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금이다.
말은 유용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지닌 양날의 칼과 같음을 비유한 격언들이다.
그런데, 말하면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앨런 그린스펀이다.
83년부터 무려 15년간 미국 FRB의장을 맡아 수많은 말장난(?)으로 미국경제를 쥐락펴락했다. 그래서 그는 흔히 경제대통령이라고 불리운다. 말의 영향력면에서는 대통령을 오히려 능가한다.
그러나 지난한해는 그의 말도 위력이 예전같지가 못했다.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미국경제가 장기침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하자 그의 말은 시장에 먹혀 들지 않았다.
결국, 무려 8번의 금리인하, 즉 말이 아닌 행동을 취하고서야 이제 막 미국 경제가 회복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FRB의장에 준하는 인물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중앙은행인 한국은행 총재다.
그런데 한은 총재로 생각을 옮겨 오다 보니 아주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기자가 한창 한국은행을 출입하던 지난 10여년전과 현재를 비교할 때 미국 FRB의장과 한은총재의 말이 지닌 힘이 너무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당시 그린스펀이 금리 운운하면 미국증시는 폭등하기도, 폭락하기도 했다.
그는 대단한 레토릭을 구사했다. 노회한 경제학자인 동시에 언어의 연금술사였다.
금리라는 가장 대표적인 거시경제정책수단과 말의 묘한 뉴앙스 차이를 조합해 시장을 움직여 미국경제가 바른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유도하는 테크닉을 구사한 것이다.
이렇듯 그린스펀의 말발이 통했던 것은 당시 미국경제가 그만큼 건실했다는 증거이기도하다. 경제가 정상이기에 말 한마디에 시장이 울고 웃을 수 있을 만큼 시장논리가 작동했던 것이다.
그럼 당시 국내 사정은 어떠했나.
그때에도 한국은행 총재는 통화정책을 다루는 중앙은행의 수장이었고, 그런 점에서 외견상 그의 위상은 그린스펀과 다를게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말의 위력은 천지차이였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금리를 한꺼번에 2%를 올린다고 해도, 반대로 2%를 내린다고 해도 시장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왜 그랬을까. 당시 우리경제는 연평균 10%를 웃도는 고도성장기였다.
경제사정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닌데도 중앙은행총재의 발언에 시장이 둔감했던 것은 여러가지 요인이 있었겠지만 압축해서 말한다면 우리경제가 성숙되지 못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관치금융’이라는 말이 하루가 멀다 않고 신문지면을 장식할 정도였으니 두 말해서 무엇하랴.
그런데, 이제 사정은 달라졌다.
미국경제침체로 그린스펀의 말의 위력은 예전같지 않아진데 반해 한은총재의 말의 위력은 살아나고 있다. 아직 전성기의 그린스펀의 그것에는 못미치지만 격세지감이 들 정도이다.
그리스펀과 한은총재가 하는 말의 위력을 좌우하는 가장 큰 변수는 시장의 상태이다.
그러나 곰곰생각해 보면 그린스펀의 말의 테크닉에는 타이밍의 비밀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말은 그 자체로 위력을 지니지만 언제해야하느냐도 매우 중요하다.
이는 그린스펀의 말의 위력을 구성하는 핵심요소중 하나였다.
그린스펀은 말을 결코 자주하지 않았다. 기다림이 길수록 만남의 기쁨이 크듯 말은 아끼고 아끼다가 해야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고, 그린스펀은 이를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린스펀은 대경제학자요, 말의 연금술사인 동시에 현실감각까지 지닌 테크니션이기도 했던 셈이다.
그런데 요즘 한은총재의 말이 빈번해졌다.
4월 취임이후 금린인상과 관련한 발언만해도 어림잡아 5~6회로 기억된다.
취임후 닷새만인 4월5일에 터져나온 그의 일성은 “시장은 금리인상에 대비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언어의 연금술사 그린스펀을 떠올리게 하는 묘미있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후 그는 금리인상을 단행하기까지 일주일이 멀다 않고 금리인상가능성과 관련한 이런 저런 말을 했다.
박승 한은총재는 그린스펀 못지 않은 경험많은 학자요, 말의 테크닉 또한 뛰어난 것 같다.
그러나, 말을 말답게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중 하나인 말의 타이밍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해야할까.
그의 빈번한 말을 들으면서 한은 총재의 시장길들이기 테크닉에 혹시 허점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과연 지나친 걱정일까.
<이 양 우 편집국장>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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