가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이제는 1박2일 코스는 기본이라는 것이다.
토요 휴무에 따른 특별수당의 삭감도 일부 직원에게는 ‘치명적’이다. 특별한 행사가 없는 한 토요일의 경우 집에 있으나 은행에 출근하나 토요일 오전을 허비하기는 마찬가지로 차라리 토요일에 출근해 수당을 받는 것이 낫겠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직원들도 있다.
■ 첨단 금융거래 채널 이용 일반화
6월말 현재 국내외 은행의 인터넷뱅킹 가입고객수는 1448만명으로 2001년말 1131만명에 비해 6개월간 28%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리고 7월 주5일 근무제 도입을 전후해 각행의 인터넷뱅킹 가입자수는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금융서비스 전달채널별 업무처리 비중도 바뀌고 있다. 창구텔러, CD/ATM, 텔레뱅킹을 포함한 4대 금융서비스 전달채널 중 인터넷뱅킹을 통한 업무처리비중은 11.7%로서 지난해 12월에 비해 2.9%p 증가했다.
더욱이 전체 은행의 인터넷뱅킹 서버용량은 1일 최대 2300만건을 처리할 수 있으며 실제로는 하루 평균 860만건으로 인터넷뱅킹 수요가 늘더라도 문제될 게 없다는 지적이다.
한편 주5일근무제 실시 이후 전자금융 및 자동화기기 총 이용실적은 늘어난 반면 토·일요일 등 주말의 이용실적은 감소하고 있다.
7월 상반월중 총 이용실적(일평균)은 255만건, 6조 447억원으로 금년 상반기 상반월에 비해 각각 11.6% 및 23.1% 증가했으나 7월 상반월중 주말의 전자금융 및 CD/ATM기 총 이용실적(일평균)은 126만건, 6,796억원으로 상반기 주말에 비해 각각 20.2% 및 69.4% 감소했다.
은행권의 주5일 근무제 실시에 따라 일반 국민들이 토요일 결제를 줄이는 대신 평일 결제를 늘리는 등 기존의 결제행태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여기에 거액의 자금이체 등을 위해 전자금융을 이용하는 기업들이 토요일보다는 평일로 이체거래를 앞당기거나 늦춘 데 기인했다.
■ 다른 산업에 미칠 파장 불투명
은행권의 주5일 근무제 도입이 다른 산업에 영향을 미치기는 당분간 어려울 전망이다. 주5일 근무제의 핵심인 법정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노사정위원회의 노사합의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지난 98년 근로시간과 임금을 줄여 일자리를 마련하자는 소위 ‘일자리 나누기’ 논리로 시작된 주5일 근무제 논의가 근로시간은 줄이되 임금은 줄여선 안된다는 소위 ‘삶의 질 향상’전략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이에 대해 정부와 재계는 기업 경쟁력과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추진해야 하며, 국제적 기준과 동떨어진 제도 도입은 곤란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논의는 제자리 걸음을 걷게 됐다.
이와 관련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정부의 주5일 근무제 입법 움직임과 관련, 노동부 장관에게 공개 서한을 보내 재계의 입장을 반영한 제도를 만들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재계의 대표격인 박회장의 발언이어서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결국 경제와 산업의 심장으로 일컬어지는 금융산업, 특히 은행에서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하면 다른 산업에 미치는 파장이 클 것이라는 전망은 희망사항에 머물게 됐다.
박준식 기자 impark@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