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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개미 울리고 채권자는 웃는 ‘중복상장’

이성규 기자

lsk0603@fntimes.com

기사입력 : 2026-06-22 00:00

신용등급 개선, 방패막이 된 주주들
대주주 ‘자본의 책임 의식ʼ 돌아봐야

▲ 이성규 THE COMPASS 기획취재부 부장

▲ 이성규 THE COMPASS 기획취재부 부장

[한국금융신문 이성규 기자] 한국거래소가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인 경우만 허용하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예정이다.

제도 변화를 앞둔 시장에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한국 증시가 저평가 늪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반면,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밖에도 중복상장을 두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의견이 대치하고 있다.

중복상장 문제를 크레딧, 즉 부채 관점에서 보면 다른 모습이 포착된다. 신용평가사들은 중복상장 금지가 기업 신용등급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역으로 말하면 중복상장은 그간 기업 신용등급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는 의미다.

자회사 물적분할 이후 상장은 모회사 입장에서 새로운 자금조달 창구다. 상장 이후에는 유사시 자회사 지분을 유통시장에서 빠르게 처분할 수 있어 추가 유동성 확보에도 긍정적이다.

모회사는 자회사 상장으로 신용도를 방어하는 동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 일석이조 효과가 발생한다. 자회사도 ‘계열지원’을 등에 업고 자체 신용등급보다 한단계 높은 수준으로 책정된다.

중복상장은 모회사 가치(주식)를 할인하는 요인이지만 채권자와 그룹사 전반에 든든한 방패막이다. 그 방패막 역할은 주주가 하는 격이다.

주주 희생으로 기업이 상대적으로 높은 신용도를 유지한다면 전반적인 자금조달 비용은 낮아진다. 낮은 조달비용은 기업가치 제고에 즉각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기업가치 할인이 지속된다는 것은 주주 입장에서 희생에 대한 대가가 충분하지 않다는 의미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국내 시장에서 기업 신용등급을 기반으로 투자하는 것은 성공적인 주식투자와 상관관계가 낮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증시가 신용등급 대비 저평가돼 있다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나왔다. 특히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증시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외국인 자금의 국내 유입에 대한 기대가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부터 우리나라 그룹사들은 순환출자 해소와 지주체제 전환이 본격화됐다. 이 과정에서 중복상장 건수가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흐름은 지난 2020년 초반까지 이어졌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020년 초반까지 우리나라 국가 신용등급은 S&P 기준 A에서 AA로 두 단계 올랐다. 국내 기업들 역시 각 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신용등급은 전반적으로 개선됐다.

국가와 기업별 펀더멘탈은 강해졌지만 증시는 중복상장이라는 늪에 완전히 잠식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 개선된 신용등급 수준은 아니더라도 주식가격은 채권가격(금리 수준)과 그 방향이 어느 정도 일치해야 한다. 방향의 장기불일치는 분명 문제가 있다.

주주와 채권자는 기업에 대한 책임 기준 동일선상에 있지 않다. 그러나 두 주체는 자금조달 측면 서로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기업은 자본 혹은 부채 중에서 낮은 조달비용 수단을 택하기 마련이고 이 자체가 기업의 균형적인 재무구조에 일조한다.

LG에너지솔루션 상장 이후 본격화된 중복상장 이슈는 오랜 기간 국내 시장에서 누적된 주주와 채권자 간 불균형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다. 상환 기간도, 의무도 없는 자본에 대한 책임의식 결여가 주주들의 인내심을 무너뜨린 격이다.

여기서 앞서 언급한 “중복상장 규제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대목으로 돌아가 보자. ‘할인’이라는 희생에 대한 과실을 얻지 못한 주주는 점점 사라지기 마련이다. 중복상장 규제를 하지 않아도 현 상황이 장기화되면 기업의 투자 유치 역시 어려워진다.

따라서 중복상장 규제가 기업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은 지극히 편향적인 시각일 뿐이다. 돈이 흐르는 방향은 늘 한결같기 때문이다. 수익률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간다. 또 투자자가 만족하는 수준이라면 상장이 아닌 다른 방식을 통해서라도 돈은 이동한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다. 주식을 채권처럼 법적으로 상환규모나 기한을 정할 수 없다. 하지만 상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경우 기업이 주주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대가 제공(주주환원)을 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 여기서 ‘상응하는 대가’는 예상보다 클 수 있다. 중복상장에 따른 할인이 오랜 기간 지속된 만큼 신뢰 또한 낮아진 탓이다.

중복상장 규제 여부도 중요하지만 기업들은 자금조달 균형 관점에서 더욱 심도 있는 접근을 해야 한다. 이제는 조달비용 자체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주주와 채권자 각각의 입장에서도 생각하는 방식도 필요하다.

자금조달은 단순히 계산기를 두드려서 나온 기업에 유리한 결과를 이행하는 것이 아니다. 성장이 간절하고 진심이라면 신뢰를 기반으로 한 설득 그리고 책임감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이성규 한국금융신문 기자 lsk0603@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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