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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성의 미래 읽기] 철강의 폐허서 ‘피지컬 AI’ 성지로 거듭난 피츠퍼그

최민성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 2026-07-20 10:16

미국 피츠버그시가 한국 도시에 건네는 미래의 열쇠

최민성 델코리얼티그룹 회장

최민성 델코리얼티그룹 회장

1980년대 피츠버그는 미국 산업화의 상징인 철강 산업이 붕괴하며 ‘러스트 벨트(Rust Belt)’의 대명사가 되었다. 실업률은 18%를 상회했고, 도시는 쇠락의 늪에 빠졌다. 그러나 반세기 후, 피츠버그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로봇 공학 및 ‘피지컬 AI(Physical AI)’의 성지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보스턴을 넘어 미국 최고의 로봇 기술 허브로 자리 잡은 이 도시의 변모는 단순한 기술 개발의 성과가 아니라, 산업의 유산을 미래 기술로 치환한 도시계획과 혁신 생태계의 승리다. 피츠버그의 성공은 오늘날 산업 전환기를 맞이한 한국의 도시들에 거대한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피지컬 AI의 거대 실험실: 피츠버그의 산업적 스펙트럼

피츠버그는 단순히 로봇을 ‘제조’하는 곳을 넘어, 환경을 인지하고 물리적으로 개입하는 피지컬 AI 기술이 국가 핵심 인프라 전반에 투사되는 거대한 실험실이다. 이곳의 피지컬 AI는 크게 다음과 같은 8가지 산업적 스펙트럼으로 확장되어 있다.

첫째, 산업용 자율 로봇 및 제조 자동화다. 과거 제철소의 철골 구조물을 활용한 ‘밀 19(Mill 19)’와 같은 시설을 기반으로, 복잡한 공정에서 자율 판단하는 제조 로봇과 스마트 팩토리 솔루션을 생산한다.

둘째, 자율주행 및 모빌리티(AV)다. 도심 환경에서 보행자와 차량을 인지하고 안전하게 주행하는 인지 소프트웨어 및 차량 제어 시스템의 세계적 중심지다.

셋째, 물류 및 라스트 마일 로봇이다. 창고 내 자동 분류 및 이동 시스템을 통해 물류 효율을 극대화한다.

넷째, 우주 및 탐사 로봇이다. 달 탐사 임무를 수행하는 달 착륙선 및 탐사 로버(Rover) 등 극한 환경 대응 로봇을 제작한다.

다섯째, 방위 및 국방 로봇이다. 험지 탐색, 구조, 감시를 담당하는 지상 및 수중 무인 플랫폼(UGV/UUV)이 대표적이다.

여섯째, 인프라 시설 검사 로봇(Infrastructure Inspection)이다. 교량, 정유 시설, 파이프라인 등을 정밀 검사하여 재난을 사전에 방지하는 특수 로봇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일곱째, 의료 및 웨어러블(Wearable) 로봇이다. 수술 보조 로봇 및 작업자의 근력을 보조하여 부상을 방지하는 웨어러블 기술이 발전했다.

마지막으로, 농업 및 환경 제어 로봇(AgTech)이다. 고도화된 컴퓨터 비전을 활용한 정밀 농업과 재난 지역 오염 물질 수거 로봇 등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미국 피츠버그시 로보틱스 로우(Robotics Row) 지역. 스트립 디스트릭트와 로어 로렌스빌은 이 지역의 많은 로봇 회사들이 모여 있는 로봇 산업의 중심지다. [사진: 피츠버그 비즈니스 타임즈]

미국 피츠버그시 로보틱스 로우(Robotics Row) 지역. 스트립 디스트릭트와 로어 로렌스빌은 이 지역의 많은 로봇 회사들이 모여 있는 로봇 산업의 중심지다. [사진: 피츠버그 비즈니스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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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계획의 승리: ‘코로케이션(Co-location)’과 실증 중심 거점

피츠버그의 성공은 도시계획 차원에서 대학과 산업을 한 공간에 물리적으로 통합한 ‘코로케이션(Co-location)’ 정책에 기반한다. 로봇 혁신 센터(RIC)와 같은 대규모 시설을 단일 구역에 집중 배치함으로써 대학 연구실, 창업 보육 센터, 시제품 테스트 장비, 그리고 벤처캐피털(VC)이 물리적으로 상호작용하도록 설계했다. 과거 제철소 부지를 재해석한 ‘Mill 19’는 물리적 인프라가 미래 산업을 어떻게 품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도시 재생의 교과서다. 기업들은 대학의 시설을 자기 회사의 R&D 센터처럼 사용하며, 실제 도시 환경과 유사한 조건에서 기술을 실증한다. 이는 로봇 기업들이 타 지역으로 유출되지 않고 도시에 ‘고착’되게 만드는 강력한 요인이다.

한국의 현실: 파편화와 클러스터 부재의 비극

피츠버그와 달리 한국의 피지컬 AI 정책은 ‘파편화’라는 고질적인 병폐에 갇혀 있다. 로봇 관련 시설과 실증 단지는 정치적 논리 혹은 클러스터화라는 도시계획의 활용을 파악하지 못해 여러 지역으로 쪼개져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학과 기업은 분리되어 있고, 도시계획 단계에서 로봇이 실제 이동하고 작동할 수 있는 ‘전용 실증 구역’을 고려한 도시설계는 여전히 미흡하다. 로봇 기술은 실험실 안의 연구에 머물고, 기업들은 실제 현장에서의 실증 데이터를 얻지 못해 글로벌 경쟁력을 잃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한국의 정책이 단순히 ‘로봇 보급’이나 ‘부품 제조 지원’에 그치고, 이를 도시계획이라는 공간적 관점에서 풀지 못하기 때문이다.

클러스터화를 위한 한국의 과제: 실행 로드맵

한국이 피지컬 AI의 성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3대 대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산업 재생형 도시계획’의 전면 도입이다. 한국의 도시는 노후 산업단지를 단순히 아파트나 상업 시설로 바꾸는 근시안적 개발에서 벗어나야 한다. 피츠버그처럼 노후 시설의 뼈대를 활용해 미래 산업의 테스트베드로 전환하는 공간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도심 내 로봇과 자율주행 기기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피지컬 AI 실증 특구’를 도시계획의 핵심으로 반영해야 한다.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오픈 랩(Open Lab)으로 개방하는 과감한 조례와 법적 기반이 선행되어야 한다.

둘째, ‘초광역적 집중화’를 통한 클러스터의 규모화다. 지자체마다 소규모 로봇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각 지역의 주력 산업과 로봇 기술을 하나로 묶는 거대한 ‘산업 밸류체인’을 형성해야 한다. 한국의 좁은 국토는 오히려 초광역 클러스터를 조성하기에 유리하다. 제조 로봇은 창원, 서비스 로봇은 판교, 물류 로봇은 인천 등으로 특화하되, 이 모든 데이터와 실증 공간을 공유하는 ‘국가 통합 피지컬 AI 밸리’를 추진해야 한다. 분산된 자원을 국가 차원에서 하나로 모으고, 이를 거점화할 수 있는 강력한 산업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

셋째, ‘데이터 기반 공유 실증 생태계’의 구축이다. 기업들이 대학의 인프라와 지자체의 공공 데이터를 자기 회사의 R&D 센터처럼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피츠버그가 60개 이상의 지역 파트너를 컨소시엄으로 묶었듯, 한국도 기업-대학-지자체를 잇는 독립적이고 지속 가능한 산업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자체 차원에서 기업 간 데이터 공유를 촉진하고, 이를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실증 코디네이터’ 조직이 운영되어야 한다.

도시는 거대한 실험실이 되어야 한다

피츠버그의 부활은 도시가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히지 않고, 미래를 설계하는 회로가 될 때 비로소 미래가 열린다는 점을 증명한다. 철강이라는 단단한 기반 위에 피지컬 AI라는 유연한 혁신을 입힌 피츠버그처럼, 한국의 도시들도 자신들만의 고유한 산업 유산을 현대적인 기술의 엔진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이제 한국의 도시는 단순히 거주하는 곳이 아니라, 미래의 피지컬 AI를 설계하고 검증하는 거대한 실험실이 되어야 한다. 파편화된 자원을 하나로 모으고, 도시의 공간을 로봇의 실증 현장으로 개방하는 과감한 도시계획 없이는 피지컬 AI의 글로벌 주도권 확보는 불가능하다. 지금 당장, 각 지역에 파편화된 기술력과 인프라를 하나로 묶는 ‘한국형 피지컬 AI 클러스터’의 마스터플랜을 다시 써야 할 때다. 그것이 바로 철강 도시 피츠버그가 우리에게 건네는 미래의 열쇠다.

최민성 칼럼니스트/델코리얼티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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