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구조조정(CRC: Corporate Restructuring Company) 시장이 급속히 침체되고 있다.
지난 2월말 기준으로 CRC 자금 규모는 1조 3121억원에 달하고 있으며, 이미 697개 기업에 1조 8212억원이 투자됐다. 이에 따라 CRC는 기업 회생의 주역으로 금융업계에서 각광을 받았다. 이렇게 거대한 구조조정시장이 한 마리 미꾸라지 때문에 완전히 흐려졌다.
그러나 미국 테러등 대형사건으로 이용호라는 인물이 조용히 잊혀져 가는 것과는 달리 CRC업계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금감원은 CRC 불법 주가조작 조사라는 채찍을 들고 있고, 중기청은 CRC펀드 출자비율 40% 확대라는 당근을 내놓았다. 강온양면책이다. 하지만 이용호게이트 이후 기업구조조정회사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사실상 개점휴업중이다. 펀드결성도 손 놓은 지 꽤 됐다.
이제 다시 기업구조조정업무 전반에 걸친 시스템을 재검토할 시점이 왔다. ‘XX게이트’, ‘OO조작설’이라는 문구가 신문지면을 장식할 때 잠시 제도개선을 하는 시늉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기업구조조정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시기라는 것이 업계의 대체적인 견해다.
이러한 부실구조조정전문회사를 양산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허술한 CRC제도와 정부 기관의 사후관리 미비에 있다. 즉 기업구조조정을 위해 CRC설립을 서두르다 보니 제도 자체가 엉성했고, 이러한 법망을 일부 CRC가 악용하기에 이른 것.
그렇다면 무엇을 개선해야 할까. 고쳐야 할 될 제도들이 산더미다. 도산법등 제도적 장치 미비, CRC감독체계 혼선, 기업구조조정 대상업체 제한 등 대부분 제도적인 부분에 한정되어 있다.
먼저 산업발전법상 구조조정대상기업의 분류기준이 모호하다. 이에 따라 CRC사들의 기업 구조조정시 세금부과에 대해 세무당국과 마찰이 예상되고 있다.
또한 회사정리, 화의, 파산법으로 이루어진 현행 도산 3법으로는 신속한 기업구조조정에 어려움이 있어 도산 3법의 신속한 통합이 필요하다. 현재 도산 3법은 부도덕한 경영진에 대한 감시견제 기능이 없고 관리인에 대한 권한이 미미하다.
따라서 채권단 또는 법원의 권한을 강화해 경영진 교체 대주주에 대한 감자를 의무화해야 하며, 주총 이사회소집 임원 교체등에서 관리인의 권한 및 책임을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밖에 조세특례제한법, 증권거래법의 주무부서인 산자부와 재경부등 관련부처가 업무협조를 통해 제도정비를 할 필요성이 재차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제도 시스템뿐만 아니라 CRC 사후관리도 산자부 금감원 등으로 이원화되어 있다.
CRC 업무는 회사에 대해서는 산자부가, 조합에 대해서는 금감원이라는 이원적 감독을 받아 왔다. 즉 산자부는 CRC업무 등록과 회사 본계정을 통한 기업구조조정에 대한 업무를 감독하고, 금감원은 CRC조합 계정에 대한 감독권을 가지고 있다. CRC에 이번 달은 산자부와 중기청이 방문하고 다음달에는 금감원이 조사 감독하는 등 사후관리 시스템이 양분되어 있다. CRC감독시스템 통합에 관한 목소리가 계속 높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합결성 문제도 만만치 않다. 정부에서 출자하는 재정자금도 문제다. 연초에 언제 CRC관련 재정자금을 출자한 것인지 밝힐 필요가 있다. 무슨 일이 발생할 때 자금을 즉흥적으로 지원하는 지원체제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CRC에게 상당한 펀드레이징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CRC펀드의 경우 벤처펀드처럼 수많은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한개 펀드가 1~3개 업체에 출자하는 것이 현실이다. 즉 일부 업체 구조조정에 자금이 묶이면 향후 다른 펀드결성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에 따라 투자후 회수를 통한 자금선순환 구조가 깨지고 있다. 이런 까닭에 일부 업체에서 단기차익을 노린 머니 게임에 치중하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구조조정펀드 규모의 대형화가 필요하며 이를 위한 재정자금 확보가 요구되고 있다.
또한 지역별·미등록업체별 출자제한도 철폐되어야 한다. 현재 재정자금 출자조합은 50인 이하인 사모방식으로 결성되는 조합으로 결성총액의 80% 이상을 구조조정대상 중소기업에, 결성총액의 20% 이상을 지방소재 중소기업에, 그리고 재정자금 출자액의 50% 이상을 비상장 미등록 중소기업에 의무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CRC업계 한 관계자는 “G&G등 몇몇업체의 불법행위로 인해 선의의 기업구조조정 업체들까지 싸잡아 매도 당하고 있다”며 “이럴 바에야 차라리 대대적인 감사를 벌여 하루빨리 부실구조조정사들을 솎아내야 하고 기업구조조정 시스템도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CRC관련 종사자에게 기업구조조정업무 중단보다 더 무서운 것이 CRC의 도덕적 해이를 질타하는 외부의 따가운 눈초리다. 이번 기회가 마지막처럼 보인다.
한창호 기자 che@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