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벤처기업의 가치 평가가 기형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불과 2년사이 유사 업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설립된데다 투자기관들의 투자위축은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이로인해 기술력에 의한 기업가치 평가는 옛말이 됐고 확실한 물주를 잡는 기업이 시장을 석권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벤처업계에 따르면 대부분 벤처기업들이 신규 자금을 끌어오지 못해 경영난을 겪고 있는 가운데 벤처 기업과 캐피털 등의 관계자들이 산업의 기형화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어 주목된다.
인터넷 셋톱박스 생산업체인 영우통신은 지난해 600억원의 매출을 올린데다 국내 이동통신 업체들에게 기술력을 검증받은 업체다. 또한 음성 중개기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올 상반기 코스닥 등록을 추진하고 있다. 이업체가 등록을 서두르는 요인 중 하나는 사세확장에 필요한 자금확보를 위해서다. 중개기만 해도 성미, 삼지, 흥창정보통신 등의 등록 업체와 유사 후발 업체들이 시장 진입을 노리고 있다. 그래도 기술력과 함께 매출이 뒷받침되는 업체는 형편이 나은 편이다.
기형화현상은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인터넷 업체들에서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한 인터넷커뮤니티 업체인 C사는 나름대로 수익모델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기존 세대별 커뮤니티 시장에 진출,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다. 이미 유사 사이트들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기술력보다 자금력이 더욱 중요하게 됐다. 자금력을 앞세운 마케팅 등 공격적인 영업활동이 곧 수익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벤처기업 관계자는 “모든 업종에서 핵심기술은 없는 상태에서 유사한 기술을 개발하다 보니 결국 자본력에서 기업의 성장 여부가 판가름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인터넷 기업의 경우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은행, 증권, 투신, 보험 등 기관투자가들은 시장과 내부사정으로 투자할 기력이 없다. 여기에 대부분의 벤처캐피털들이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어 향후 기업의 자금 우위 논리는 더욱 심해 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나마 자금력이 있는 벤처캐피털들도 코스닥 시장의 장기화와 관련제도 등으로 자금을 쌓아두고 있는 실정이다.
한 대형 창투사 심사역도 “투자업체 검토시 유사업종이 너무 많아 기술적 우위를 가리기가 어렵다”며 “이로 인해 투자결정시 매출 등 기본적인 재무 상태와 경영자의 자질등 객관적인 판단이 개입될 수 밖에 없다”고 토로 했다.
송정훈 기자 jhsong@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