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탁상행정에 대한 증권업계의 불만이 증폭되고 있다.
최근 백업시스템에 대한 의무화 권고를 시작으로 호가공개범위 확대와 통신방식 변경 등 대규모 전산투자를 필요로 하는 주문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산비용 절감을 외쳐온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은 물론 최근 증시침체와 함께 투자여력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주문을 계속함에 따라 빈축을 사고 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최근 정부의 주문을 모두 수용할 경우 각 증권사마다 최소 100억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되며 업계 전체적으로 수천 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증권사들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단 정책을 발표하고 밀어부치고 보자는 식의 업무 추진방식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동원증권 전산사고로 백업시스템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는 감독당국은 애초 올해 말까지 백업시스템을 갖추도록 모든 증권사에 요구했다.
삼성SDS 증권전산 등 서비스 업체를 이용하더라도 소요되는 비용은 수십억원 규모. 독자백업 센터를 갖추기 위해서는 수백억원 규모의 예산이 소요돼 증권사들로서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현재 증권전산으로부터 백업서비스를 받고 있는 신영증권의 경우 60억원 이상의 비용을 지불했다.
증권업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감독당국에서는 의무시한을 정해놓고 강제적으로 구축시키려는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 IT경영실태 평가에만 포함시켜 증권사들을 압박하고 있다.
IT경영실태 평가항목에서 백업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33%. 증권사들 입장에서는 백업부문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백업시스템의 경우 증권사들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증권사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동원증권 사고를 계기로 단기간내 구축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며 “감독당국이 면피용 정책이 아닌 예산배정 등 증권사들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고려한 유연성있는 정책대응이 아쉽다”고 밝혔다.
호가방식 및 통신방식 변경에 대해서는 막대한 투자금액은 물론 효과도 의문시되고 있다.
정부는 허수주문을 막고 데이트레이딩을 규제하기 위해 호가방식을 10단계로 변경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8월부터는 증권거래소에서 개별 증권사로 호가와 시세를 전송하는 통신방식도 바꿀 예정이다.
현재 호가나 시세를 하나로 묶어 보내는 방식(ASYNC)에서 개별 계약 체결때마다 실시간으로 보내는 방식(UDP)으로 변경할 경우 증권사가 수용해야 할 데이터량이 15배 이상 늘어나게 된다.
호가공개 범위 확대 및 통신방식 변경을 통해 증권사가 수용해야 할 데이터량이 폭증함으로써 통신회선뿐만 아니라 서버, 네트워크 장비 및 개별 PC단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시스템을 새롭게 교체해야 하는 부담이 생기게 된다. 증권사가 추가로 부담해야 할 짐은 적게는 30억원에서 많을 경우 100억원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큰 문제는 대규모 투자를 통해 정책적인 효과가 전혀 기대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허수주문을 막고 데이트레이더를 규제하겠다는 당국의 의도와는 달리 증권사들 입장에서는 전혀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관계자들은 허수주문의 경우 증권거래소에서 관련 정보를 통해 증권사들에 대한 규제가 가능하고 데이트레이딩의 경우 호가범위를 늘린다고 해서 규제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실제적인 효용성 측면에서도 증권전산과 증권사간 또한 증권사 본지점간 회선의 완전교체가 가능할 지 몰라도 고객과 직접 연계되는 통신회선이 교체되지 않는다면 실제로 호가범위가 확대되더라도 고객들이 데이터를 수용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증권사들은 호가공개 범위확대 및 통신방식 변경에 대해서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백업시스템의 경우 증권사들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 유연한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당국이 명백히 오류가 드러난 정책에 대해서 합리적이지 못한 이유로 강행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춘동 기자 bom@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